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주어가 빠진 삶의 문장"

헤라클레스의 틈

by 맨발바닥

배차 간격이 1시간인 버스를 놓쳐 버렸다.


낭패다!

버스를 탔어야 했는데..


지나간 시간 속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괴롭히는 문장이 있다.

직장을 잃었을 때는 일을 찾아야 한다.

사업이 안 될 때는 일을 찾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

나의 부끄럽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는 문장들이 머릿속을 스칠 때면 불편하고 심하면, 절망 속으로 빠지게 된다.

올바른 문장이 되려면 주어와 목적어 동사가 있어야 한다.

한글과 영어는 동사와 목적어의 위치가 다르지만, 문장의 기본 구성 요소는 같다.

동사는 어떤 행위의 움직임을 나타내며 미래 진행형이다.

목적어는 사람, 사물, 지형 등을 일컫는 명사로 고정된 것을 말하는 과거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마음속에는 무수히 많은 문장이 형성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풍성한 음식과 사람들, 욕망과 증오, 고급 자동차와 아파트 같은 명사적 이미지가 일어나면

그 뒤를 따라붙는 동사적 소리들이 들린다.

하고 싶다, 하기 싫다.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이미지와 문장은 나의 삶을 지치게 하곤 한다.

이미지가 보이고, 마음의 소리가 들리면 응당,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데 해야만 하는 것”이 된다.

목적어와 동사로 이루어진 이 문장에 휩쓸려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 좌절에 빠지곤 한다.


마음속 노트에 쓰인 문장에는 동사가 먼저 뛰쳐나오기도 하고, 목적어가 빵긋 웃음을 보이고 사라진다.

때로는 동사 홀로 슬며시 나타나 내 몸에 영향을 주고 사라져 버린다.


타인의 마음속 노트에는 또 다른 문장들이 쓰여 있을 것이다.

자녀와 부모의 문제, 혹은 자신의 욕망과 좌절이 담긴 쓰라린 문장들이 기록되고 읽힌다.

이러한 문장들은 밝음 속 현재가 아닌, 어둠 속 과거와 미래의 글귀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 내 몸과는 별개로 마음속 노트에 쓰인 글귀에 무너지는 것이다.


마음속 문장에는 대부분 주어 가 빠진 채 “하고 싶다 하기 싫다”라고 쓰이며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읽히곤 한다.


주어는 “지금 여기” 있음에도 말이다.

주어인 내 몸은 지금 여기에 있는데, 목적어와 동사라는 과거와 미래의 문장을 마음속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존재” 는 내 마음속 문장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나의 삶은 주어인 이 몸보다는 마음속 문장인 동사와 목적어에 더 깊이 빠져있었다.


밝음과 어둠 속 올바른 문장으로 존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쪽짜리 어둠 속 문장인 마음의 소리에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음속에 빠져 헤매고 있다면, ‘주어’를 놓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마음과 몸은 같은 시간에 있는 듯 보이지만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몸이 일차원이라면 마음은 이차원의 세계인 것이다.

길을 잃고 있는 이 시간.. 스스로 에게 물어볼 시간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존재해 있는가?”


몸은 한국에 있는데, 마음은 시차 12시간의 미국에 머물며 슬퍼하는 것은 아닌가?


그럼에도 동시간대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로 “눈” 때문이다.

눈동자가 어둠 속 마음에 빠져 밝음의 몸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은 깊은 어둠 빛의 속성이요

몸은 한낮의 태양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곳이 낮이면 저곳은 밤인 것이다.


삶 속에서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릴 때는 앞이 보이지 않는 밤길을 거닐고 있는 것이다.

주어가 빠진 문장처럼 몸을 잊어버리고 마음속에 빠진 것이다.


나는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에 동시에 존재한다.

나는 밝음과 어둠에 존재하며, 주어는 지금 여기 있는 내 몸인 것이다.

keyword
이전 14화“ 뺄셈의 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