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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 Lee Nov 22. 2017

[한 모금] 아침을 마주하는 나의 자세

나만의 작은 의식

천성이라는 게 정말 있는지, 나는 시작점에만 서면 매번 마음이 허무하고 초조하다. 계절 중에서는 봄을 가장 타고, 어떤 일이든 시작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아침도 예외는 아니다. 기분은 한껏 가라앉아 '무엇을 위해 지난한 하루를 보내야 하는 거지?'하며 막막함에 사로잡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생각이 넘치면 잡념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 나는 냉소가 거둬지기를 기다리며 출근 전 나만의 작은 의식을 시작한다.      


아침 일곱 시 반. 이불 속에서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튼다. 한 곡당 재생 시간은 3~5분. 대개 재즈를 틀지만 정말 졸릴 때는 가사가 붙은 음악을 듣는다. (모국어라는 기호는 속절없이 귓속으로 다이빙해 뇌를 깨운다.) 잠에서 깬 고양이가 머리를 비비며 투정을 한다. ‘부은 얼굴을 하고 있다니, 고양이 주제에.’ 이불을 슬쩍 열어 주니 옆구리로 파고든다. 따듯한 털 뭉치를 끌어안고 음악을 한 두 곡 듣고 나면 더는 시간이 없다. 나는 이불에서 나와 화장솜에 스킨을 묻혀 얼굴을 닦아내고 양치를 한다. 모달이 함유된 부드러운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니트를 덧입는다. 청바지에 첼시 부츠를 신고 십삼 년 전부터 입어온 큼지막한 쥐색 더블코트에 에코 백을 매면 출근 준비가 끝난다.     



아침은 거의 먹지 않는다. 가끔 바나나 한 개, 혹은 양배추로 만든 위 보호제를 삼키는 정도이다. 사실 이마저도 필요 없지만 챙겨먹는 이유는 단 하나. 모닝커피를 죄책감 없이 즐기기 위해서다. 나는 신발을 꿰어 신고 현관을 나선다. 버스정류장까지 향하는 길목에 있는 카페는 다섯 개.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 카페에서 감미로운 커피향이 풍겨온다. 나 역시 커피를 주문하고 버스시간을 확인한다. 초조함에 발끝을 톡 톡 구르고 있자면 어느덧 주문한 메뉴가 나온다. 재게 걸음을 옮기며 입술이 데지 않게 커피를 머금고 혀를 굴려 삼킨다. 갓 내린 커피의 오일이 섬세하게 녹아든다. 순간의 충만함에 집중하며, 나는 스스로를 끌어올린다.    


거리에는 겨울이 완연하다. 발밑에서 짓이겨지는 때 늦은 낙엽의 달콤한 냄새, 초콜릿과 견과류 내음이 섞인 원두 향이 이따금 코 밑을 스친다. 나는 어느새 손에 쥔 커피의 따듯함과 손 등을 스치는 찬 공기의 대비를 즐기며 걷는 자신을 발견한다. 드디어 우울이라는 까다로운 손님이 잠든 것이다. 비로소 하루의 시작을 받아들이며, 나는 출근길 버스에 올라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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