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강아지를 데려왔다. 면회실 아크릴 벽을 사이에 두고, 나는 강아지를 봤다. 강아지는 떨고 있었다. "산책은 해요?"
소중한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태어나자마자 늙은 노부부에게 1년 동안 묶여 자라 발달이 더뎠다. 아마도 손녀딸 둘이 어린 모습만 보고 기르다 손이 많이 가니 버린 모양이었다. 할머니 댁에 버리면 죄책감이 덜하리라 믿었을 거다. 늙은이들은 생명 귀한 줄 모르고 뒷마당에 강아지를 방치했다. 사람 손을 타는 시간은 일주일에 딱 한 번, 밥통에 수북이 쌓인 사료는 풍요라기보다 빈곤이었다. 강아지는 자꾸만 자라는데 똥 묻은 목줄은 강아지의 숨을 졸랐다. 강아지는 그렇게 1년을 살았다. 사회적인 학대였다.
강아지를 처음 데려왔을 때, 그는 모든 것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뒷마당을 지옥으로 만들던 목줄 때문인지, 강아지는 기다란 것들에 학을 뗐다. 전깃줄, 문지방, 머리끈에 닿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강아지는 기다란 것들을 피해 살금살금 걸었다. 1년 동안 같은 풍경만 보아서 그랬을까. 강아지는 낯선 것들을 차라리 외면했다. 내가 강아지를 위해 준비한 장난감 택배라도 열면, 강아지는 어두운 침대 구석으로 피했다. 그래서 우리 집엔 써보지 못한 새 장난감이 상자째 쌓여 있다.
산책은 즐거운 거야, 라는 사실을 강아지에게 가르치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 강아지는 1년 동안 단 한 번도 산책을 해보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처음 강아지를 안고 문 밖으로 나가던 봄날, 강아지는 몹시 떨었다. 기다랗고 낯선 것 천지인 바깥 세상은, 말하자면 강아지에게 트라우마 종합선물세트였다. 나는 부지런히 강아지를 데리고 외출했다. 매번 안고 나가다, 발을 땅에 딛게 하고, 간식도 주고, 슬쩍 걸어보게도 했다. 마침내 강아지가 목줄을 다시 맸을 때, 나는 울었다. 강아지는 포근한 하네스를 차고 신중하게 걸었다.
그랬던 강아지가 지난 가을 처음으로 웃으며 산책을 했다. 나는 줄을 느슨하게 잡고 가만히 강아지를 봤다. 강아지는 길가에 자란 낮은 풀 냄새를 맡았다. 낙엽에 코를 박기도 했다. 강아지가 다시 나를 봤을 때, 나는 웃으면서 강아지 코에 묻은 낙엽 조각을 떼어줬다. 그때까지는 완벽한 산책이었다.
멀리서 개 한 마리가 뛰어왔다. 강아지보다 덩치는 작은데 시선은 우리 강아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누구 집 개인가, 하고 주인을 찾았다. 그때 그 개새끼가 강아지를 물었다. 나는 목줄을 당겨 강아지를 들어올렸다. 강아지는 비명을 질렀다. 개새끼는 강아지 목에 이빨을 박고 매달려 올라왔다. 나는 줄을 버려두고 양손으로 개새끼의 턱을 벌렸다. 개를 강아지에게서 떼어냈을 때 개의 주둥이에는 피가 흘렀다. 강아지의 피인지 그 개새끼의 피인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개새끼의 모가지를 잡고 멀리 던져버렸다.
멀리서 주인이 보였다. 매번 목줄을 안 매고 개를 산책시키던 여자였다. 그 여자의 개는 태생이 사나워 언제나 주변을 위협했다. 왜 저렇게 키울까 걱정했는데, 오늘은 나와 강아지의 차례였다.
나는 당신 개냐고 소리를 질렀다. 강아지는 내 가랑이 사이에서 신음하면서 떨고 있었다. 여자는 느긋하게 걸어오면서 상냥하게 물었다.
"우리 개가 물었어요?"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개 같은 여자의, 키우는 개새끼보다 못한 천박한 년의 말을 해석할 시간이 필요했다. 강아지 목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나는, 당신 개새끼가 뛰어와서 물면 말릴 생각을 해야지, 라고 소리를 질렀다.
"뭐, 개새끼? 요즘 젊은 것들은 예의가 없어. 당신 개새끼 간수나 잘해."
그 여자는 억울해보였다. 물론 의도는 없었겠지. 나와 강아지는 불운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불행은 그 여자의 작은 악행이 켜켜이 쌓인 결과다.
나는 그대로 뛰어올라 그 여자를 밀쳤다. 두 손으로 어깨와 가슴팍 사이를 내 강아지가 당한 만큼 힘을 실어 밀었다. 여자는 그대로 땅에 넘어졌다. 산책로 바닥에 뒤통수를 박았는지, 흙을 채운 도자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여자는 구급대원이 와서 실어가고, 나는 경찰이 데려갔다.
나는 폭행치사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겨울이 오고 1심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도, 나는 강아지를 걱정했다. 유희로서의 산책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산책다운 첫 산책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너 그렇게 된 이후로 문 밖을 통 안 나와. 오늘도 겨우 데려왔어."
면회 시간이 끝나고, 엄마는 강아지를 데려갔다. 돌아가면서도 강아지는 꼬리를 말며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