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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r 13. 2017

무한궤도, 일상

2017년 3월 13일, 쉰여덟 번째

모든 길에는 끝이 있다. 끝이 있는 이유는 시작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땅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더 나아갈 수 없다. 우주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위성 궤도의 끝은 지표면이다. 지구를 영원히 공전할 것 같은 달도 언젠가는 지구에 떨어진다. 영원은 아득한 환상이다.

길은 변화를 전제한다. 변화는 움직임이다. 내가 바뀌어야 내가 있는 장소가 길이라 불린다. 변화는 시작과 끝을 전제한다. 길이 끝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끝없는 길이 하나 있다. 무한궤도라 불리는 물건이다. 무한궤도 위에서 바퀴는 끝과 동시에 시작을 맞이한다. 무한궤도는 모든 곳이 끝이기도 하고 시작이기도 하다. 바퀴는 매순간 돌았던 곳을 또 돈다.

종종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참 열심히 돌고 있는데도 말이다. 일상은 소설처럼 별나지 않다. 하던 일을 하고 또 한다. 한 일만 반복하다 삶이 끝날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이는 그것을 권태라 부르고 누군가는 안정이라 부른다. 나는 그것을 무한궤도라 부른다.

무한궤도는 길이자 바퀴다. 무한궤도가 가는 길은 유한한 길이지만, 무한궤도는 그 자체로 무한한 길이 된다. 길 위의 길이다. 반면, 무한궤도 위에 있는 바퀴는 변화하지 않는다. 쳇바퀴를 도는 생쥐처럼, 바퀴는 무한궤도 위 이외에 어느 곳으로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무한궤도는 움직인다. 바퀴는 모르겠지만, 무한궤도는 길을 간다. 그러므로 무한궤도는 바퀴이기도 하다.

가끔 뒤를 돌아보면, 많은 것이 바뀌어 있다. 과거의 일상은 지금의 일상과 같을 수 없다. 반복된 일상에서 변화의 씨앗은 온데간데 찾을 수 없지만 삶은 시간을 따라 묵묵히 흐르고 있다. 삶을 이루는 건 일상이다. 그래서 일상은 쳇바퀴이자 바퀴다.

무한궤도가 유용하게 쓰이는 때는 진 땅을 지날 때다. 자동차가 진창에 빠지면 바퀴가 헛돌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헛도는 바퀴 숫자만큼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한궤도를 장착하면 진창에 빠지더라도 문제 없다. 진창에서, 바퀴가 가는 길은 무한궤도 한 칸이지만 무한궤도는 어느새 탈출하게 된다.

일상에 주목하면 고난을 헤치기 쉽다. 괜히 부모님께서 규칙적으로 생활하라고 잔소리하신 게 아니다. 물방울이 모여 돌을 뚫는다. 큰 일에 바로 달려들면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잘게 나누어 일상으로 만들면, 어느새 해결되어 있다.

그러나 무한궤도도 영원한 것은 아니다. 땅이 아주 험하거나 오랜 시간을 달리면 언젠가는 무한궤도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끝이 없는 길은 있을 수 없다. 끊어짐은 무한궤도의 끝이다. 무한궤도 위를 달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무한궤도가 끊어지지 않도록 날마다 보살피는 일이다. 매일 마주하는 길이지만, 언제나 처음 만난 것과 같이 새로이 반겨야 한다.

사람은 죽는다. 죽음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일상을 잘 돌보아야 한다. 권태는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므로 일상에서 권태를 느낄 수 없다. 모든 일상은 새롭기 때문이다. 무한궤도 위를 도는 바퀴는 언제나 다른 무한궤도를 돈다. 흙이 튄 자국부터, 미세하게 패인 흠집까지, 매순간 무한궤도는 모습을 달리한다. 권태는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서 찾아오는 게 아니다. 작은 변화에 민감하게 집중하지 못해서 찾아오는 법이다.


우리는 삶과 직접 마주한 존재가 아니다. 삶은 일상이 가는 길이고, 우리는 일상 위에서 도는 바퀴다. 일상은 매일매일 반복된다. 죽음을 망각하고 사는 이유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시작이 있었음을, 그러므로 끝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삶은 일상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잊지 말자. 우리는 인생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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