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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Jun 02. 2016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자

   나는 존엄한 존재다. 세상이 있고 내가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있고 세상이 내게 주어진 거다. 나는 생각하고, 세상은 나로 인해 생각된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 나의 존엄성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나는 세상을 쥐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 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러나 나는 외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하는 감각은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창이다. 창이 사라지면 나 홀로 외딴섬처럼 남게 된다. 자란다는 건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창이 선명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이 선명하게 보일수록 외로움은 덜하다. 반면, 늙는다는 건 창이 흐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은 외로움을 모르고 늙은 사람은 외로움을 뼈저리게 겪는다. 죽음은 모든 창이 막힌, 가장 외로운 상태다. 외롭고 싶지 않은 마음은 본능이다. 이것이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더 이상 내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죽음만큼 외롭다. 나는 세상에 던져졌다. 세상은 내가 결정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출신을 선택할 수도 없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왜 사냐고 물으면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산다.” 삶마저도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나는 너무도 작고 미약한 존재다. 이런 생각을 하다 끝에 다다른 사람은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세상을 시작할 권리가 내게 있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끝낼 권리를 찾으려 발버둥 치는 거다.

   거대하게 흐르는 세상도 죽음만큼 나를 외롭게 한다. 세상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나름의 법칙대로 움직인다. 법칙의 톱니바퀴가 꽉 물려 있어서 도무지 내가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다. 중력을 거스를 수 없고, 자연재해 앞에 무력하다. 세상의 흐름을 과학으로 해석하려 하고 운명으로 덮어두려 하지만, 그 흐름에 내가 몸을 맡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 더욱 외로워진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모든 것은 세상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존엄하다지만, 나에게 세상이 시작된 이유는 내가 아니라 세상인 것처럼 보인다. 세상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몸짓은 외로움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의 몸짓은 창 안의 생각을 창 밖의 현실로 만드는 노동이다. 나무를 의자로 만들고, 연필로 글을 쓰면 세상은 내 뜻대로 바뀐다. 노동은 나의 존엄성을 일깨우고 외로움을 달랜다. 세상이 나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다시 느낄 때 외로움은 잠시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내 뜻대로 바꾸고 싶어 한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표현한다, 나는 외로운 존재임을, 그리고 세상이 내게 달려있음을.

   나의 몸짓이 꽃이 되었을 때 외로움은 눈 녹듯 사라진다. 누군가 나타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고 동의하면 나의 몸짓은 꽃이 된다. 너는 세상과 함께 내게 주어졌다. 그러나 세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너는 “나도 너처럼 외로운 존재야” 하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는 점이다. 내게 믿음을 주는 너는 나만큼 중요하다. 나는 너의 외로움을 믿는다. 그래서 나의 외로움은 나의 외로움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외로움이 된다. 우리의 믿음은 사랑이 된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중에서)

사랑이라는 흙이 있어야 우리라는 꽃이 핀다. 우리의 노동은 사회가 되고 문화가 된다. 우리가 속한 이 곳은 꽃밭이다.


   그런데 정말 나는 너에게 꽃인가? 수년전, 연쇄살인이라는 섬찟한 말이 세간에 돌았었다. 사람 몸을 토막 내는 일은 비교적 흔하다. 올해는 어떤 여자가 하필 그때 그 화장실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칼에 찔려 죽었다. 바다 건너에선 헤어지자 하니 얼굴에 알코올을 끼얹어 화형을 시킨다.‘왜’라고 물어볼 여유도 없이 수많은 생명이 사그라든다. 나를 죽이려는 너 앞에서 몸짓은 의미 없다. 호의를 먼저 거절한 너에게 다시 호의를 베풀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네가 나를 믿지 않으니 나도 너를 믿을 수 없다. 사랑을 상실한 시대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사랑하자. 미워하지 말자.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그런데 어느새 혐오는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 됐다. 혐오는 너를 부정하는 말이다. 네가 없는 나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점점 꽃이 없는 외로운 길로 가고 있다.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믿어야 한다. 소망은 그다음이다. 먼저 믿어주고, 네가 나를 믿어주길 소망하며 기다리자. 기다리고 나서 너도 나를 믿어줄 때 사랑이다. 꽃이 핀다.


   외로움을 이겨내는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누가 뭐래도. 내가 외로운 존재인 것처럼, 너도 외로운 존재다. 너도 나처럼 감각이라는 유일한 창으로 세상을 보는 존재일 뿐이다. 너 없는 나는 외로움 속에서 하릴없이 죽음을 기다린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외로움을 이겨 내고, 이겨내도록 돕는다. 거대하게 흐르는 세상 아래에서 한 없이 작은 내가 의지할 곳은 너 뿐이다.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자.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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