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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r 07. 2017

아토피 타나토스

2017년 3월 7일, 쉰두 번째

어린 시절 아토피를 앓았다. 간질간질하다가 쓰르르-라리다가 피가 난다. 딱지가 앉고 진물이 나면, 다시 간지럽다. 무한한 굴레다.

치료법은 딱히 없다. 약을 바르면 살이 아문다. 아문 뒤에 잠깐만 정신을 놓으면 어느새 진물이 난다. 손톱 밑에는 딱지와 살점이 진득하다. 망할 놈의 무의식. 갈라져 터진 상처에서는 피가 흘렀다. 원망 섞인 짜증으로 부모님 가슴에 피를 내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아토피의 원인은 피부에 있지 않았다. 면역체계 이상. 혈관을 돌아다니는 백혈구들이 과민하게 몸을 지킨 탓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쁜 것들이 몸에 닿으면 백혈구들이 그곳에 몰려 집중포화를 퍼붓는다. 멀쩡한 살에 물집이 잡히고 가려움이 번지는 이유다.

어른이 된 후로는 조금 나아졌다. 물론 아직도 많이 가렵지만, 진물은 더 이상 나지 않고 각질만 올라오는 정도. 자꾸만 긁어대는 무의식에 침을 뱉은 덕분이다. 프로이트가 말하길, 인간은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동시에 갖추었다. 에로스는 생명을 발하려는 본능이고, 타나토스는 죽음을 앞당기려는 본능이다.

프로이트는 손에서 시가(cigar)를 놓은 적이 없다. 아마 흡연행위를 보고 타나토스를 떠올린 것 같은데, 담배보다 더한 타나토스는 '긁기'다. 담배는 건강에 좋지 않다. 그런데 담배를 핀다고 내일 당장 암에 걸리거나 고통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긁기는 훨씬 더 즉각적이다. 쾌감이 절정에 이르려는 찰나, 피가 나고 쓰라림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 손톱 밑에 낀 진물과 핏덩이를 보면 본능의 힘을 부정할 수 없다. 씻은 듯이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아토피는 죽음까지 함께 갈 듯싶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삶과 죽음의 굴레는 아토피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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