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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 Lee Dec 13. 2017

[한 잠] 소금별의 우리

쓸모의 관점에서는 달리 할 말이 없지만.

내 오랜 친구 J와 그녀가 소개 해준 Y언니. 몇 년 전 이맘때 쯤 우리는 카페를 전전하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셋의 만남을 생각하면 귀가 시리도록 추웠던 2016년의 겨울과 카페 소금별, 그리고 그곳에 있던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가 모이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 읽고 쓰기위해서.

“그래서, 뭐 할 건데?” 라고 물으면 달리 할 말은 없었다. 대단한 이야기로 세상을 놀래키고 싶은 포부도, 단편 소설 하나를 완성할 끈기도 부족한 나는, 단지 홀로 있을 때 보다 조금 더 글과 가까워지려는 단순한 욕망으로 모임에 참여했다. 쓸모의 관점에서는 달리 할 말이 없지만 결론은 단순했다. 좋았으니 만났고, 좋으니 지속한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나른한 욕망은 때로 나를 조급하게 했다. 하지만 나아갈 길을 앞에 두고 응석을 부리는 마음역시 나는 좋았다.      


빈틈이 많은 시절이었다. 일은 하지 않았고 그러므로 돈도 없었으며, 날은 무자비하게 추웠고, 우리는 나름의 이유로 고단하였다. 그럼에도 다들 일주일에 하루는 글모임에 얼굴을 내밀었다. 고민하느라 못 쓰는 습관을 고친다며 함께 타이머를 맞춰두고 글을 써내려 가보기도 하고, 그렇게 완성 된 글을 얼굴이 벌개져서는 소리내어 읽고 웃었다. 애정 어린 비평을 주고받았고, 봄 무렵에는 Y언니가 우리 중 처음으로 단편소설을 하나 완성했다. 나와 J는 그녀의 부지런함에 감탄하며 완성되지 않은 원고에 민망해 웃었다. 몇 개월간 지속된 짧은 모임이었지만 성성한 나의 빈 시간들을 함께 메꿔준 그녀들과의 기억은 언제고 따듯했다. 그리고 이제 소금별은 사라졌다.       


 


     

올해 여름, 우리는 정말이지 간만에 모였다. 축축한 물기를 공기에 흠뻑 머금은 7월의 찌는 날이었다. 선택이랄 것도 없이 더위를 피해 들어간 시청역 식당에서,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미국은 어때? 여기 엄청난 허리케인이 불었어. 세상에. 일은 어때? 똑같지 뭐. 그래도 쭈욱 같은 분야에 있구나? 아참 너희 글은 쓰니? 아니 별로. 나도. 그때 이후로 거의 멈췄지. 응. 그럼 써볼까? 거창하지 않게. 그럴까? 거창하면 힘들어. 맞아. 그러지 뭐. 그리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카페 소금별에서 만나 겨울의 삼청동을 전전하던 우리는, 이제 미국과 수원과 서울에서 각자의 일상을 지내고 있다. 시차 덕에 이제는 대화마저 약속 없이 나누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지나간 시간이 그다지 아쉽지도 애닲지도 않다.


한참 아래로 밀린 대화창을 봐도 아무렇지 않은 것은,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 없이 그녀들의 글이 이곳에 올라오기 때문이다. '다들 잊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어쩜 이렇게 연락 없이도 매주 글은 올라오는지. 다들 참으로 무던하고도 한결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난다.


교환 할 필요 없는 일기장을 쓴다.

안부의 말 없이 서로를 떠올리게 되는 이 순간이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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