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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wa Lee Jan 03. 2018

[한 술] 베트남 사파의 볶음면

캇캇마을에서 나고 자란 식사 한 끼.

작년 이맘때쯤 나는 홍성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마치고 부랴부랴 베트남으로 떠났었다.

나의 최다 해외여행 메이트를 꼽으라면 단연코 L 양인데, (교토 두 번, 대만, 베트남을 함께 갔다.)

취향도 다르고, 생활패턴도 다른 우리가 네 번의 해외여행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라고 생각한다.

바로 욕망하는 게 거의 없다는 것.


우리는,

나라 선정은 일정과 주머니 사정에 맞춘다. (어디 가고 싶다, 보다는 어라 여기 싸네? 가볼까의 순서.)

숙소를 예약해 두는 것 정도를 제외하고 나머지 스케줄은 여행을 가서의 컨디션에 따른다.

길을 헤매도 애초에 갈 곳을 정해두지 않았으므로 상관이 없다.(갈 곳이 있었다 해도 그다음 갈 곳이 미정이기 때문에 일정이 딜레이 돼도 역시 상관없다.)

심각한 순간이 아닌 이상 문제를 무덤덤하게 삼켜버리고 곧 잊어버린다.(둘 다)

따로, 또 같이의 순간이 대충 일치한다. ( L은 아침에 혼자 산책, 나는 밤에 혼자 놀기.)

좋은 게 좋은 거지, 의 생각으로 무리한 일정은 잡지 않는다.


아무튼 이런 우리가 베트남,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파'를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EBS 다큐에서 본 풍경이 둘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 나의 경우는 중국의 운남성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베트남 사파가 운남성과 라오스의 접경지대여서, 비슷한 풍취를 맛보고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소가 거닐고, 계단식 논이 펼쳐져있고 흐몽족과 자오족 등 다양한 산악 민족들이 거주하는 곳. 사실 사파에 대한 배경지식은 그 외에 딱히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여행을 다녀온 지금 내게 베트남 사파는 당시 들른 다른 도시(하노이, 닌빈)는 차치하고서라도 다른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더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하여간 그래서 우리는 사파행 버스 티켓을 끊었다.


1인칭_버스기사_시점.jpg

하노이에서 출발하는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싣고 세 시간가량을 내리 달리면 사파에 도착한다. 라오까이 입구에서 가장 처음 마주친 것은 바로 쉬고 있는 물소 무리였다. '다큐에서 본 것처럼 마을에도 물소가 막 돌아다니는 거 아냐?' 생각했지만 아쉽게도(나는 대부분의 동물을 좋아하고 겁내지 않는다) 물소를 마주친 것은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안개가 자욱한 사파는, 고산지대인지라 맑은 날이 드물고 베트남의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낮다. 첫끼를 먹으며 음식점 창밖으로 내다본 사파의 모습은, 산악지형을 따라 작은 집들이 늘어서 있고, 발전하고 있는 베트남 경제를 대변하듯 여기저기에서 공사가 한창인 모습이었다. 지금의 사파 모습도 빠르면 오 년 안에는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으슬으슬한 날씨 덕에 베트남에서 입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코트를 꺼내 들고 나는 여름 샌들 + 겨울 코트의 희한한 옷차림 새로 사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름+겨울=가을?


사파에 관해서라면 이것저것 쓸 말이 많아 점점 여행기가 장황해지는 느낌이지만, 일단 주제가 '(밥)한 술'이니 만큼, 사파에서 먹은 식사에 대해 다시 집중해 써볼까 한다.



사실 사파에 오고 싶었기는 했지만 어떠한 목적이 있지는 않았다. 이곳의 여행객들은 대부분 서양인으로, 트래킹을 하러 머물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나와 L은 막상 사파에 도착하니 무엇을 할지 몰랐다. 그럴 때는 그저 걷고 걷기. 갈 곳을 정해두지 않고 걸으면 좋은 점이 있는데, 하나는 길을 잃어버릴 염두가 없다는 점, 다른 하나는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마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골목골목을 누비던 나와 L은 우연히 사파 시내의 한 시장에 들어섰다.



동네 재래시장에서는 채소와 고기들을 팔고 있었는데, 가끔씩 죽은 닭을 통째로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고기도 특별한 냉장시설 없이 토막채로 좌판에 올려져 있었는데, 이곳의 기후가 서늘한 데다가 무엇보다 근처 마을에서 가축을 방목하여 사육하기 때문에 전혀 비위생적 이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그때 필요한 수확물을 시장에서 내놓는 방식이, 신선도를 유지하며 합리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보였다.



사파에 있는 캇캇 마을을 트래킹 하던 나는 수많은 동물들을 마주 할 수 있었다. 닭, 개, 돼지 등 무수하게 많은 가축들이 그야말로 온 마을을 누비고 있었는데, 나와 L이 혼란스러운 것은 이점이었다. "얘네 주인은?" "근처 산으로 도망가지 않을까?" "사람들이 자기 가축을 알아보나?" "어떤 게 누구 닭이지...?" 누가 누구 닭이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워 보이는'이 풍경이 내게는 너무 아름다워서 한편으로는 경건함을 가지게 했다는 것.  이 가축들 역시 사람에 의해 도축되고 먹힌다는 점은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동물을 사랑하지만 동물을 먹는다. 하지만 마트에서 포장된 고기를 집어 드는 경험과, 사람과 동물이 동등한 자연의 일부로  지내는 모습을 목도하고 이들의 살을 먹는 것은 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먹는 게 무엇인지, 어디서 온 것인지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식사를 하였다.

추수를 마친 계단식 논이 눈 아래로 펼쳐져있고, 닭이 논의 단 사이를 푸드덕 거리며 날아다니고, 들개들은 야생의 속도로 논을 겅중겅중 뛰어내려 간다. 찬바람을 맞고 자랐을 진한 맛의 채소 한 줌, 그리고 이 마을의 가축이었을 소의 고기가 면과 함께 뒤섞여 이채롭게 씹혔다. 단순한 조리법이 주는 재료의 순수한 맛을 하나하나 느끼며 나는 사파에서의 식사를 '경험'한다.


처음으로 내게 '먹는다는 것'에 대해 의식하게 해 준 사파 캇캇마을의 볶음면 한 접시.

이곳에서의 식사 한 끼를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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