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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인적인 체험 Nov 29. 2017

[한 술] 내가 사랑한 몬스터

회기, Cafe Monster

   몬스터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정한 흰 간판의 카페를 나는 사랑했다. 그리고 그곳이 문을 닫은 후, 나는 꿈꾸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과 울적할 때 갈 수 있는 곳을 잃었다. 상실감은 사람을 잃는 데서만 오지 않았다. 


   그리 크지 않은 카페에서 내가 사랑하지 않은 자리는 없었다. 초등학교를 크게 휘 감싸는 돌담이 끝나면 무심히 툭 등장하는 나무 데크가 비에 젖어도 좋고 낙엽이 떨어져도 좋고 눈이 쌓여도 좋았다. 넘치는 시간과 그 시간을 가득 채우는 생각들에 힘들어했던 때가 잦았으니까, 소파 자리에 앉아 콘센트 하나를 차지하고 종일 노트북을 하는 것도 좋았고 벽장 자리에 앉아서 꽂혀있는 책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면 창밖에 시간이 무심히 흘러 있는 것도 좋았다. 그러다가 땡스투에 '카페 몬스터'가 적힌 책을 집어들면, 언젠가 내가 쓴 책도 이곳에 꽂힐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설레기도 했다.

   한 여름에는 창가에 앉아 맞은 편 길가의 성성한 나뭇잎들과 기사 식당에 멈춰서는 택시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큰 길 하나를 거리에 두고, 액자처럼 있는 그 풍경은 내가 맞은 편에서 몬스터를 바라볼 때도 그러했다. 소란스럽지 않게, 언제나 그 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그곳에 가면, 나도 그 평화로운 풍경에 담겨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안의 몬스터는 몬스터에서 대부분의 경우 잦아들었다.


   내가 회기의 카페 몬스터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친구 L 덕분이었다. '너희 집 근처 도서관 온 김에 커피나 한 잔 할까' 하고 L이 소개했던 그 카페는 내 삶에 아주 천천히 스며들었다. 자꾸 눈에 밟히고, 마음이 가는 그런 곳. 집에서 카페에 이르는 길까지 모두 좋아하게 되어버린 곳. 그러니까 좋아하는 카페들 중 하나를 넘어 내가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가 되어버려서, 그곳에 없을 때도 종종 떠올리게 되는 곳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몬스터에서 참 많은 말과 글을 쏟아냈었다. '내게 의미있는 사람이야'하고 마치 몬스터에게 내 지인을 소개하는 것처럼 참 많은 사람들을 카페로 데려갔다. 그리고 나의 가장 사소한 것부터 때로는 지나치게 무거운 이야기들까지 쉴 새 없이 털어놓았다. 친밀하고 사적인 대화를 나는 그 어떤 술자리에서 보다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혼자 그곳에 갔던 적은 훨씬 더 많았다. 졸업반과 취준생, 사회 초년생 시절 모두를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몬스터와 자주 보냈으니까. 레포트를 쓰러 가거나, 시험 공부를 할 때도 그랬고, 수많은 취업 원서를 쓸 때도, 또 입사 후 교육 과제를 할 때도 '무언가 해야하지만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면 나는 백팩에 그 모든 짐스러움들을 가득 채워 몬스터로 왔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했을 때에도 몬스터였다. 무언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거나, 혼자서 해보고 싶은 작업을 구상하거나,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거나 하는 모든 것들도 나는 몬스터에서 하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그랬다.

    공간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항상 짝사랑인 것 같다. 나는 계속 그 주위를 맴돌 뿐, 공간과 나 사이의 교감은 언제나 나에게만 의미있는 것이 되니까 말이다. 지나가는 손님1로서, 나는 지독한 짝사랑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카페 몬스터 메뉴에서 가장 사랑한 세 가지는 아이스 카페라떼, 리코타 치즈 샐러드, 치킨 샌드위치이다. (지금 핸드폰에 남아 있는 사진이 이 정도이고, 백업해둔 파일을 살펴 보면 더 찾을 수 있으리라.) 한 술이라는 주제에 카페 몬스터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이제는 맛볼 수 없는 나의 소울 푸드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스터 초밥왕이나 요리왕 비룡 같은 만화를 보면, '몇 십 년 전 먹었던 xx의 손맛이 담긴 음식을 먹고 싶다.'고 의뢰인이 등장한다. 그러면 주인공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그 음식을 온갖 재능을 부려서 재현해낸다. 어릴 때 그것을 봤을 때는 '그게 대체 얼마나 맛있으면 그렇게 또 먹고 싶나?'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나에게 그런 음식이 이렇게 금방 생기게 될 줄은 짐작도 못했던 것이다. 

   라떼를 한잔 쭉 빨아들일 때의 그 느낌을 뭐라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나는 몬스터의 라떼를 떠올리면, 무더운 한여름에 초록잎이 반짝거리다 못해 부서지는 거리를 뚫고 걸었던 길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다음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 왔을 때의 에어컨 바람이, 아이스 라떼 한 모금을 꿀꺽 넘길 때 식도가 차가워지는 게 생각난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너편 기사식당 택시들의 보닛이 번쩍거리는 것도, 티푸드의 단 맛이 입에서 퍼석거리는 것도 아직도 선명하다. 그건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가장 자신있는 한 잔이었다.

   몬스터의 리코타 치즈 샐러드를 생각하면 입안에서 시원하게 녹아내리는 망고가 떠오른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갈 때면 (왠만하면) 항상 시켜먹었던 것도 말이다. 혼자 먹기에는 아무래도 양도, 가격도(다른 카페들과 비교하면 가격도 저렴하고 몹시 훌륭했지만, 소득이 없었던 때에는) 만만치 않았으니까, 모임을 축하하는 '잔치 음식'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리코타 치즈 샐러드를 혼자서 시켜 먹는 경우는 '지금 내가 너무 우울해서 미쳐버리겠다' 또는 '지금 나는 나를 너무 칭찬하고 싶다' 둘 중 하나였다. 어찌 됐든 감정이 격렬할 때 먹었던 메뉴였다.   

  나는 치킨 샌드위치가 만들어질 때 키친에서 나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조리 과정에서 나는 닭고기 냄새, 그리고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 때의 입안에 빵이 젖는 느낌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리고 치킨 샌드위치는 대부분의 경우 배고픈 나를 위로하는 데 성공했다. 왜 그때는 그게 그렇게 맛있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친구 K가 직장 생활에 힘들어하던 그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위로 방법이 몬스터의 치킨 샌드위치를 포장해 가는 것이었던 점만 봐도, 그게 나한테 가지는 의미는 그랬다.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그런 음식.

  이게 뭐가 특별한데, 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사연이 있는 음식은 미슐랭 별이 붙은 음식이 와도 못이긴다. 

  수없이 많은 라떼와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치킨 샌드위치를 먹어도 몬스터에서 먹었던 것 같지는 않다. 실은, 몬스터에서 먹었던 수많은 라떼, 샐러드, 샌드위치도 매번 조금씩은 맛이 달랐을텐데. 더 훌륭하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사무실에 앉아 배가 고플 땐 아주 불현듯이 떠오른다.

   청춘의 맛 같은 것. 

   흔들리는 시기, 내가 날 위해 할 수 있던 위로같은 것.

   지나가버린 그 시기처럼,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그런 맛있는 맛을 그리워 하게 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빠르게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걸, 더 충분히 많이 갔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해보지만. 이제 그곳에는 애견 카페가 자리 잡고, 나는 다른 도시에 자리를 잡았으니. 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이렇게 금방 사라지고 마는 걸까.  

   감감무소식이던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열흘 전쯤 사장님이 '카페몬스터였습니다.'하고 올린 작별 인사를 보고, 나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정말 사랑했습니다. 카페 몬스터 그리고 흔들리던 그 즈음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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