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빠진 뮤지컬

레베카, 몬테크리스토, 마리앙투아네트, 레미제라블

by 초이

지난 크리스마스, 무얼 하며 보낼까 하다가 뮤지컬을 한 번 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나는 뮤지컬을 꽤나 좋아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단체관람으로 <지하철 1호선>, <그리스>, <애니> 등을 연이어 보며 황홀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학교 음악시간에는 <지킬 앤 하이드>나 <캣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카르멘> 등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나는 뮤지컬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뮤지컬 티켓은 학생인 내가, 사회 초년생인 내가 보기에는 비쌌기 때문에 보고 싶었던 욕심을 누르고 살았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그 가격을 떠올린다면 비싸긴 했지만,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위한 선택으로는 한 번쯤 선택해도 될 만큼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레베카>라는 뮤지컬을 선택해 보기로 했다.


<레베카>를 보고 난 후 나는 뮤지컬에 단단히 홀렸다. 어떻게 홀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일단 뮤지컬 넘버 자체가 훌륭했다. 스토리는 평범한 듯 보였지만 그 전개를 압도하는 배우들의 노래와 오케스트라 연주 소리는 잊고 있던 나의 음악에 대한 열망을 끄집어냈다. <레베카>에 나오는 뮤지컬 넘버들을 연신 다시 찾아 들으면서 매일 따라 부르고 다녔다. 내가 보지 못했던 다른 캐스팅의 배우들의 무대도 찾아보고 시츠프로브 영상들까지 찾아보면서 일명 뮤지컬 덕질이 시작되었다. 결국 나의 <레베카> 찬양은 동생에게 까지 영향을 주어 동생도 그 뮤지컬을 보게 만들었고, 또 하나의 뮤지컬 덕후 동지를 탄생시켜 매일같이 뮤지컬 이야기를 해대기 바빴다.

나는 그 사이 또 다른 뮤지컬을 보았다. <몬테 크리스토>라는 뮤지컬은 엄청나게 넓고 화려한 무대와 다채로운 옷들, 앙상블이 만들어 내는 화음에 매료되게 만들었다. <레베카>의 넘버들만큼 중독적이진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내내 뮤지컬 넘버들을 찾아들으면서 당시의 느낌을 회상했다. 뮤지컬에 중독되면 출혈이 너무 커서 안된다는 나의 이성은 계속해서 합리화를 했다. 즐겁고 재밌고 황홀한 뮤지컬을 모르고 사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하면서 말이다.

뮤지컬 메이트가 돼버린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뮤지컬을 보게 되었다. 심지어 첫 공연을 예약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특별한 뮤지컬 배우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대신 뮤지컬 감독님 한 분을 열렬하게 좋아했었다. 예전에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프로그램에 출현했던 김문정 감독님. 거기서 보고 열렬한 팬이 되었더랬다. 그러나 그것조차 잊고 살았는데 뮤지컬 덕질을 시작하면서 그분이 출현한 그 영상을 마르고 닳도록 재탕했다. 그런데 <마리 앙투아네트>의 지휘자가 첫 공연이라 그런지 감독님 본인이 등판하셨다. 암전이 되고 뒤를 돌아 인사하시는데 반갑고 좋아서 심장이 콩닥거렸다. 그래서 그런가 그동안 봐왔던 뮤지컬들을 압도할 정도의 황홀한 무대를 볼 수 있었다. 넘버도 좋았지만 오케스트라 소리가 압도적으로 좋았다. 그리고 두 여자의 서사도 너무 슬프고 공감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당시 얼마나 많은 조롱과 멸시를 당했는지, 그리고 전혀 다른 민중의 삶은 얼마나 척박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후에 나는 <레미제라블>이라는 4대 뮤지컬 중 하나를 보게 됐다. 동생과 우연히 보게 된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민우혁 배우가 출현한 부분을 보고 레미제라블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고민하던 나는 동생을 꼬셔 함께 보게 되었다. 암전이 되고 첫 넘버인 Look Down이 흘러나오는 데 정말 설렜다. 사실 송스루 뮤지컬이라 중간에 모든 대사도 노래로 되어 있어 어색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극 서사는 훌륭했다. 단지 극장 자체가 사운드가 미흡하고, 옆 자리 사람의 잦은 기침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다른 뮤지컬에 비해 잘 즐기진 못해 아쉬웠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장발장을 비롯한 팡틴, 코제트, 에포닌 등 등장인물들이 내 마음에서 떠나지 못했다. 뮤지컬에서 생략된 내용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영화를 찾아서 봤지만, 영화와 뮤지컬은 내용이 똑같았기 때문에 생략된 것들을 찾기보다는 놓쳤던 것들을 발견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원작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읽고 있다. 총 2,556페이지의 엄청난 분량의 책이라 조금 뒤에 읽을까도 고민했지만, 호기심 때문에 결국 지금 읽고 있는 중이다. 생략된 많은 부분들을 열심히 찾아가며 그 인물들은 아직도 내 머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뮤지컬을 보고 2차, 3차로 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거리를 찾게 될 것 같다. 뮤지컬은 나에게 또 다른 즐길 것들을 선물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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