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의미 없다
작자미상의 작품들이 있다. 오래 돼서든 중간 관리가 잘못 돼서든 누가 만든지는 모르나 후세에 회자되는 명품들. 한때는 이런 작자미상 작품의 원작자들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이름이라도 남기는 게 유한한 인간의 유일한 욕심인데 이름표는 훌렁 날아가고 작품만 남았으니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생각.
덕수궁미술관에 다녀왔다. ‘DNA : 한국미술의 어제와 오늘’. 결론적으로 아주 좋았다. 지난 달엔가 본 이불 전시는 다 늙은 두뇌와 감각이 공감하기에 어려웠다면 오늘 전시는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
어제와 오늘이란 이름만 듣고 적당히 근현대미술을 모아놨겠구나 했으나. 웬 걸. 저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까지 어디서 구해왔더라. 고려시대 불상들, 도자기, 조선시대 신윤복 김홍도 작품 등 어제라기엔 먼 시절의 작품들까지 볼 수 있었다.
역시나 작자미상의 작품들이 많았다. 그와 달리 나란히 전시된 근현대 작품엔 김환기, 박서보, 이중섭 등 익숙작가의 이름이 함께 표기돼 있었다. 이러나 저러나 사람은 가고 작품은 남았다. 이름이 있건 없건 돈 버는 건 작품의 소유자요, 왈가왈부하는 건 우리들이다. 땅 속이건 하늘이건 제 이름이 회자돼 즐거워서 뭐할 것이며, 제 이름 잃은 작품들을 보며 원통해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란다. 죽어 이름 남길 생각 말고 적당히 벌어 적당히 쓰고 적당히 맛있는 거 먹고 잘 싸고 적당히 남기고 가자. 모르긴 몰라도 남기지 못한 아쉬움보다 다 쓰고 가지 못한 억울함에 눈 감지 못하는 영혼이 더 많지 않을지. 쓰자. 좀 더 쓰자. 결혼기념일인데 10,000원 짜리 오징어 볶음 같은 거 말고 더 맛있는 거 먹자. 내년엔 꼭 2만원 짜리 고기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