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장기 프로젝트

헤어짐이 주는 두려움

by 초이

첫 회사를 다니던 시절, 나를 가장 많이 가르쳐주던 선배가 있었다. 나는 겁이 많아 일을 하다가 실수를 할까 두려워했었는데, 그 선배는 그런 나를 일 하기 싫어하는 애로 오해를 했었다고 한다. 그런 오해를 품고도 퍽이나 다정한 편이었다. 헤매고 있으면 가장 잘 알려주었기에 나의 비빌 언덕 내지는 믿을 구석 역할을 맡아주었다. 그런 그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 나는 내가 그를 짝사랑한다고 오해를 했었다. 돌이켜보면 그를 이성적으로 좋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 이별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충격이 마치 연인과 이별하는 것처럼 두렵게 느껴졌었다. 그의 퇴사는 직장인이 된 나에게 처음으로 맞는 충격이었고, 그 후 퇴사를 통해 직장 동료와 이별하는 데 성숙해질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와 헤어지는 건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친구와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도 그렇고, 학원을 바꾸면서 정들어버린 학원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도 슬펐다. 그런 감정이 남들에게 들키는 것은 또 왜 이렇게 부끄럽고 싫은지 퍽이나 아닌 척을 해댔다. 그 끝에 눈물을 짓지 않기 위해서 모진 소리를 하는 쓸데없는 객기를 부렸다. 넌 나와 헤어지는 게 아쉽지도 않냐는 선생님의 말에도 뭐가 아쉽냐고 대들기도 했었다. 거의 20년이 다 된 지금에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 시간이 나에게 뒤늦은 후회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것을 시작할 때 나는 그것이 관계도 새롭게 시작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리고 나서 시작을 하고 나면 그 관계에서 오는 행복에 중독되고 만다. 처음에는 그 관계를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다가도, 막상 정을 주고 나면 그 관계를 견고하기 위해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관계는 원하지 않는 끝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런 순간이 다가올 때면 아직도 두려움이 몰려온다. 또다시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그 관계를 놓아버리는 선택을 하는 상대를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 서운하다. 왜 우리는 지금을 유지할 수 없는지, 왜 우리는 남들의 기준대로 살아가야 하는지 서글프다. 근데 내가 현재에 머물고 싶다고 상대가 자신을 위해 하는 선택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나.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니까.


어쩌다 보니 나는 한 모임의 리더가 되었다. 다들 그 모임의 끝은 나에게 달려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많은 모임원들은 들어왔다가 나가고 또다시 돌아왔다가 또다시 나가기도 한다. 함께 이 모임을 결성했던 이들도 점점 떠난다. 나는 이 모임의 끝을 강제로 담당하게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이 끝의 압박은 2025년 내내 나를 따라다닐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마무리하는 게 모두를 위한 것일지 생각해 본다. 대체로 나는 이별을 오랜 시간 준비한 적이 없었다. 모든 이별을 다 갑작스럽게 맞이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번 이별은 나에게 장기 프로젝트가 될 예정이다. 아쉬움과 서운함 그리고 불안감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그 시기를 잘 정해보고자 한다.


꽤 많은 헤어짐을 경험한 나에게도 아직까지 어떤 것을 끝내는 것이 많이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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