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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수 Sep 03. 2021

작자미상에 관한 소고

아무 의미 없다

작자미상의 작품들이 있다. 오래 돼서든 중간 관리가 잘못 돼서든 누가 만든지는 모르나 후세에 회자되는 명품들. 한때는 이런 작자미상 작품의 원작자들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이름이라도 남기는 게 유한한 인간의 유일한 욕심인데 이름표는 훌렁 날아가고 작품만 남았으니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생각.


덕수궁미술관에 다녀왔다. ‘DNA : 한국미술의 어제와 오늘’. 결론적으로 아주 좋았다. 지난 달엔가 본 이불 전시는 다 늙은 두뇌와 감각이 공감하기에 어려웠다면 오늘 전시는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

좋습니다. 꼭 다녀오세요~

어제와 오늘이란 이름만 듣고 적당히 근현대미술을 모아놨겠구나 했으나. 웬 걸. 저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까지 어디서 구해왔더라. 고려시대 불상들, 도자기, 조선시대 신윤복 김홍도 작품 등 어제라기엔 먼 시절의 작품들까지 볼 수 있었다.


역시나 작자미상의 작품들이 많았다. 그와 달리 나란히 전시된 근현대 작품엔 김환기, 박서보, 이중섭 등 익숙작가의 이름이 함께 표기돼 있었다. 이러나 저러나 사람은 가고 작품은 남았다. 이름이 있건 없건 돈 버는 건 작품의 소유자요, 왈가왈부하는 건 우리들이다. 땅 속이건 하늘이건 제 이름이 회자돼 즐거워서 뭐할 것이며, 제 이름 잃은 작품들을 보며 원통해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란다. 죽어 이름 남길 생각 말고 적당히 벌어 적당히 쓰고 적당히 맛있는 거 먹고 잘 싸고 적당히 남기고 가자. 모르긴 몰라도 남기지 못한 아쉬움보다 다 쓰고 가지 못한 억울함에 눈 감지 못하는  영혼이 더 많지 않을지. 쓰자. 좀 더 쓰자. 결혼기념일인데 10,000원 짜리 오징어 볶음 같은 거 말고 더 맛있는 거 먹자. 내년엔 꼭 2만원 짜리 고기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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