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을 반대하는 윤리적 회색분자
태풍에 휩쓸려 고립된 마을에서, 유일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당신은, 가격을 무한정 높여도 좋은가?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흥미로운 딜레마가 나타난다. 수요가 동일한 상황에서 공급이 줄면 가격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손해를 보더라도 도와야 한다.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어느 한 쪽도 쉽게 선택할 수 없다. 어떠한 행위도 윤리와 완전히 결별할 수는 없다.
요즘 우리 사회도 딜레마에 빠졌다. 윤리적 명분으로 경제적 행위를 제한해도 좋은가? 이른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청탁금지법’은 ‘3(식사) 5(선물) 10(경조사)’으로 요약된다. 청탁금지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꽤 있었는데, 대체로 ‘부패를 용인하자’가 아니라 ‘이 정도면 인심이다’라는 논지였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데 수반되는, 충분히 납득 가능한 반론이다.
그러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반론이 있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 애꿎은 민생이 파탄난다는 주장이다. 지난 7 월 21 일 한국농축산연합회는 청탁금지법이 도입되면 농축수산물 시장은 직격탄을 맞는다고 주장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이에 가세했다. 음식점 수요가 감소할 것이므로 규제상한선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금도 일각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한다.
2015년 성인 남녀 1,300명을 대상으로 한 외식 산업 소비자 설문조사에서 평균 저녁 식사비는 17,850 원, 점심 식사비는 10,110 원으로 나타났다. 청탁금지법으로 민생이 파탄난다면, 우리 민생은 부정청탁을 위한 접대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던 것일까?
물론 접대에 공급되는 서비스가 곧바로 부정청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서비스는 간접적으로 부정청탁에 일조한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윤리적 회색분자가 된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부정청탁에 의존하는 일부 서비스업자는 ‘비윤리적이지 않은 행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호소한다.
청탁금지법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근묵자흑’이다. 부패한 자들의 수요로 연명하는 서비스는, 스스로를 선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경제법칙과 도덕법칙의 딜레마에서 우리 사회는 한 뿔을 잡았다. 윤리로부터 격리된 수요와 공급은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16년 10월 17일 숭대시보(숭실대학교 학보사) 자유여론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