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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Mar 27. 2017

비판과 추종: 서양철학사로 본 권위 이야기

2017년 3월 26일, 예순일곱 번째

"우선 플라톤은 철학 언어의 구문을 이해하지 못한다."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서상복 역, 2009년, 192쪽.

이젠 무서울 지경이다. 러셀은 차분히 칼춤을 춘다. <서양철학사>는 단순히 권위자들의 생각을 나열한 책이 아니다. 가끔은 비웃음으로, 그게 모자라면 비아냥도 서슴지 않으며 수많은 권위에 도전한다. 이 책은 설명문이 아니라 논설문이다. 러셀의 칼춤을 보다보면 권위를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권위의 힘은 대단하다. 권위는 인용되어 무권위자의 생각에 힘을 싣는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권위의 계보는 이역만리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4대 성인이라 이름 붙이면서 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예수를 신격화하기도 한다. 그들이 말했다고 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러셀이 제기한 첫 번째 문제다. 사람들은 권위 앞에 복종한다.

끄덕임은 항복이다. 나의 의식을 너의 생각으로 채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권위자의 생각은 수많은 끄덕임을 전리품으로 챙기고 진리에 근접한다.

끄덕임은 수치가 아니라 교양이 되어간다. 어떤 이들은 권위자를 추종한다. 추종하기 위해서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자격을 갖추면 권위자의 권위를 나누어 갖게 된다. 예수의 말을 빌리기 위해서는 목사가 되어야 하듯이, 혹은 선학의 말을 빌리기 위해서는 학위를 얻어야 하듯이 말이다.

이러한 사태가 지속되다보면 주객이 전도된다. 요컨대, 사람들이 권위자의 생각이 아니라 추종자의 자격에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권위자의 말은 잊히고, 추종자의 자격만 남는다. 러셀이 본 두 번째 문제다. 추종자조차 권위자의 말을 잊는다.

러셀은 두 문제 모두에 칼을 휘두른다.

"플라톤이 산수와 기하학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을 뿐 아니라 산수와 기하학이 그의 철학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는데도, 몇 사람을 제외하면 현대 플라톤 연구자들이 수학에 무지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중략]
결국 누구든 플라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태에는 마음 쓸 겨를조차 없이 그리스어를 공부하느라 젊은 시절을 다 보내지 않았다면 플라톤에 관한 글을 써서도 안 된다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같은 책, 199쪽.

한 마디로 이 말이다. "어이, 따르기라도 제대로 해, 나처럼 비판할 실력 안 되면."

그런데 이걸 듣고도 나는 오늘도 속절없이, 끄덕끄덕. 아직 한참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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