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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bre Aug 15. 2019

샌프란시스코에 언니가 산다 #8

이동하며 보이는 것들 1

59.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에 지나지 않아 그 누구도 일부러 알려주지 않는 것들을 스스로 발견했을 때는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이동하며 보이는 것들이 특히 그렇다. 관찰하고 기록하는 여행은 대부분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어디서 여행하든 그 도시의 버스와 지하철, 택시를 꼭 한 번씩 타보는 이유도 같다. 전혀 다른 시야에서 다른 각도로 보물찾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60.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혼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걸어 다니며 사람 구경을 할 수도 있고 언니 차 조수석에 앉아 더 먼 동네의 구석구석까지 볼 수도 있다. 조수석은 길눈이 밝지만 운전면허가 없는 나에게 언제나 대환영인 포지셔닝이다. (고속버스에서 오른쪽 맨 앞 좌석에 앉는 것과 같다.) 운전자가 보는 도로표지판은 또 다른 느낌이고 심지어 그것이 다른 언어로 적혀 있다면 더욱 흥미롭다.


61. [St.]과 [Ave.] 표시는 이 곳이 서양임을 알게 하는 대표적인 표지판이다. 스트릿(Street)은 동서를 가로지르고 에비뉴(Avenue)는 남북을 세로진다. 종종 아닐 때도 있는데 적어도 스트릿과 에비뉴가 크로스로 있을 때는 St.은 동서, Ave.는 남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버스 정류장 이름은 주로 이것을 기준으로 정해지는데 예를 들어 정류장이 [A st.&B ave.], [A st.&C ave.], [A st.&D ave.]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면 버스가 A 스트릿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B, C, D 골목에 차례대로 정차하는 것이다. [Blvd.]는 좀 더 큰 대로의 개념이고 볼러바드(Boulevard)라고 읽는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미리 알고 있으면 길 찾기가 훨씬 수월하고 재밌어진다.

Haight St.을 따라 빈티지샵과 음반점들이 쭉 이어진다. 좋아하는 동네, <하이트&애쉬베리>


62. 주거지역의 교차로에는 신호등 대신 [STOP] 표시가 있다. 모든 차가 3초간 정차한 이후에 먼저 온 순서대로 가라는 뜻이다. 처음 봤을 때는 다른 차가 있으나 없으나 차가 3초간 정차하고 차례대로 출발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이 [STOP] 사인은 도로뿐만 아니라 스쿨버스에도 붙어있다. 학생들이 승하차할 때 버스 왼쪽에 붙어 있던 표지판이 앞뒤에서 보이게 열리고 이 때는 승하차가 끝날 때까지 뒤에 서 있는 모든 차가 기다려야 한다. 차선에 따라 반대편에서 오고 있는 차도 멈춰야 한다. ‘Stop’은 특정 행동을 직설적으로 강하게 부정하는 단어인데 어떤 곳에서는 배려와 양보의 의미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63. 운전과는 아무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표지판은 [DETOUR]와 [DEAD END] 그리고 [END]다. ‘우회로’를 뜻하는 [DETOUR]는 원래의 여정(Tour)을 벗어난다(De=Away)는 어원과 단어의 발음(디:투어)이 예쁘고, [DEAD END]는 ‘막다른 길’인데 굳이 Dead를 붙여서 길이 정말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 귀엽다. [END]는 각 St.이나 Ave.가 끝나는 곳에 붙어있는데 ‘이 길 끝!’이라고 알려주는 것도 귀엽지만 우리 동네 근처인 Page St. 위에 [END]가 붙어 ‘END Page’가 된 걸 봤을 때 느낀 로맨틱함을 잊지 못한다.  


64. 한국에서 깜빡이는 운전자 간의 매너로 통용되지만 이 곳에서 깜빡이는 정말 차에 문제가 있거나 긴급하게 차를 정차해야 하는 비상시에 켜는 것이다. 양보를 요청하거나 감사의 인사를 할 때는 손! 손을 사용한다. 손으로 인사를 하려면 창문을 내려야 하고 그럼 자연스럽게 눈도 마주치게 된다. 손만 보이더라도 그 손의 존재에서 결국 운전은 인간과 인간이 계속해서 배려하고 양보해야 하는 것임을 느낀다. 나는 이 아날로그함이 너무 쿨하고 마음에 든다.

65. 고속도로를 타면 각 주(State) 별로 다른 번호판을 보는 것도 아날로그한 매력 중 하나다. 어릴 때 고속도로 휴게소에 주차된 차들을 보고 ‘이 차는 멀리서도 왔네’, ‘이 차는 부산에서 왔네, 반갑네’ 하던 추억을 미국에서 다시 떠올릴 수 있다. 알래스카 주에는 설산이, 애리조나 주에는 사막이, 오리건 주에는 큰 나무가 그려져 있는 식이다. 무엇보다 미국은 돈을 많이 내면 자신이 원하는 영문과 숫자의 조합으로 번호를 만들 수 있고 색상도 고를 수 있기 때문에 그 재미가 더 쏠쏠하다.

오리건주의 커스텀 번호판들 ( 출처 : ktvl.com )


66. 미서부에서는 세로로 길게 뻗은 고속도로를 따라 차로 이동하는 로드트립을 주로 한다. 나는 전혀 계획이 없었다가 요세미티와 LA를 언니가 운전해서 가게 되면서 고속도로를 제법 장시간 타게 되었다. 중간중간 한 숨 자야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풍경 보기 바빠 한 숨도 못 자고 이동했는데, 양 옆으로 탁 트인 대자연과 멀리서 보면 도로의 끝에 길을 막고 있는 것 같은 거대한 바위산 그리고 이전에 미국의 농산물 가격이 싸다는 내용을 쓰면서 언급했던 대규모 농장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지평선 끝까지 보이는 체리나무가 5분내내 이어지는가 하면 풀밭을 빽빽하게 메운 소들이 10분 내내 보인다. 토마토가 산처럼 쌓인 2톤 트럭이 10대도 넘게 줄줄이 지나가기도 한다. 트럭도 종류별로 어찌나 많은지 트럭 행렬 차선에 잘못 걸리면 꼼짝없이 갇혀서 달려야 한다.


67. 트럭은 2~3차선에서 정해진 제한속도로 달려야 한다. 1차선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추월 차선이다. 시간대에 따라 Carpool Lane으로 운행되기도 하는데 2명 이상 혹은 3명 이상 탑승하고 있는 차량만 도로를 사용할 수 있고 인원 수와 시간대는 표지판에 써져있다. 막히는 시간대에는 놀이공원 패스트패스처럼 기분 좋게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다. 고속도로가 그렇게 자주 막히냐 하면 그렇다. 미국은 1가구1자가용 비율이 높은 데다가 샌프란이나 LA 같은 대도시의 집값이 너무 비싸 근교 도시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해 2~3시간 걸려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정말 많다고 한다. 요세미티를 가던 길에 평일 새벽 5시쯤 샌프란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탔는데 샌프란으로 들어오는 반대편 차선이 그때부터 막히기 시작해서 깜짝 놀랐다. 카풀레인 정책은 이로 인해 늘어난 교통체증과 환경오염을 줄여보고자 하는 정책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출처 : wikipedia.org


68. 마냥 카풀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조금 다른 형태긴 하지만 우버(Uber)나 리프트(Lyft)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가 실제로 정말 활성화되어있다. 상상 초월이다. 도로 위에 있는 차량 3대 중 1대 꼴로 우버나 리프트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공항이나 호텔, 관광지에 가면 ride share 구역이 따로 있어서 운전자와 승객이 엇갈리지 않고 만날 수 있게 잘 되어있고 그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다. 이 도시에는 처음부터 택시라는 교통수단이 없었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량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고 또 애용한다.


69. 우버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하기도 했지만 이 도시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가 특히 더 활발하게 이용되는 이유는 주차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은 어딜 가든 땅이 넓어서 주차 걱정은 없겠다는 인식과는 달리 샌프란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는 주차 전쟁이다. 건물 안에 있는 주차장은 너무 비싸고 그나마 저렴한 스트릿 파킹을 이용해야 하는데 샌프란시스코는 특히 길이 좁고 언덕 지형에 일방통행 길이 많아서 주차난이 더욱 심각하다. 룰도 어찌나 까다로운지 길마다 있는 주차안내표지판은 광고보드만큼 텍스트가 많아서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조그만 글자까지 꼭꼭 다 읽어봐야 한다. 시간대별로 주차가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주차를 해도 돌아올 시간을 미리 정해서 돈을 내놓고 꼭 그 시간 안에 돌아와야 한다. 레고같이 생긴 차를 타고 다니는 주차요원이 수시로 돌아다니고 있는데 1분만 어겨도 벌금이 10만원이다. 그러니 호출도 결제도 몸도 마음도 편한 차량 공유 서비스가 잘 될 수밖에 없다.

저 시간대에 주차했다간 오른쪽 주차요원한테 걸려서 혼쭐난다


70. 나도 가끔 우버를 사용하고 있는데 정말 편하긴 하다. 특히 최근에 생긴 우버풀(Uber+CarPool) 옵션은 기술과 서비스가 함께 최적화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은 정도로 놀랐다. 목적지를 입력하고 우버풀 옵션을 선택해서 기다리고 있으면 앱 내에서 근처에 있는 운전자와 또 다른 우버풀 승객을 매칭 해주고 최적의 동선으로 이동할 수 있게 승객들도 도보 3분 이내의 위치로 이동시킨다.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목적지가 동선에서 딱 맞으면 바로 내려주고 아니면 최대한 가까운 곳에 내려준다. 비용은 거의 절반이다. 한국 택시비보다 저렴할 때도 있다. 운전자도 앱에서 정해준 동선대로 이동하니 돌아갈 일도 없고 금액적으로도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다. 머지않아 전 세계에서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겠지만 그 시작에 항상 샌프란시스코가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도시긴 하다.

처음엔 조금 혼란스럽지만 한 번만 타도 적응된다


71. ~ ‘이동하며 보이는 것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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