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감정에 대하여

공감 결여

by 초이

얼마 전 에버랜드 판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떠났다. 나에겐 푸바오가 그 어떤 연예인보다 좋았기에 직접 가서 배웅은 하지 못했지만 떠나는 장면을 라이브 방송으로 보며 함께 슬퍼했다. 그 과정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푸바오를 배웅하며 눈물짓던 모습을 모두가 보게 됐다. 나는 거기 모인 사람들처럼 대성통곡은 하지 않았지만, 사육사 분들이 배웅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보내기 싫은 마음을 뒤로한 채 이별을 해야 하는 그 마음들이 내 것처럼 느껴져서 살짝 눈물이 맺혔다. 푸바오의 판생은 여기서보다 좋을 수 있지만, 보내는 이의 마음은 사무치게 그립지 않겠는가? 많은 이들의 관심이 몰려있기에 그 상황에 대한 반응들은 제각각 달랐다.


푸바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도대체 푸바오가 뭐길래 부모나 나라를 잃은 것처럼 통곡하느냐고 의문을 표했다. (동물권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있느냐는 여부까지 논란이 있었지만 그거까지는 논외로 두겠다.) 푸바오를 보내고 우는 사람들에 대해 그럴 필요까진 없지 않냐는 의견이 모여 푸바오 팬들에 대한 비난으로 향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푸바오를 보내며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은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냉정하고 공감할 줄 모른다고 비난을 했다.


서로 다른 입장과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해 나는 어느 한쪽의 말도 틀린 말이 없었고, 어느 한쪽의 말도 옳은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 겪어온 환경과 감정이 다른데 하나의 사건을 보고 다른 생각을 갖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생각은 틀렸다고 비난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날이 갈수록 인간은 개인주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나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개인주의적이다. 개인주의는 실용적이고 능률을 높이는 긍정적인 면을 품고 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감정의 단절, 공감의 결여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큰 단점이다. 개인주의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단절은 곧 비난으로 이어지고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배척해 버리게 만든다. 그리고 별거 아닌 것들이 결국 분쟁으로 이어진다. 개인의 분열은 인지적 공감 능력을 빠르게 쇠퇴시킨다. 자신이 보기에 이득이 되지 않는 행동을 멍청하다고 비웃게 되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편리함을 주장했던 나의 태도를 반성해 보게 된다. 나와 다른 타인의 감정에 대해 나는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 나와 다른 감정에 비난을 하지는 않았는가? 무시를 하지는 않았는가? 종종 그래왔다는 생각이 든다. 한순간에 고칠 순 없어도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둘 수 있는 태도를 가지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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