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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Jul 31. 2016

글이 나고 내가 글이다

읽히는 건 행운이지만 글 쓰는 건 행복이다

   지난 이틀 꿈속에서 지냈다. 우연히 신문에 내 글이 실렸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내 글을 읽고 내 글이 담고 있는 생각, 내 글이 가진 색깔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 글을 가지고 세상을 봤다. 어떤 사람들은 내 글이 세상을 잘못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읽은 건 신문에 실린 짧은 글 한 편이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들이 읽고 있는 것은 단지 글이 아니라 나 그 자체였다.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글아일체'다. 다른 사람에게 글을 보여줄 때에는 벌거벗은 느낌으로 눈치를 살핀다. 혹시라도 내 글이 외면받을까 두렵기도 하다. 문에 실리고 나니 어떤 사람이 어떻게 읽을지 몰라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됐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었는지, 댓글은 몇 개나 달렸을지 한 백 번은 본 것 같다.              .


   이런 느낌은 '유아론적 인생관' 때문에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나'라는 섬에 갇혀있다. 다른 사람과 연락하려면 '감각'이라는 연락선만 이용해야 한다. 내가 내 섬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걸 '자유'라고 부른다. 연락선을 이용할 때에는 그 배가 향하는 섬과 섬 주인도 고려해야 한다. 거기에서 '의무'가 나온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연락선이 뜸해진다. '노화'가 찾아오는 거다. 그러다 연락선이 '뚝'하고 아예 끊어져버릴 때 나는 영원히 혼자가 된다. 그걸 '죽음'이라고 부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글쎄, 남기고 싶어서 남기는 게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자꾸 찾기 때문에 남은 거겠지. 호랑이가 죽어도 찾는 사람이 없으면 가죽을 남길 수 없다. 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찾을 만한 내 이름이 없다. 나를 찾지 않는다는 건 내 섬으로 찾아오는 연락선이 끊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나는 이름을 남기고 싶다. 사람들이 나를 찾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를 찾을수록 나 강하게 내 존재를 느낀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많은      . 그런데  쓰면서 나를 표현하  .             .      고    .   .           .       드러내다 보면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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