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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슝 여행기(4)

강렬한 마무리

by 초이

밤새 잠을 못 자서 다소 피곤했다. 그래서 어제처럼 딴삥을 시키고 숙소에서 쉬다가 공항에 갈 계획을 세웠다. 친구들의 배려로 나는 더 많이 쉬었다. 우리는 레이트 체크인을 신청해서 더 푹 쉬기로 했다. 짐정리할 시간도 넉넉하고 놀 시간도 넉넉해서 좋았다. 탈무드 호텔 정말 추천!(레이트 체크인 비용도 저렴했다.)



아주 편안하게 공항에 도착해서 캐리어 무게를 재봤다. 3킬로만 빼면 되기에 가뿐히 정리했다. 마음의 준비 덕분에 수월했다. 나는 이렇게 짐 빼느라 바쁜데 15.99kg을 딱 맞춘 친구는 여유로워 보였다. 인간 저울이 틀림없다. 창구가 열리기 전에 패밀리마트에 가서 남은 이지카드를 털었다. 사지 못했던 치메이 펑리수랑 소반 베이커리 펑리수를 사서 탈탈 털었다. 짐을 보내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남은 현금도 탈탈 털어 펑리수를 샀다. 펑리수에 미친 사람처럼 그렇게 미친 듯이 담아냈다.

인간 저울


비행기 보딩시간이 딜레이가 됐는데 이유는 알려주지 않아 굉장히 궁금했다. 비행기가 주차되어 있으니 많이 늦지는 말자고 기도했다. 비행기에 타서 50분간 맴돌던 기억에 다소 불안했지만 다행히 금방 출발했다. 그런데 올라가자마자 난기류를 만났는지 기체가 위아래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러고 말겠지 했지만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을 약 2-30분간 느끼며 불안해 떨었다. 승무원의 침착한 목소리가 그나마 구명줄처럼 느껴졌다. 오래전 유럽여행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아찔함에 죽음을 눈앞에 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바다에 떨어지고 핸드폰도 바다에 떨어져 누군가 발견하면 그 당시 상황을 느끼도록 글도 써놓을 정도로 불안했다. 비행시간 2시간 30분 중 체감 2시간을 불안에 떨고 나니 기장이 케빈크루에게 랜딩을 준비하라는 멘트가 나오고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다른 비행기의 기장보다 다소 조용하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기장이라 더 불안했던 것 같다.

떨리는 걸 찍은 영상 캡쳐


무사히 랜딩을 하고 오래전 유럽사람들이 박수쳤던 것처럼 박수를 치고 싶었는데 역시 동양 사람들은 조용히 각자 기뻐하는 분위기라 우리도 조용히 기뻐했다. 내려서 땅을 밟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있었다. 그래도 살아서 땅을 밟는 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행복한 여행 끝에 조금 큰 이슈가 있었지만 무사히 돌아와 김치찌개를 먹고 어지러웠던 속을 달래고 집으로 갔다.


여행이 왜 좋은가 하면, 아무리 계획해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현실에선 계획대로 안되면 분노뿐이지만, 여행에서는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새로운 행운이 맞이하기 때문이다. 귀찮아서 시켜 먹은 아침 딴삥이 맛있던 것도, 시간이 남아 첫날에 까르푸를 가서 발견한 18일의 맥주도 나에게, 우리에게 정말 큰 행복이었다. 언젠가 돌이켜보면 오히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더 기억에서 오랫동안 머물러있지 않을까?


여행이 좋은 이유에는 좋은 사람들과의 동행도 포함된다. 지난번에 나와 친구가 인물 사진을 많이 안 찍었다고 아쉬워하던 다른 친구는 틈나는 대로 우리의 사진을 찍었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귀찮아하지 않고 찍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배려심이 넘쳐 누구보다 빠르게 우리가 헤매는 상황을 해결하려고 가장 먼저 타인에게 말을 걸어 질문한다. 무슨 일이 생겨도 가장 앞장서서 해결하는 모습이 항상 든든하다. 다른 친구는 항상 이 모든 계획을 세우고, 이동 경로를 다 찾아보며 흡사 현지인처럼 안내한다. 평소에 계획적으로 사는 삶을 즐기지 않으면서도 우리를 위해 2안도 머릿속으로 생각해두고 있다. 호기심이 많아 알아듣지 못한 외국어의 의미를 찾아내는 집념에 여행이 한층 재밌어진다. 나는 정말 행운아다. 이 친구들과 함께 이번 여행을 했고, 다음 여행을 꿈꿀 수 있으니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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