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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 Lee Nov 14. 2019

목욕하는 비둘기

목욕을 마친 비둘기의 깃털을 보셨나요?

서울 어느 곳이나 그렇겠지만 이곳에는 유난히 비둘기가 많다. 도시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살아가고, 사람이나 차가 지나가도 여간해서는 꿈쩍않는 비둘기, aka 닭둘기. 깃털 색도 거무틔틔하고 꾀죄죄한 몰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새, 하면 보통떠올리는 자유롭고 우아한 이미지와는 한참을 비껴난 종이다.


비둘기에 대해서 이렇다할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집요하게 살아가고 있는 비둘기를 보면, 생존은 동물의 본능이니 그리 미워할 것도 못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언젠가 유튜브에서 88올림픽 개막 행사를 본 기억을 떠올리면. 어마어마한 수의 비둘기를 잡아 한날 한시에 도시에 풀어놓은 것은 결국 사람이었고, 우왕좌왕하다가 성화봉송대에서 산채로 타죽는 불행을 면한 개체들이 서울 각지에 둥지를 틀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무튼 제멋대로인 사람들 덕에, 자신도 모르게  유해동물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된 비둘기는 골목 구석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뜯거나 토사물에 몰려들어 열심히 배를채우며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비둘기 무리가 머리 위를 지나가면 혹시 병균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열심히 손을 휘저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산책을 하며 계속  비둘기를 들여다 보게되니, 이 작은 천도 나름 자연이라고,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비둘기의 자연인(?)으로서의 면모를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더운 여름에는 비둘기도 목욕을 즐긴다. 얕은 물가에 쪼르르 서서 날개를 한껏 펴고 물에 몸을 비빈다. 한마리는 어찌나 목욕에 심취했던지 머리와 날개를 연신 물에 적시다가 넘어지는 것까지 보았다. 마실 물 한모금 없는 도심에서 이곳은 오랜만에 만난 오아시스 일 터였다. 양지바른 곳을 지나가면 목욕을 마친 녀석들이 쪼르르 앉아 깃털을 말리고 있는데, 조그만 머리가 물에 젖어 삐쭉 삐죽 솟아있는 것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마저 든다. 환경이 따라주지 않아서 일뿐, 비둘기도 자연에서는 목욕도 즐기고 일광욕도 즐기며 매끈하게 단장을 한다.


더러움을 씻고 난 비둘기의 깃은 한결 부드러워 보이는데, 그 무늬가 제각각이다. 끝자락만 먹빛이라 마치 잉어 비늘같은 몸통을 가진 녀석이 있는가 하면, 푸른 빛이 섞인 회색 깃, 연갈색 깃, 새하얀 깃에 얼룩무늬까지.  이곳 천에서 하루 이 삼십 분 가량을 앉아있으며 느낀 점은, 세상에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 각각의 개성이 이채롭기 그지없다.  

다시 한 번 봐주세요 _ⓒ황려진


이곳에 오는 많은 새들은 저마다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있는데, 청둥오리는 잘 다듬어 정성들여 옻칠 한 목각인형 같고, 백로의 뒷모습은 목이 길고 유려한 백자를 닮았다. 비둘기는 어느쪽이냐 하면 수수한 토기를 연상시킨다. 전반적으로 소박하여 한번에 눈길을 끌지는 않지만, 통일감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드러나는 소박한 개성이 정겨운 쪽이랄까. 비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토기 운운하는 모습을 보면 비웃을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서로를 배척하지는 않으니, 목욕을 마친 비둘기의 깃털도 한번쯤 다시 봐달라 말 해 주고 싶다. 깃털을 덮고 있는 더러움은 사실 멀리에서 온 게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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