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꼰대들을 위한 작은 변
그야말로 화제의 신간. 아는 사람들은 아는 그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원래는 블로그에서 연재하던 이야기인데 워낙 인기가 많아 책 출간 그리고 드라마, 웹툰까지 제작이 확정되었단다. 나도 몇달 전 블로그를 통해 대부분의 내용을 이미 읽었던 터.
재밌다. 일단은 온라인에서 연재되던 작품 특성상 굉장히 쉽게 읽힌다. 어렵게 쓰여졌으면 애초에 인기를 끌지도 못했을 듯. 문체도 문체이지만 내용 자체의 흡입력이 상당하다. 대부분 회사에 있을 법한 50대 부장급 꼰대 아저씨상의 이야기.
이 작품에 쏟아지는 공감은 엄청났다. 주변 지인들도 연재 당시 입이 닳도록 추천했을 정도. 나의 경우 지금 속한 회사 부서의 평균 연령도 낮고-아마 20대 중반?- 성비도 압도적으로 여성이 높아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옅어 공감의 정도는 덜했으나, 딱 한사람. 나름 전향적인 분위기가 못마땅해 한번씩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거나 폭발하시는 그분을 상상하며 후루룩 읽어내려갔다.
나름 팀장이기도 하고 30대 후반에 접어든 입장에서 꼰대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출산, 그리고 '토니 애드만'이라는 영화.
과연 꼰대가 나쁜 것일까. 본인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낸, 그래서 그 시대에 익숙해져버린 그들 역시 새 시대의 피해자 아닐까. 당시엔 정답이었던 삶의 방식이 이제는 오답이 되었으나 달려온 가속과 관성을 주체하지 못해 그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에 진정한 가해자는 누구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를 말한 어느 왕비를 만든 건 누구인가. 태어나 보고 듣고 씹고 뜯고 즐긴 것이라곤 오로지 귀하고 아름답고 고급진 것이었던 그녀가 서민들의 눈물 젖은 빵을 상상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화살을 온전히 그녀에게 돌리는 것이 정당한가. 사형제도가 폐지된 지금의 눈높이에서 교수형이 횡행하던 당시의 문화를 미개하고 잔인하다 비난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자녀에 대한 체벌이 금기시된 지금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 부모세대의 훈육방식의 죄를 각자의 부모에게 온전히 따져 묻는 것이 옳은 것일까.
물론 지금 세대가 그들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나 살기도 힘든 세상이다. 나 역시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허나 각자 시절의 시대정신, 행동양식, 논리가 있다는 점 정도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건 물론 꼰대들에게도 필요한 조언이다. 이제 당신들은 주인공이 아니다. 시대는 바뀌었다. 걱정마라. 그들의 시대도 곧 갈 지어니.
그럼 김부장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욕을 해도 좋고 가엾게 생각해도 좋다. 중요한 건 욕을 할 수도 가엾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욕을 한다고 해서 철부지, 가엾게 생각한다고 해서 틀딱 씹꼰대라 비난하지 말자. 아프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 개인기록용으로 좀 길어요. 안보셔도 됩니다*
<1부 김부장 편>
-다른 생각 안하고 회사 일에만 매진하는 게 김부장에겐 딱이다. 16p
-팔힘으로 트렁크를 쾅쾅 열고 닫는 최보장의 모습을 보며, 전동 트렁크를 쓰는 자신이 더 급이 높다고 생각한다. 36p
-김부장은 생각한다. 내가 꼰대인가? 아니야 이건 꼰대가 아니야. 41p
-질투심과 불안감이 몰려온다. 49p
-나보다 공부도 못했고, 대학도 직장도, 사는 곳도 구린 이 놈팽이가 건물주라니. 66p
-아무튼 사업하는 사람이나 의사나 다 사기꾼이야. 다들 너무 쉽게 돈을 벌어. 86p
-여행가면 돈만 쓰는 게 왜 좋다는 건지 모르겠어. 84p
-김부장은 미안해하지 않기로 한다. 84p
-회사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늘어놓는 것. 그것이 김부장이 사람들과 하는 이야기의 전부이다. 104p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사람이냐,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냐, 이 둘의 차이는 엄청난 거야. 126p
-백수로 살기는 싫다. 뭐라도 해봐야겠다. 148p
-오늘 김부장은 회사를 떠난다. 더이상의 울타리는 없다. 자신감 -100, 두려움 200 161p
-이제는 내가 궁금해졌다. 그 잘난 김부장에 대해 231p
-물체에도 관성이 있듯 삶에도 관성이 있다. 240p
<2부 정대리. 권사원 편>
"그래도 인생은 한번 뿐이잖아요. 화끈하게 살아야죠."
"인생이 한번 뿐이라고? 잘들어 정대리. 죽는 순간이 단 한번뿐이지, 우리 인생은 매일매일이야." 27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