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좋으면 가능한 일정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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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가는 비행기는 모 아니면 도처럼 아침 아니면 밤에 출발하는 비행기만 선택할 수 있었다. 둘 다 선호하지 않지만 밤에 가면 시간과 비용이 아깝기 때문에 아침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 결과 3시간 전에 가야 하니 동네에서 새벽에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타야 했다. 본가 근처에 각자 독립한 우리 자매는 걸어서 2분 거리 정도에 살기 때문에 함께 공항버스를 타기로 했다. 한 정거장만 더 가면 공항버스 가격이 반으로 줄기 때문에 그 정거장까지 가서 타기로 했다. 문제는 아침에 확인하니 공항버스를 제외하고는 차가 없었다. 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기에 더 당황스러웠고, 그냥 여기서 타기로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도착한 공항버스는 우리가 탈 자리가 없다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라고 했다. 그럴 바에는 다음 정류장에 가서 타자며 택시를 타고 이동을 했다. 택시에서 내려서 정류장에 도착을 했는데 그때부터 두렵기 시작했다. 이 다음 버스에도 자리가 없으면 어떡하냐고 사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럴 경우 아빠에게 전화를 하기로 마음을 먹으며 기다렸다. 인고의 10분을 기다려 드디어 공항버스가 도착했고, 걱정과는 다르게 자리가 있어서 타고 갈 수 있었다. 연휴에 여행이란.. 공항버스가 가득 찰 수도 있다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해 준 셈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들어가자마자 타이항공 수속하는 곳이 있길래 확인도 안 하고 냅다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타이항공이 여기만 가는 것은 아닐 텐데 맞게 들어왔는지 앞사람에게 확인했더니 다행히 방콕을 가는 비행기 줄이 맞다고 했다. 미리 체크인을 해놨기 때문에 무난하게 짐을 보내고, 환전한 돈을 찾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6시간의 비행은 나에게 많은 준비를 하게 만들었다. 기내에서 볼 이북리더기와 목베개, 발해먹 등을 가득 담은 기내용 가방이 매우 무거웠다. 그 와중에 면세로 산 건 왜 이리 많은지 들기가 빡셌다. 나름대로 3시간 전에 도착했지만 줄 서서 낭비하는 시간이 꽤나 많았기 때문에 밥 먹고 나니까 면세를 구경할 시간도, 커피를 사 먹을 시간도 없이 화장실만 갔다가 비행기를 탑승해야 했다.
오랜만에 탄 타이항공은 역시 좋았다. 오래전에 홍콩 갈 때 한 번 탔었는데 그때도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었는데 이번 여행에서도 대 만족한 비행이었다. 담요, 베개, 이어폰, 기내식 등을 살뜰하게 잘 챙겨주었다. 출근할 때마다 읽었던 [레미제라블]은 이제 5권 끝부분에 다다랐기 때문에 타자마자 남은 부분을 숙제하듯 읽기 시작했다. 이건 비밀인데 마지막의 장발장이 너무 안타깝고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서술에 눈물이 찔끔 났다. 동생이 알면 놀릴게 뻔하기 때문에 몰래 눈물을 훔치느라 힘들었다. 그렇게 다 보고 나서 노래를 들으려 했는데 다운받아진 줄 알았던 노래가 하나도 다운받아져 있지 않고, 잘못 눌린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만 다운받아져 있었다. 그 노래만 한 3번 듣고 자다 깨다 하면서 드디어 방콕에 도착했다. 시차로 2시간 젊어진 몸뚱아리를 이끌고 이미그레이션과 짐 찾기를 완료했다. 4층에 올라가서 유심을 갈아 끼고 볼트를 잡아서 호텔로 향했다. 꽤나 쾌적한 택시가 당첨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편안하게 바깥 풍경을 즐기며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저렴한 가격에 비해 굉장히 친절하고 룸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 2박 동안 있어야 하는데 깨끗하고 마음에 들었다.
기내식을 그렇게 먹고 안고플 줄 알았던 배는 나를 배신했다. 배고파서 빨리 밥이 먹고 싶어서 선크림을 벅벅 바르고 사원을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짧은 치마는 입장하지 못할까 봐 나름 긴치마를 입고 영상을 찍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산 카메라를 챙겨서 나왔다. 트래픽잼이 심한 방콕 거리에서 첫 일정은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호텔이 카오산로드와 가까웠기 때문에 카오산로드 쪽에 있는 [크루아압손]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신난 우리는 푸팟퐁커리, 새우볶음밥, 모닝글로리 볶음, 오믈렛 무려 4개의 메뉴를 시켰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4개나 먹고 싶었나 보다. 양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둘이 먹기에는 다소 많은 메뉴긴 했다. 그래도 맛있게 먹으면서 다음에는 메뉴 개수를 줄이자고 다짐했다. 맛있게 먹고 일정대로 왓포를 보러 가기로 했다.
배가 지나치게 부른 우리는 왓포까지 또 걸어가기로 했다. 여유 있게 더움을 만끽하며 걷고 또 걸었다. 거의 다 온 거 같을 때쯤 웬 남자 하나가 우리한테 말을 걸었다. 왓포에 가는 거냐, 거기 오늘 일찍 닫는 날이다. 오늘 무슨 기념일이라서 일찍 닫으니까 가지 말라고 했다. 아직 입구 근처에는 가지 못한 우리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친절한 그는 우리에게 갈 곳을 추천해 주겠다면서 메모지까지 꺼내서 적어줬다. 무슨 강으로 가서 배를 타고 가면 무슨 큰 부처상을 볼 수 있고 배에서 시장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하며 다짜고짜 지나가는 툭툭을 세워 태워주면서 20밧이면 데려다준다고 한다. 홀린 듯이 첫 툭툭을 탑승했다. 그리고 이상한 선착장 같은 곳에 우리를 내려주고 무섭게 생긴 아저씨한테 데려다주면서 쪽지를 보여주며 타이사람 가격에 태워주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근데 거기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1,800밧인데 1,200밧에 태워주겠다고 했는데 1,200밧은 거의 한화로 5만 원이다. 12,000원 주고 왓포에 가려던 우리에게 5만 원 가까운 돈은 사치였다. 갑자기 찾아온 제정신에 동생한테 이거 사기 같다고 말을 건넸다. 내 말에 동생은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돌아온 T적 사고로 왓포가 닫지 않았을 거 같으니 왓포로 도망가자고 했다. 계속 재촉하는 아저씨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뒤 그냥 뒤돌아 튀어나왔다. 그리고 좀 걸으니 왓포가 나왔다. 젠장, 왓포는 활짝 열려있었다. 사람도 꽤나 많았다. 약 800원으로 냉정한 방콕 세상을 알게 된 우리는 인류애를 느끼다가 인류애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놈에게 코쿤카를 외친 우리의 상냥함을 돌려받고 싶었지만 사기당하지 않은 나 자신을 셀프 궁둥이 팡팡하며 칭찬해 주고 이 해프닝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왓포는 아주 거대한 불상이 누워있는 일명 와불이 가장 유명했다. 사기를 당할 뻔해서 후문으로 들어온 우리는 다들 찾기 어려워하는 와불이 있는 출입구로 들어와서 수월하게 만날 수 있었다. 뜻밖에 사기꾼에게 도움도 받은 게 있구나.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사기꾼을 욕하면서 왓포에 온 것을 마음껏 기뻐했다. 니들이 아무리 사기를 쳐도 나는 당하지 않는다며 잔뜩 으스대며 다녔다. 기분이 좋았다. 태국 느낌이 물씬 나는 왓포의 매력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다가 나와서 왓포 선착장 쪽으로 향했다. 왓아룬은 그냥 멀리서 구경하기로 했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한 해질녘에 도착해서 눈에 보이는 풍경이 너무 예뻤다. 카메라로는 그 아름다움을 다 담지 못했지만 눈으로 볼 때는 진심으로 황홀했다. 한국에서 촘아룬이라는 곳을 이미 예약하고 왔는데 그 예약 시간까지는 1시간가량 남았다. 다른 카페를 가있을까 했지만 카페가 다 일찍 문을 닫았다. 고민 끝에 DM을 보냈더니 한 자리 남았으니 와도 된다고 해서 냅다 들어갔다. 가서 보니 우리 자리에서도 왓아룬이 매우 잘 보였다. 계속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땡모반과 팟타이를 시켰는데 이상하게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아서 음식을 한 입만 먹고 땡모반만 들이켰다. 한국에서는 수박도 안 먹고 수박주스는 쳐다도 안 봤는데 이상하게 땡모반의 매력에 홀려버렸다. 왜 이렇게 맛있는지 이 맛을 잊지 못해 지금도 땡모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름다운 야경과 함께 마셔서 더 맛있었을 수도 있다.
동남아의 무더위에서 뜻밖에 행군을 했고 새벽부터 몸을 혹사시켜서 지친 우리는 일찍 들어가 쉬기로 했다. 드디어 볼트를 불러 호텔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물을 사들고 들어갔다. 들어가서 씻자마자 잠이 들었다. 기나긴 13일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