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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Oct 24. 2022

가장 어두운 범죄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8

마지막으로 범죄를 보자. 앞서 살펴본 것처럼 범죄는 모종의 법칙을 어기는 일이다. 이와 동시에 범죄는 인간이 하는 짓 중에 가장 은밀한 짓이다. 범죄는 그 자체로 숨어서 해야 할 짓, 들켜서는 안 될 짓이다. 범죄는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순간 범죄가 아니게 된다.


공공연하다는 것은 한 가지 사안에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답이 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 너무나 많은 답이 범람할 수 있다는 것, 그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계산적인 답, 유일신과 같은 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자는 공공연한 공간을 기피한다. 자기가 저지른 짓이 범죄로 해석되는 가능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타인이 나의 행위를 범죄로 해석한다면, 그리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석해 그 해석에 힘이 실린다면, 남는 것은 처벌뿐이다.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한다는 믿음, 그로 인해 누구도 내가 저지른 짓을 범죄로 해석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범죄를 낳는다. 그러므로 범죄의 발생 가능성은 그에 대한 비난 가능성에 반비례한다. 타인이 나를 해석한다는 믿음, 내가 어떻게 보일지 모른다는 믿음이 범죄를 막는다. 자유로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곳에서는 누구도 범죄를 드러내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런 공간에서는 누구나 비난할 자유를 갖기 때문에 어떤 행위든 범죄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므로 범죄가 은밀하고 들켜서는 안 되는 짓이라는 말은 두 가지 중 하나다. 하나는 범죄자 본인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범죄가 드러나지 않아 한 가지 사안이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사라진 경우다. 피해자와 목격자 모두가 죽거나 사라진 암수범죄를 떠올려보자. 범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범죄자뿐인 상황에서는 아무도 그 범죄가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암수범죄야말로 말하지 않아 존재가 사라진 대표적인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불가능해 그 짓이 범죄라는 말이 입밖에 나오지 않는 경우다. 마치 일꾼의 성과를 가로채는 말꾼처럼, 범죄를 보고도 그 짓은 범죄가 아니라는 말을 여러 사람이 계속해서 한다면 어느 순간부터 그 짓은 범죄가 아니게 된다. 이미 이름을 가진 무엇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은 폭력이다. 폭력은 다른 이의 해석을 망가뜨리고 자기 해석을 덧씌우는 짓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인간의 세계에서는 드러난 것이 곧 있는 것이다. 인간을 압도한 폭력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아무리 내게는 명백한 범죄여도 나를 둘러싼 모두가 범죄가 아니라고 한다면 더 이상 그 짓을 범죄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말할 힘을 잃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게 되면 생각하기도 어려워진다. 범죄는 그렇게 심연으로 사라진다.


심연은, 말하지 않아 인간의 세계에서 드러나지 않는, 그렇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화장실이든 침실 안이든 도살장이든 남에게 드러나지 않는 곳이 바로 심연이다. 심연은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네 개의 벽에는 타인의 시선을 차단하는 사물이면 무엇이든 해당한다. 그러나 아무 사물로 감추지 않아도 사물로 만든 심연보다 더욱 깊숙이 숨겨지는 공간이 있다. 바로 속마음이다.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악한 범죄인 살인은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죽인 자는 입을 닫기 때문이다. 경찰청에서 발간한 『2020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의 변사자는 21,573명이다. 그중에서 자살이 12,776명이고 타살이 369명이다. 변사자의 사망원인은 주로 사건 담당 경찰관의 판단이나 법의학자의 부검으로 결정된다. 현장감식, 유족 진술로도 사망원인을 알 수 없는 변사체는 기타로 분류된다. 부패가 너무 심해서 원인규명을 하기 어려운 경우나, 공사장에서 땅을 파다가 사람 뼈를 발견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 죽음이 2020년에만 1,526건이었다. 같은 해 일 년 동안 실종신고가 접수된 사람 중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1,178명이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이 간 곳은 심연이다. 배변, 성교, 도살, 살인이 가는 곳. 실종신고로 돌아온 사람들보다는 어두우면서 실종신고조차 되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밝은, 그런 곳이다. 상상의 나래를 더 펼쳐보면 더욱 어두운 심연 언저리에 가볼 수 있다. 죽어서 사체조차 남기지 못한 사람들, 뻘이나 늪에 묻혀 점점 깊은 곳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어쩌면 주민등록도 되지 않은 사람들, 날 때부터 야생에 버려져 늑대와 함께 자란 사람들. 그들이 가는 그곳이 어딘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목격자가 없으면 살인도 없기 때문이다. 범죄가 가는 곳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이다.


모든 살인은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으로 간다. 전쟁처럼 살인이 적극적으로 권장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살인은 심연으로 사라진다. 데이브 그로스먼이  『살인의 심리학』은 참전군인이 겪는 살인의 추억을 심연에서 건져 올린다. 책에서 그로스먼은 살인과 성교의 묘한 연관성을 짚는다. 침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일은 좀처럼 알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르노에서 성욕, 흥분, 절정, 분출의 이미지를 제거하면 성교에 관해 알려주는  거의 아무것도 없듯이, 우리에게 알려진 전쟁과 군인의 이미지에서 명예, 충성, 용기, 군인정신처럼 이념적인 이미지를 제거하면 살인의 실상을 드러내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살인을 경험한  없는 초년병에게 살인을 가르치는 군사훈련은, 마치 성경험 없는 청년이 포르노로 성교를 배우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실제 전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당혹스럽다. 살인을 마주한 군인은 스트레스 반응으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똥오줌을 지리기도 한다. 적지 않은 군인이 살아있는 생명을 죽인다는  윤리적 딜레마를 경험하며,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살상행위를 거부할 만큼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모든 경험은 군인의 마음에 영구적인 상흔을 남긴다. 전쟁이 끝나 사회로 돌아가서도 외상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제대군인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현상은 뛰어난 공적으로 이름을 날린 영웅들도 피할  없는 사건이다. 그래서 『살인의 심리학』의 부제는 “전쟁과 사회에서 살인하는 법을 배운  따른 심리적 비용이다. 그로스먼이 밝히기 전까지 군인의 살상 행위는 암수범죄만큼 어두운 곳에 있었다.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들에 살인과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검찰청에서 발간한 2021 범죄분석』에 따르면, 2020 대한민국에서는  170 건의 크고 작은 범죄가 발생했다. 유무죄를 떠나서 형사 사건의 피의자가 인구 10 명당  3,300명에 달했다. 100  3명은 형사사건의 피의자라는 말이다.  40 건에 달하는 교통범죄, 예컨대 음주운전이나 뺑소니, 무면허 운전 등을 제외하더라도, 형법과 각종 특별법에 따른 범죄는 130  가량이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초범대략 33 명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매년 1,000명당 여섯 명의 새로운 범죄자가 나타나는 셈이다. 실제 재범 따지 그보다는 줄겠지만, 결코 무시할  없는 수치다. 지하철  량의 수용인원은 160명이다. 그것도 넉넉하게   이야기고, 아침저녁 순대  당면처럼 옴짝달싹 못하는 지하철에서는 400명도 탄다. 통계적으로 보면,  안에 죄목을 불문하고 형사재판을 받아 확정된 범죄자가  명은 있다. 드러나지 않아 사라지는 것들은 이렇게 우리 곁에 있다.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로, 모두의 마음속에, 아무도 모르게.


비난할 수 있는 다른 많은 것들, 예컨대 학교폭력을 포함하면 숫자는 조금 더 커질 것이다. 학창 시절 왕따는 모두가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은 경험하는 흔한 사건이다. 피해자로나, 가해자로나, 동조자 혹은 묵인자로나 우리는 모두 깊거나 얕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경험한다. 이건 비단 미성숙한 인간의 치기 어린 실수가 아니다.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학창 시절의 왕따와 유사한 현상은 반복된다. 군대를 다녀온 모두가 자신이 속했던 부대의 부조리를 호소하지만 언제나 자신은 좋은 선임이었다고 자랑한다. 회사에서도 언제나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나, 동료 한 명을 바보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서 ‘또라이 보존의 법칙’ 따위를 우스갯소리로 꺼내곤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따돌림이 이렇게 흔한 사건임에도 가해를 고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은 범죄만큼 은밀하다. 물론 학교폭력이 드러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마치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이 자신의 범죄기록을 제출하는 것처럼, 한번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연예인은 대중의 학교폭력 검증을 받는다. 범죄는 범죄자의 이름값을 따른다. 범죄자가 유명해지면 숨겨진 범죄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범죄자가 개차반같이 살수록 범죄는 심연보다 더욱 철저한 익명 속에 가려진다. 그럴수록 피해자는 더욱 큰 고통에 빠진다.


직장인의 철학 ─ 왜 일한 건 티 내야 할까

1화 일꾼과 말꾼

2화 직장을 다니는 철학자들에게

3화 드러난 것이 있는 것이다

4화 우리가 사는 세계

5화 사내정치를 위한 변명

6화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정치인이다

7화 보이지 않아 사라지는 것들

8화 가장 어두운 범죄(방금 읽은 글)

9화 있어 보이는 비밀

이전 07화 보이지 않아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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