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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

헤라클레스의 틈

by 맨발바닥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

앞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장애를 가졌다고 말한다.

다수에 비해 소수인 그들을 지칭해서 무언가 부족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들은 밝음 속에서는 세상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한줄기 빛과 소리를 보고 듣는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펼쳐지는 빛을 보고

우주의 진동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다채로운 세상과 달콤한 소리에 취해 신성한 울림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세상의 겉모습만을 보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가시광선에 갇혀 어둠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근원의 빛을 보지 못하는 것 또한 장애 일지 모른다.


신은 어둠 속에서 밝은 빛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며 인간의 재잘거림이 아닌 파동과 같은 침묵의 소리로 다가온다.

신의 음성 속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천국과 윤회를 말하고 있다.

신은 교회나 절로 대표되는 종교에만 있지 않고

자연과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도 전달되고 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원자와 전자로 구성된 텅 비어있는 인간

생물학에서는 인간의 몸체를 구성하는 세포는 1년이면 거의 모두 새것으로 바뀌고

뇌과학자들은 인간은 환각을 보는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들의 눈에는 그저 보이고 들릴 뿐.. 깊이 탐구하지 않는다.


마치 고속버스를 타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지만 하나의 풍경과 소음이 그저 눈과 귀를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인구의 절반은 신의 존재를 알고,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신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우리들은 밝은 세계에 취해있다.


이제는 눈으로 보는 색, 귀로 듣는 소리에 휩쓸리는 것을 넘어

혀를 통해 전달되는 그 감각에 탐닉하고 있다.

방송과 핸드폰 영상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음식 프로그램

어느 시대가 이렇게 혀의 달콤함에 빠진 적이 있었던가?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빛을 쫓아 더 좋은 일터, 더 화려한 옷, 더 달콤한 음식을 찾아 달려가며 더.. 더를 외치고 있다.

나의 분신을 좀 더 좋은 교육, 좀 더 나은환경 속에서 키우고자 희생하며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나의 존재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좀 더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나를 둘러싼 주변환경에 휩쓸리기보다는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를 있게 한 존재의 근원에 탐구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해야 할 때이다.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일터가 있고.

밤에 몸을 누일 집이 있고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다면 타인을 쫓아가는 행위가 아닌 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의 존재를 탐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밝은 대낮에는 온갖 물질이 춤을 추기에 신을 볼 수가 없다.

신은 칡흑같은 어두운 밤 한줄기 빛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천국과 윤회 과학에서 말하는 신의 목소리는

깊고 고요한 밤에만 보인다.


천국과 윤회 진리를 찾지 않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

이 한생만 잘 살다 가면 끝이다.라고 말한다면,

태양이 비추는 낮만 있고 밤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제는 죽음 이후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 AI 가 드러난 세상 인류의 의식은 점점 낮아지고 기억력도 분석력도 퇴화되고 있다.

전화번호하나 기억하지 못하고, 인간관계는 점점 단절되고 있다.

출생은 줄어들고, 인간에게 쏟을 정성을 동물에게 쏟고 또 다른 먹거리를 찾아다니는 의식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인간은 매일매일 죽음을 맞이하고, 보다 깊은 잠에 빠져 다시 태어나는 순환의 과정을 거친 지만, 컴퓨터 속의 신인류(AI)는 0과 1의 끊임없는 연산작용을 하며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죽음을 모른다.

인간에게는 있는 죽음이 그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0123456.. 0 즉 010이라는 순환을 거듭하지만 신인류는 0과 1 속을 오가며 갇혀 있는 것이다.

100년을 기약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지금은 나를 깨워야 할 시간인 것이다.


2500년 전이라면 거듭되는 순환 속에 성숙할 시간이 있지만

새로운 인류가 등장하는 이 시대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 15:19 절의 이야기이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불교경전의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들린다.


벼랑 아래로는 독사가 우글거리고 칡넝쿨에 의지해 간신히 매달려 있는 사람 위에

흰쥐와 검은 쥐가 칡넝쿨을 갈아먹고 있는데 얼굴 위로 떨어지는 꿀 한 방울에 취해

그것을 빨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지금 우리의 머리에는 불이 붙어있다.

그것을 망각하고 눈과 귀 혀에 빠져 취한 걸음을 걷고 있다면..

지금이야 말로 새롭게 눈을 떠 나를 일깨워야 할 시간이 도래한 듯하다.

그 길은 종교에도 있고, 자연과학 속에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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