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없고 대화만 있는 여행
우리가 친구로 지내는 10여 년의 시간 동안 나름대로 시간을 쪼개서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하면서 달랐던 취향까지 점점 맞아지고 있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취향, 성향, 성격을 많이 공유했다. 서로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말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여행은 언제나 즐겁고 편하다. 각자 가지고 있는 작은 약점들은 서로 채워주면서도 불평이 오가지 않는 것에 말하지 않아도 서로 고마워한다.
이번 여행의 테마를 뽑자면 번외 편이다.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우리는 대화를 많이 했으며, 그 대화는 주로 서로의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와 한 친구의 가치관은 조금 더 확고해진 반면, 또 다른 친구는 니체가 말하는 개념의 지진을 겪었다고 한다. 그가 가장 슬펐던 건 본인이 그런 사람이 아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치관이 다르며, 다른 것에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나와 친구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이 가치관의 차이는 생각보다 우리의 관계에 치명적인 차이다. 서로의 인생에 서로가 번외 편인 셈이다. 번외를 두는 것에 익숙지 못한 우리는 그래도 번외를 세워보자고 한다. 아직은 이 관계가 소중하고, 가치관이 달라 힘든 일이 생긴다고 한들 이겨내 보자고 말해본다. 달라진 가치관에 힘들어하는 친구는 자신의 번외 편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혹여 고통일까 속상해했다. 너를 번외 편으로 두겠다는 나머지는 우리 때문에 속상해하는 그 친구가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 이건 사랑이다. 사랑이 별 건가? 서로가 다름을 알고 힘들 수도 있지만 상대의 상처를 더 걱정하는 것 아닌가.
이 여행에서 우리는 모든 것들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서로를 위해 마음을 속이지 말자고 했다. 자주 여행하자고 했다. 한 번은 어렵지만 두 번부터는 쉬워진다. 어려운 한 번의 고백을 잘 넘겨보자고 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친구가 있음에 안도를 느끼지만, 번외 편으로 둔 친구가 그 자리에서 버텨줌에 감사함을 느낀다. 전체 세상에서는 나 같은 가치관이 좀 더 번외 편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 색깔 있는 친구들에게 빠져 본인이 번외 편을 자처하는 그 친구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