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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r 05. 2017

공부의 방식

2017년 3월 5일, 쉰 번째

대학에 와서야 공부하는 재미를 알았다. 특히 철학이라는 학문이. 그 전까지만 해도 철학은 기분 나쁜 학문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홉살 인생>이라는 책이 끼친 영향이다. '골방 철학자'는 보라색 혀를 가진 기분 나쁜 인물이었으므로, 대학생이 되도록 철학은 내게 보라색이었다.

철학은 고리타분하지 않았고, 과거에 갇히지도 않았다. 오히려 호전적인 학문이다. 자기 스승을 무너뜨리는가 하면, 끊임없이 다른 이의 모순을 물어뜯고, 내 의견이 공격당할 여지는 없는지 자기반성과 보수공사를 이어간다. 철학자는 베어 그릴스보다 뛰어난 생존 전문가다. 물론, 그들의 도구는 불과 칼이 아니라 논리다. 소름 돋게 재미있었다.

군대에 갈 나이가 되었다. 공부를 멈추려니 조바심이 났다. 잃어버릴 2년 여를 대비하고 싶었다. 뒤쳐지고 싶지 않았다. 군복무를 하기 전에, 혹은 하는 중에라도 어떻게 공부해야 할는지 지도교수님께 여쭈었다.

"사람에 대해 공부하니 인문학이란다.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게 아니고. 복무 중에 수많은 사람을 만날 텐데, 오히려 좋은 공부가 될 거야. 책에서 배웠던 이론이 사람 사이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혹은 왜 적용되지 않았는지 생각하며 지내거라."

내가 사랑하려는 방식으로만 사랑한다면 상대는 떠난다. 공부도 마찬가지. 내가 공부라고 생각한 것만 공부인 것은 아니다. 삶의 모든 순간은 수업시간이고,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내 스승이다. 공부를 책으로만 해야 하리라는 생각은 과녁을 빗나갔다.

비단 철학 공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장 올바른 생각은, 내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 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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