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에게

포근한 향, 벚꽃, 시집, 의자, 키보드...

by 초이

“둘이 왜 붙어있어? 사귀어? 잘해봐!”

벌써 수십 번도 넘게 들은 이 말에 지겹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벌떡 일어나 나가버린다. 아니, 사실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 일어났다.



포근한 향이 코끝에 스치면 그 향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 선배는 항상 포근한 향기가 났다. 입사 후 처음 자신이 나와 같은 팀이라며 인사를 해왔다. 반갑다는 듯한 목소리에 고개를 드는 순간 지독한 설렘이 밀려왔다. 포근한 향도 함께 왔다.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입사한 나에게 선배는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었다. 그의 인상은 강렬하지만 냉정했다. 그러나 후배를 대하는 태도는 생각보다 자상했다. 그 태도에 나는 입덕 부정기를 가질 수도 없었다.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선배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유죄였다.




같은 회사, 같은 팀, 직속 선배였던 그는 모든 면에서 내가 좋아하고 싶지 않았다. 사내연애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선배가 말을 걸면 기분이 좋았기에 미소부터 흘러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상냥하게 대답하려다가, 내 모든 마음이 담길까 두려워 나오는 대답은 차가워졌다. 그 누가도 알지 못하도록 내마음을 숨겼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선배를 보면 서운한 감정이 물밀듯 밀려나왔다.





선배와 나는 회사 근처에서 밥을 먹고 가끔 산책을 했다. 그 길에는 벚꽃이 피어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면 벚꽃향과 포근한 향이 겹쳐서 나에게 밀려왔다. 아.. 이제는 벚꽃마저 선배가 되어버렸다.




밤 근무 날, 서점에 들러 시를 한 편 샀다. 그때 가장 좋아했던 푸른밤이라는 시가 담긴 시집이었다. 그 책을 들고 근무하는 날도 어김없이 선배가 있었다. 선배는 시집을 펼쳐보면서 의외라는 듯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시집은 이제 내가 좋아하는 시가 담긴 시집이 아니라 선배가 나에게 말을 걸어준 시집이되었다.




직속 선배였던 그와는 밤샘 근무를 자주 했다. 여유가 생기면 배운다는 명목하에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무뚝뚝한 얼굴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속에서는 엄청난 갈등이 밀려왔다.

말을 걸어볼까?

걸어볼까?

걸어볼까 하다가 끝내 집어삼킨다.

사소한 말 끝에도 넘치는 내 마음이 묻어날 것 같았다.




나는 용기가 없었다. 사내연애를 할 용기가 없었다. 고백을 해서 어색해진 관계를 두고 볼 용기도 없었다. 아니, 그냥 말을 걸 용기도 없었다. 꿈에서조차도선배에게 고백을 하지 못했다.




선배는 결국 먼저 회사를 나갔다. 선배가 가장 좋아했던 자리, 가장 자주 앉아있던 의자, 가장 자주 만지던 키보드를 보면서 그를 떠올린다. 선배에게 풍겼던 포근한 향기 비슷한 냄새라도 맡는 날에는 하루 종일 생각이 났다.




포근한 향, 벚꽃, 시집, 의자, 키보드…

그것들은 나에게 모두 선배였다.






[푸른밤] –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

.

.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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