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저런 애들 DNA가 전해져서 다른 종으로 분화하는 건가봐
날이 더워지자 나는 그늘을 찾아나섰다. 봄볕을 즐기는 계절은 잠깐 새에 지나갔고, 이제는 조금만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풀숲 특유의 습기가 더해져 금세 살갗이 끈적해지고는 했다. 직장에서 길 하나를 건너 계단을 내려와 물길을 따라 걷는게 그간의 산책코스였다면, 오늘은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한다. 이따금 백로나 오리 같은 것들이 천 위를 낮게 활공한다. 도심에서 흔히보이지 않는 새들이 물길 하나에 모여드는 것을 보면 이 작은 천에 얼마나 많은 생물들이 운신하고 있는지 새삼 놀라운 마음이 들고는 한다.
곧 천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밑 넓직한 그늘 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천변의 산책로가 주욱 흙길인데 비해 다리 밑 그늘은 돌바닥으로 포장된 공터로 조성 되어있었다.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기구가 놓인 곳도 있고, 천 가까이 내려갈 수 있도록 계단도 놓여있었다. 무더운 날이면 나는 주로 물가에 내려가 앉아 구경을했다. 그런데 이렇게 있다보면 어쩐지 고개를 갸우뚱 하는 상황을 더러 마주한다.
이곳 천에는 유난히 커다란 물고기가 득실득실했다. 여러모로 ‘득실득실’이라는 표현을 할 수 밖에 없는게, 어른 종아리에서 허벅지에 이르는 크기의 암회색 물고기들이 천변의 다리 밑에 머리를 내밀고 모여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지는 음식물 부스러기를 받아먹는 모습을 매일같이 목격하게 되기때문이다. 나는 어쩐지 발을 헛디뎌 넘어져 물고기 떼가 아찔하게 나를 둘러싸고 몸을 스치는 상상을 하게된다. 봐도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로테스크한 장면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건 깊은 물에서의 경우였다. 돌계단 앞으로는 흐르는 물은 기껏해봤자 종아리 중간 정도의 수심이어서, 물고기들이 깊은 물에서 처럼 무리를 지어 있는 일은 없었다. 대신 한 두 마리의 물고기가 가까이 스쳐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제각각인 게 아닌가. 어떤 물고기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야말로 구름처럼 흘러간다. 물고기도 지느러미고 뭐고 까딱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는건가, 싶은 의아함이 드는 찰나, 어떤 물고기는 열심히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단순히 헤엄을 치는 수준이 아니라, 강을 거슬러오르는 연어처럼 열심히 바위 앞에서 점프를 하며 상류까지 가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나로서는 뚱한 눈으로 흘러 내려가는 물고기도, 기어이 점프를 해서 물길을 거슬러가는 쪽도 모두 이해가 가지 않지만 매일 같이 물고기들의 기이한 행동들을 보며 나는 물고기로서 가진 습성으로 이해하지 않아도 성격이라는 게 있을 거라는 결론에 당도 했다.
이런 생각은 어느 날의 밤 산책을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나는 동네 한 대학교의 부속 중 고등학교를 나왔다. 청소년기의 추억이 있는데다 학교가 다 큰길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서 나는 자연스레 자주 교정을 거닐거나 산책을 가고는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산책길은 대학교 정문 옆 골목으로 쑥 들어가면 나오는 절 하나를 지나, 쪽문을 통해 모교 앞에 있는 호수로 향하는 길이다.
고요한 밤, 여름밤에 감도는 풀냄새, 가로등 불빛 이런것 들이 주는 낭만은 어딘지 기분을 고조시켜, 나는 호수 앞에 깔아둔 데크 앞에서 발을 굴러보였다. 어두운 물의 표면으로 희부윰하게 물고기의 잔상이 떠오르고 곧 밤의 호숫가는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환영같은 실루엣으로 가득해진다. 이곳의 물고기들 역시 오랜시간 호수에서의 삶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사람들이 몰려들거나 발을 구르는 진동에 금세 반응하는 것이다.
나는 난간에 양 팔을 걸치고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먹이를 기대하고 모여든 물고기들의 빈 입질이 호수 표면에 파동을 만들어낸다. 그와중에 좀더 날렵하게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나서 시선을 돌려보니, 주황색 잉어 한마리가 호수를 따라 빙 둘러진 바위로 머리를 내밀고 뛰어오르고 있는게 아닌가. 그냥 하는 몸짓이라기에는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살펴보니 물고기는 바위에 붙은 날벌레들을 ‘사냥’중이었다. 호숫가를 따라 헤엄을 치다가 일순간 휙 뛰어올라 바위에 입을 뻐끔, 대고는 다시금 물속에 잠기는 동작을 이십분 넘게 반복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쩐지 감탄마저 들었다.
“그래, 저런 애들 DNA가 전해져서 다른 종으로 분화하는 건가봐. ”
날벌레를 선호하는 분명한 취향을 가진 물고기. 그를 위해서는 머리가 물 밖으로 완전히 나오는 것쯤은 불사하는 물고기를 보면서 나는 어쩐지 내 편에서 물고기들은 이렇잖아, 라고 얘기하는 게 그의 입장에서 꽤나 억울한 일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물고기는 유유자적 흐름을 즐기고 어떤 물고기는 물살을 거스르는 편을 택하며, 어떤 물고기는 수중의 먹이보다 날벌레를 좋아한다.
무엇을 어떠한 ‘류’로 여기고 바라보는 것은 사실 다른 부분을 쉬이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며, 아는 것 마저 자기 중심적으로 적용하여 생각하는 나도 참 인간이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으로 마무리 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