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구역과 특별사면, 김영란과 착한 사마리아인
“… 고기 잡는 백성의 배들이 수군의 작전구역 안으로 넘어들어와 읍진의 경비 병력과 충돌이 잦았다. 어장에서 쫓겨난 백성들이 작당해서 수군 만호진 앞 포구로 배를 몰고 와서 꽹과리를 때리고 고동을 불면서 항의했다. //—이 바다가 뉘 바다며 저 고기가 뉘 고기냐. //—나라가 잘나서 백성들이 이 지경이 되었구나. //라면서, 악에 받친 백성들이 군관의 멱살을 잡았다. //작전구역 안의 어장과 수로를 백성들에게 열어주었다. 적의 정탐들은 어민을 가장하고 전라 수역 안으로 깊숙이 넘어들어왔다. 주린 피난민은 도적으로 변했다. 도적들은 야간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와 고깃배를 털었고 포구를 돌면서 노략질을 했다. //백성의 배들을 그 고향 마을 읍진 수군에 등록시키고 선주와 선원의 신원을 조사해서 통행증을 발부해주었다. 통행증을 내줄 때 쌀로 통행료를 받았다. … 한달이 못 되어서 군량 천 석을 모을 수 있었다. 수로마다 군선을 한 척씩 배치해서 백성들의 통행과 어로를 감시하게 했다. 밤에는 군선을 두 척씩 배치했다. … 백성들은 잘 따라주었다. 고기 잡는 백성들은 사례로 경비 군관들에게 어물을 주었다. 백성들의 오랜 습속이었고, 물량이 대수롭지 않았으므로 모른 척해두었다. 바람이 잠든 밤이면 연안에는 고기잡이배들의 어화가 되살아났다. …” [김훈 (2001), ≪칼의 노래≫, 문학동네, 215-216쪽]
“… 슬픔과 분노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해롭다는 것이 그 혐오감의 주된 논리였다. 세월호에서 놓친 골든타임이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으로 살아났고 거기에 이념의 날라리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사실 4·16참사 이후에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졌고, 정부의 부양책은 힘을 쓰지 못했다. 모두들 슬프고 분하면 경기는 침체되는 것이니까. 슬픔과 분노가 경기침체의 원인이라는 말도 결국은 동어반복이다. 어찌 헌 옷을 벗듯이, 헌신짝을 벗어버리듯이 마음의 일을 벗어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돈 많고 권세 높은 자들이 큰 죄를 저질러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형량을 줄여서 선고하고, 형기 중에도 특별사면, 일반사면, 집행정지, 가석방, 병보석으로 풀어주는 무법천지를 나는 자유당 때부터 보아왔고 자유당은 지금도 특별사면 중이다. 죄형법정주의는 무너졌고 경제는 합리적이고 규범적인 토대를 상실했다. 재벌의 불법을 용인해야 경제가 살아나고, 정당한 슬픔과 분노를 벗어 던져야만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은 시장의 논리도 아니고 분배의 정의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속임수일 뿐이다. 법치주의가 살아 있어도 법이 밥을 먹여줄 리는 없고, 밥은 각자 알아서 벌어먹어야 하는 것인데, 법치주의를 포기해야만 밥을 벌어먹기가 수월해진다면 이 가엾은 중생들의 밥은 얼마나 굴욕적인 것인가. …”[김훈 (2015), "[새해 특별 기고] 소설가 김훈", 중앙일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나도 그 줄 마지막에 선다. 내 뒤에 또 다른 사람들이 줄을 이어간다. 줄은 이어지고, 앞 사람부터 기다림을 끝낸다. 그 때 한 사람이 줄에 파고든다. 저 멀리 앞에서 파고들거나, 내 뒤 어딘가에서 파고들거나, 혹은 내 바로 앞에 파고들거나 상관이 없다. 지금 누군가가 내가 선 줄에 파고든다. 나는 그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더 나아가, 그를 옹호할 수 있는가?
새치기는 여러모로 정을 낳는다. 새치기는 일종의 기회지만 엄연히 반칙이다. 새치기꾼이 정을 말하면 그에게는 정나미가 떨어진다. 줄 서있는 사람이 정을 말하면 그 줄은 정겨워진다. 정은 개인의 변명이 아니다. 정은 사회의 화음이다. 줄 선 이들 모두가 끼어드는 사람을 옹호할 수 있거나, 반대하지 못할 때 정이 탄생한다.
끼어드는 사람을 반대하지 못할 이유는 정의롭다. 그러니까, 정은 정의에서 비롯된다.
“첫째, 각자는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자유의 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광범위한 체계에 대하여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둘째,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다음과 같은 두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즉 (a) 모든 사람들의 이익이 되리라는 것이 합당하게 기대되고, (b)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직위와 직책이 결부되게끔 편성되어야 한다.”[롤즈 (1971), ≪정의론≫, 황경식 옮김, 이학사, 2008년판, 105쪽]
줄에 선 모든 사람들이, 끼어드는 사람을 끼어들도록 하지 않으면, 줄 선 사람 스스로가 이익을 누리지 못하리라 생각할 때, 정이 탄생한다. 다시 말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끼어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끼어들 때 줄 선 사람의 마음 속에 합리적 분노가 일지 않아야 한다.
임진년부터 전쟁이 일었다. 어장이 부족해 백성이 굶었고, 백성이 굶어 군인도 굶었다. 모두의 생명이 촌각을 다투었다. 소설 속에서 이순신은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군이 백성에게 작전구역을 개방한 일은 정이다. 어장을 개방해준 답례로 백성들이 군관에게 어물을 준 일도 정이다. 작전구역이 문란해진 일과 군관들이 백성들에게 뇌물을 받은 일은 군법 위반이다. 새치기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줄에 끼어들도록 하지 않으면 줄이라고 부를 게 사라진다. 이순신은 두려웠다.
이 두려움은 유력한 기업인을 특별사면하는 일에 나타난 두려움과는 다르다. 누구나 공평하게 끼어들 수가 없고, 줄에 선 사람들 중에 나 같은 사람은 합리적으로 분노하기 때문이다. 죄형법정주의를 훼손하는 정부는 정경유착이 깨어지는 일이 두렵다. 법치주의를 우스워하는 기업인은 자기 삶이 감옥에서 소진되는 일이 두렵다. 그들의 연극을 보는,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나라 돌아가는 꼴이 두렵다. 정은 일종의 특권이지만 긴급한 특권이며, 끼어드는 사람만의 특권이 아니라 줄 선 모든 사람의 특권이다.
청탁금지법에 조소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정을 해치는 법은 청탁금지법이 아니다. 오히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 정이 지닌 진짜 의미를 훼손한다. 부정청탁이나 뇌물수수는 끼어드는 사람이 정을 말한다. 그들에게 정은 변명이다. 그러하지 말라고 법을 만들었다. 청탁금지법은 정을 지키는 법안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심정지를 일으켜 사경을 헤매는 택시기사를 내버려 두고, 트렁크를 열어 골프 가방을 챙겨 떠났다. 경찰이나 소방서는 그들로부터 신고를 받은 적이 없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아무도 돕지 않을 것이 두려워, 돕지 않으면 손해를 보도록 강제하는 법이다. 정의 의미는 오히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으로 인해 훼손된다. 정의 의미가 온전한 사회는 이 따위의 법이 필요하지 않다.
모두가 줄을 섰고, 누군가는 끼어들어야만 한다. 누군가는 끼어들어서는 안 되지만 끼어들어야만 한다는 행세를 한다.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는지 여부는, 줄 선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보았느냐에 달려있다. 정의 기원은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