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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 Lee Nov 14. 2019

자라는 의외로 빨리 달린다.

오늘의 짧은 깨달음

청계천에 있다보면 의외의 동물들을 마주한다. 이곳에서 가장 흔한 동물은 거무틔틔하고 커다란 잉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묘한 구불거림으로 천 바닥을 쓸고다니는 민물장어라든지, 매일같이 같은자리에 사냥을 나와 있는 뱁새나  두루미, 한가롭게 수영을즐기는 청둥오리 가족을  심심치않게 만난다. 거북과 자라류는 의외로 흔히 보이지는 않는데 그들이 잉어처럼 줄창 헤엄쳐다니는  것도 아니거니와 새나 물고기에 비해 어딘가 요란하지 않은 존재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6개월 가까이 일주일에 절반 이상 이곳을 산책하면서 거북이는 두번, 자라는 한번 정도 보았다. 처음 본 거북이는 팔다리를 다 꺼냈을 때의 몸집이 주먹만한,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녀석이었는데, 얕은 물이 흐르는 모래바닥에서 천천히 기고 있는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돌멩이가 움직이는 건가 싶어 여러번 눈을 비벼야 했다. 


나는 시력이 좌 우 0.2 정도로 그다지 좋은편이 아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어 안경 없는 일상을 영위중인데, 가끔씩 지하철 출구 1번과 7번을 헷갈린다거나, 숫자 6이나 5를 구분하러 코앞까지 걸어가야 하는 웃지못할 수고가 발생하기는 한다. 그래서 나는 물살을 맞으며 천천히 기는 거북을 보았을 때 얼른 그것을 알아보기 보단 어쩐지 내 눈을 먼저 의심하게 되었다. 


‘저게... 돌멩인가…?’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며 물질중인 뱁새의 다리 사이로 천천히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다. 눈이 피곤해서 그런건가 싶어 집중해서 보는 찰나 돌멩이가 물속으로 살짝 잠기더니 머리와 팔다리를 뿅 내밀고는 신나게 헤엄쳐다니는게 아닌가. 그야말로 날쌘 몸짓이었다. 


오오… 녀석은 내가 앉아있는 돌계단 앞 까지 와서 헤엄을 치다가 유유히 사라졌다. 머리 양옆이 빨간 미시시피 붉은귀거북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거북이를 키웟는데,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것으로 봐서는 아주 어렸을 적이 아닌가 싶다. 거북이는 언젠가 엄마 아빠와 함께 교외로 고기를 먹으러 갔을 때 근처 계곡에 방생해주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아마 그때가 부처님 오신날 무렵이었지. 어떤 연유로 거북이를 키우게 되었는 지 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거북이를 풀어주던 계곡의 물이 유난히 차갑고 물살이 빨라 그를 걱정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그가 있던 작고 얕은 플라스틱 케이지 안에 비해 그것은 진짜 ‘자연’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뉴스에서 우리집 거북이와 꼭 닮은 사진이 나왔다.  앵커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애완거북이를 방생하는 사람들이 늘고있으며, 특히 미시시피 붉은귀거북 같은 외래종의 무분별한 방생으로 생태계가 교란되고있다는, 그런 내용의 뉴스를 전했다. 그 뉴스가 어지간히 나의 동심에 상처를 주었는지 지금까지 미시시피 붉은귀거북은 내가 아는 유일한 거북이 종으로 남아있다.


신나게 청계천을 헤엄치는 붉은귀거북을 보며 잠시 추억에 잠겻던 게 거북과의 첫 만남이라면, 자라의 첫인상은 비교적 평범했다. 자라는 거북보다 색이 더 어둡고 목과 꼬리가 더 길다. 볕이 좋은날에는 물에서 나와 일광욕을 하는데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두려고 찰칵 한장을 찍고 이윽고 프레임을 바꿔 다시 찰칵, 하려는 찰나 자라가 타타탁, 촥! 하는 몸짓으로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도마뱀vs자라 _ⓒ황려진


나는 그야말로 벙쪘는데, 자라가 사라진 속도는 내 상식으로는 도마뱀이라던가, 혹은 그런류의 파충류만 가질 수 있는 속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속도 아닌 뭍에서 그렇게 날렵하다니. 나는 한마리 먹이를 발견하고 뛰는 코모도 왕도마뱀을 목격한 기분으로 한동안 감탄하며 서있었다. 자라가 무엇을 발견하고 황급하게 자리를 뜬지 나는 모를 일이지만 눈이 양 옆으로 난 동물들은 보다 넓은시야로 위험을 감지하고는 하니 무엇이든 보앗겠지. 그리고 내가 찰칵과 다음 찰칵을 하는 사이, 갑자기 물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정말 이 장면을 만화로 만들어 의성어를 삽입한다면 “타타타탁, 촥!” 이라는 글자가 어울렸을 터.


아무튼지간에 세상에는 내가 정말 모르는 면면이 많다고, 시덥지 않지만 오늘의 산책에서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자라는 의외로 빨리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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