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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 Lee Nov 17. 2019

새롭게 걷는 길

조금 더 멀리 갔다 와볼까?

산책을 시작하고 거의 반년동안 나는 마음 속으로 정해둔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한시간 남짓한 점심 시간 동안 왕복할 수 있는 물리적 거리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걸어서 십분거리에 있는 다리 아래를 산책의 베이스 캠프삼아 휴식을 취하고는 했다. 


‘역시 시청쪽에나 가야 조경이 예쁘지’ 

사실 구석구석 보면 재미있는 풍경이 많아도 이곳의 환경 자체는 쾌적한 편이 아니었다. 우선 산책시작점 부터 이곳까지는 큰 나무보다는 잡목이 많고, 앉아 쉴 벤치도 없다. 어쩜 그리 땡볕 아래만 벤치를 가져다 놨는지. 애당초 그늘이 없다는 점은 내가 이곳 다리 아래를 찾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비둘기 똥으로 뒤덮힌 돌계단을 오가며 앉을만한 자리를 찾는 것은 만족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매번 찾아오는 새 두마리의 물고기 사냥 구경을 소일거리 삼아 하루 삼 사십 분을 이곳에 앉아 보내고는 했다. 하지만 가을에 접어들며 점점 다리밑이 스산해지자 더이상 이곳을 찾을 이유가 사라졌다.


런닝차림에 부채질을 하며 앉아있던 할아버지들도 떠나고 아무도 남지 않은 다리밑에서 떨며 앉아있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던 어느날,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 왜 여기앉아있는거지?’

그렇게나 맘에 안드는 점들을 꼽으면서도, 이곳에 있는게 습관이 되었다는 이유로 나는 이 이상 멀리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 간다고 해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는 보장도 없고 돌아오는 길이 멀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멀리 가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굳이 더 갈 이유 역시 없다.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연장시키고 있던 어느날 점심. 그날따라 유난히 식사를 빨 리 마쳤고, 날씨도 쾌청했다. 여유가 주는 마음의 에너지와 생산성은 무시하지 못하는지, 전에 없던 호기심이 일었다. 


‘조금 더 멀리 갔다 와볼까?’

근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늘 앉아있던 다리 밑을 벗어났다. 조금 더 넓은 천이 나오고 징검다리가 나온다. 이곳을 복개하기 전, 천 위를 뒤덮고있던 고가도로의 다리 파편이 천 가운데 우뚝 우뚝 기둥처럼 솟아 있다. 낮은 분수들이 물을 흩뿌리고, 내리쬐는 햇살이 물에 반사되어 무지개가 생겼다.  조금 더 걸어가니 가지를 늘어뜨린 큰 버드나무 한그루가 보이고 터널과도 같은 길을 지나면 낙엽이 물들기 시작하는 활엽수가 가득한 공원이 나온다. 햇빛이 부서져 길이 반짝거리는 황홀한 연출. 어쩐지 낭만적인 마음마저 감도는 풍경이다.


ⓒ황려진


공원에 도착하자 나는 허탈하면서도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더 마음에 드는 산책을 위한 품은 고작  오 분에서 칠 분 남짓 더 걷는 것 뿐이었다. 그만큼을 더 가느냐 안가느냐에 따라 풍경은 바뀌고 그 곳을 걷는 나의 마음도 바뀐다. 아니면 돌아왔으면 되었을 것을 나는 오랜 시간을 저곳에도 별게 없을거라 생각하며 호기심 자체를 잊고 있었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어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권태의 씨앗이 되고, 불만족은 때로는 다른길로 가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한동안 나는 먼계천이라 이름 붙이 이곳에 앉아 풍경을 즐기다 갈 것 같다. 물론 처음 본 길에 대한 낭만은 점점 걷히고, 언젠가는 이곳에 오는 일도 번거롭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면 가끔은 거닐던 길들의 익숙함에 기대기도 하고, 또 가끔은 샛길로도 가보며 그곳의 풍경들에 눈을 반짝이며 관찰 할 것이다.  


지나쳤던 곳을 천천히 거닐면 꿈틀거리는 이야기가 말을 걸어온다. 발견되지 못한 이야기와 생각들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오늘의 산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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