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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Aug 28. 2016

집냄새

오랫동안 잊고 지낸 소중한 마음

   익숙하게 낯선 향이 포근하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부드러운 공기가 코끝에 닿는다. 오랜만에 찾아온 집에는 신기한 냄새가 난다. 향수를 뿌려서 나는 향도 아니고, 옷에서 나는 냄새도 아니다. 무엇 때문에 나는 냄새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어서 그냥 ‘집냄새’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집냄새가 참 좋다. 매번 맡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더 애틋하다.


   모든 사람은 그 사람만의 냄새가 난다. 길을 가다 스치는 사람에게서는 향수가 뿜는 향을 맡을 수 있다. 향수를 안 뿌리는 사람은 샴푸가 뿜는 향이 난다. 버스가 지나간 뒤 좇아가는 바람에 매연냄새가 엷게 나듯이, 사람들을 좇는 바람에 엷은 향이 퍼진다. 여러 사람들이 뿜어대는 가지각색의 향을 맡으면 눈길을 주기도 하고 거두기도 한다. 종종 같은 향수나 샴푸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도 하면서 무언가 들킨 것 같아 부끄러울 때도 있다. 향은 말없이 나를 드러내는 수단이다.


   옷에서도 사람마다 다른 냄새가 난다. 중학생 시절부터였다. 수업이 끝나면 교복을 벗어두고 운동장에서 놀았다. 신나게 땀을 흘리고 교복을 찾을 때마다 친구들과 옷이 섞였다. 그때마다 코에 옷을 대면서 ‘이건 네 옷, 이건 내 옷’하면서 나눠주곤 했다. 그 집에서 사용하는 세제나 섬유유연제는 주인을 가리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런데 옷에서는 세제에서 나는 향과는 조금 다른 냄새가 난다. 그래서 같은 세제를 쓰는 친구가 있더라도 꽤 오래 알고 지냈다면 별 어려움 없이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옷냄새는 뿜는 냄새가 아니라 품는 냄새다. 옷을 건네주거나 품에 안기기 전까지 좀처럼 맡기 어렵기 때문이다. 애초에 드러내려는 향이 아니어서 낯선 사람에게 들킬 염려가 없고, 꾸밈이 없이 부드럽다. 향수는 화장품이고, 세제는 비누다. 세수하고 나서 민낯을 보여줄 수 있는 사이에서나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옷냄새다. 향수가 뿜는 향이 과해서 인상을 찌푸려본 적은 있어도, 옷에서 나는 냄새가 지나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모자람과 지나침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친구라고 부른다.


   집냄새는 문을 열자마자 터져 나온다. 보고 싶었던 가족보다 먼저 와서 나를 감싼다. 그동안 다친 데는 없었는지, 바뀐 데는 어딘지 뜯어보듯이 내 몸 구석구석 배어들기 시작한다. “다녀왔습니다.” 신발을 채 벗기도 전에 가족들의 환대를 받는다. 간단히 웃음과 안부인사를 건넨 후에 거실 바닥에 발을 디디면 조금 달라진 집 풍경에 멈칫한다. “많이 탔구나, 고생했어.” 부모님은 방금 집냄새가 그랬듯이 구석구석 물어보신다. 어쩌면 보고 싶은 마음이 켜켜이 쌓여 익숙하게 낯선 냄새로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옷냄새가 품는 냄새라면 집냄새는 잊는 냄새다. 터져 나와 나를 감싸다가도, 발을 들이고 5분이 채 되기도 전에 관심 밖에 혼자 겉돈다. 다시 오랫동안 집을 비우기 전까지 이렇게 강렬하게 집냄새를 느낄 일은 없다. 귀가가 일상이 되는 순간, 향수가 뿜는 향에 밀려 옷이 품는 향에 밀려 집을 잊는다. 일상 속에서 집냄새를 떠올리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고 그와 친구가 되는 동안 가장 가까운 사람은 잊히는 법이니까. 조용한 밤, 혼자 남아 먼 곳에서 집을 그릴 때에만 은은하게 떠오르는 게 집냄새다.


   오랜만에 들어온 집은 정말 포근하다. 내 코는 이번에도 역시나 단숨에 무뎌졌다. 야속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모자라다 생각했던 집안 사정도, 지나치다 생각했던 부모님의 관심도 모두 다 감사하다. 집냄새는 향수가 뿜는 향기도 아니고, 옷이 품은 냄새도 아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낸 소중한 마음이 내는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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