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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r 12. 2017

#해시태그

2017년 3월 12일, 쉰일곱 번째

고뇌가 보인다. 누군가는 수줍게 한 두 개. 누군가는 와장창. 문장으로 구성된 생각을 어떻게든 해체해 단어로 끄집어내려는 노력이 드러난다. 어떤 이는 그게 어려워 문장을 그대로 집어넣는다. #이런 #방식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렇게_하는_사람도_있다.

해시태그는 왜 탄생해야 했을까. 길고 어려운 글이 되겠다. 시간이 없거나 지루할 것 같으면 마지막 한 단락만 보아도 충분하다.

교감을 나누는 공간이 점점 감각적으로 변하고 있다. 내 공간에 글을 쓰다가, 모두가 보는 곳에 글을 쓰더니, 이제는 모두가 보는 곳에 글보다 더한 것들을 걸어둔다. 글보다 더한 것. 기호학에서는 '뜨거운 매체'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 것을 읽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떠올린다. 이 과정을 촉발시키는 존재, 혹은 과정 그 자체를 '기호'라 한다. 기호가 담긴 공간은 '매체'다. 작은 공간에 기호가 빽빽이 들어서면 뜨겁다고 표현한다. 사진이 그렇고 영화가 그렇다. 글은 차가운 매체다. 너른 공간에 듬성듬성 기호가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매체는 언제나 차가운 매체보다 더 많은 기호를 담고 있다.

매체는 점차 뜨거워진다. 이성이 감각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우리는 감각의 홍수에 사는데, 말로 할 수 없는 감각이 종종 있다. 말로 하면 왜곡되는 감각도 있다. 감각의 이런 특성을 '감각질'이라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감각을 언어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려 한다. 같은 공간에 더 많은 기호를 담고 싶어 한다. 페이스북이 지고 인스타그램이 뜨는 이유다.

따봉충이라 하지 말고, 인스타충이라 하지 말자. 우리가 교감하는 이유는 단 하나, "너도 똑같지?"라고 묻기 위함이다. 비언어적 의사소통부터 SNS까지, 근본 원인은 모두 같다. 나의 감각이나 생각을 너도 똑같이 느끼면 쾌감을 얻는다. 칸트가 말한 '공통감'이다. 그래서 좋아요 하나에 희비를 오간다.

그런데 감각만 덩그러니 놓이면 문제가 있다. 나는 '나'일 뿐이고, 모든 사람은 각각의 '나'다. 모든 이의 감각은 전부 동일할 수 없다. 같은 사진을 보아도 다르게 느낄 가능성이 더 크다. 심지어는 내가 보는 빨간색이 네가 보는 빨간색과 같은지도 알 수 없다. 뜨거운 매체로 교감을 하기 위해서는, 감각에 대한 최소한의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교감을 위해 감각은 언어를 거쳐야만 한다. 불가피하다.

해시태그는 아주 유용하다.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공통감을 불러일으킨다. 해시태그를 달면서, 다른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한 번. 전하고자 하는 감각이 불필요한 말에 훼손되지 않아서 또 한 번. 해시태그를 통해 구경온 사람이 누른 좋아요에 마지막 한 번 더.

말이 많았다. 매체의 온도로 따지면 이 글은 아마 액체질소쯤 될 듯싶다. 정리하면 이렇다. 감각질을 극복하려 매체를 달구지만, 공통감을 위해 매체를 식힌다. 이때 해시태그는 안성맞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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