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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벌이라는 옷”

헤라클레스의 틈

by 맨발바닥

30여 년 전 교보문고에서 책을 살펴보다가 유난히 눈에 띄는

책 제목들을 발견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성자가 된 청소부”


유치원이 흔치 않던 시절

나는 바로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라는 공간 속에서 살다 보니,

학벌은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어느 대학을 나왔냐 “, ”어떤 학위를 가지고 있느냐? “

인간 의로서의 가치보다는, 그가 걸친 ”옷“으로 사람을 평가하려 한다.

화려하고 지위가 높아 보이는 옷을 입기 위해 노력하고

목표를 달성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는 학벌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만을 위해 취득한 학벌은, 공동체 속 안으로 들어가면,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회라는 공간은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이 상존한다.

개인주의, 타인에 대한 이해 부족, 불협화음 같은 갈등은

수학공식 물리법칙, 역사의 연표를 몰라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 배웠어야 할 인사, 예의, 배려, 위계의 존중 같은

기초 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고, 사회에서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

학벌이 좋다 해도, 이것을 활용하는 공간은 사회이고

혼자 방 안에 갇힌 졸업장과 박사학위는 자신만의 트로피일 뿐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배운

예의범절, 올바른 인성, 서로 도와주며, 싸우지 않는 것,

사회의 규칙과 질서, 법을 지키는 이런 기초적인 교육이

사회생활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학벌보다 더 유용하고 가치가 있다.

즉, 우리가 유치원 시절에 배운 것이 더 귀하게 쓰인다.

또한, 제도권의 교육이라는 것이 그렇다.

마치 콩나물시루에 같은 콩을 몰아넣고, 물을 매일매일 붓는 것과 같다.

콩나물은 그 물을 먹고, 대부분 비슷비슷한 크기로 자란다.

어떤 것은 1cm 정도 더 자라고, 어떤 것은 1cm 덜 자란다.

조금은 크고, 작지만, 거기서 거기다.

토토리 키재기 하는 것과 같다.


의대를 졸업하고 학위와 자격을 취득해 병원을 개업하고 상가 건물에 들어갔다.

건물 임대료 내고, 기계 대출 갚고, 직원 월급을 줘야 하고, 가정을 꾸려야 한다.

밑의 층의 슈퍼 주인도 월세를 내고, 물품을 구입하고, 직원 월급주며 자식을 키운다.

문방구 사장님 역시 월세내고 책과 공책을 사고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

대학병원 과장은 아랫사람을 교육하고 의견 차이로 인한 스트레스, 환자들의 외침 속에,

사진관 사장도 마찬가지이다.

아랫사람을 교육하고 갈등과 스트레스 겪으며, 고객의 불평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제 콩나물시루에서 상가 건물이라는 공간으로 옮겨진 것이다.


누가 1cm 크다, 1cm 작다. 하는 키재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 본연의 아주 순수한 어린 시절에 배웠던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는 것,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서로 배려하는 것, 유치원에서 배웠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유치원 꼬마의 모습에서, 어른이 되었으면,

이제는 그 시야를 넓혀야 한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고

시루 속의 콩나물이 아닌, 이제는 물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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