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대회 선택을 후회하며..
2019년 초에 나는 한 호텔 수영장에서 강습용 수영복을 빼입고 멋지게 수영을 하는 할머니를 보았다. 그 할머니처럼 수영 잘하는 할머니로 나이를 먹고 싶어 등록한 센터에서 지금의 운동 쳐돌이인 내가 탄생했다. 그때 나에게 무료 PT를 해주며 영업에 성공한 트레이너는 인터벌 달리기를 하라며 강요했다. 그의 영업용 한마디로 나는 약 2년간 매일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했다. 인터벌을 하다가 지겨워져서 속도 9로 30분간 달리기를 하거나 속도를 높여서 전력 질주를 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센터가 문을 닫고,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하라고 했던 그때는 매일 아침에 달리기를 하고 오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 덕에 매일 마스크를 뛰고 달리기를 했었다. 그게 버릇이 되어 아직도 운동을 할 때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버릇이 있다.
당시에 달리기를 할 때, 컨디션이 좋을 때는 1km에 6분 40초 정도가 나왔고 힘들 땐 7분이 넘을 때도 있었다. 빠르게 뛰려는 목표 따위는 없었기에 그저 달리기를 하며 칼로리를 소모하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사실 매일 웨이트를 한 후에 뛰었기 때문에 맨땅보다는 러닝머신 위를 질주한 적이 훨씬 많아서 강제로 6분 40초 정도로 달렸던 것 같다. 그런데 센터에서는 웨이트에 초점을 두었기에 제대로 된 러닝화를 갖추고 뛴 적이 없었다. 심지어 웨이트에 특화된 신발을 신고 달리는 만행을 자주 저질렀고 쓸데없이 연약한 나의 발목은 버텨주지 못했다. 나는 러닝과 그렇게 점점 멀어졌다.
약 2년 전부터 헬스장에서 하는 유산소 운동에 질리기 시작했다. 무엇을 해도 심박수가 잘 오르지 않고, 발목에 안 좋다는 이유로 달리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동생이 자기의 친구가 복싱을 배웠고, 칼로리 소모가 엄청 많이 된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농담처럼 복싱을 해야 하나 하는 동생의 말에 영업을 당한 건 나였다. 정신 차리고 보니 복싱을 등록했고 매일매일 복싱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뭐 하나에 빠지면 집착적으로 하기 때문에 러닝은 쳐다도 본 적이 없었다.
그놈의 러닝을 다시 쳐다보게 된 건 또 동생의 카톡 때문이었다. 아까 그 친구(복싱하는 친구)와 마라톤 대회를 나가려고 한다며 보내준 내용에는 “미니언 티셔츠”를 주는 미니언즈 런이라는 대회였다. 나는 딱히 마라톤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 옷이 귀여웠다. 티켓팅을 앞둔 10분 전에 갑자기 나도 모르는 사이 티켓팅을 하는 사이트를 가입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신청하기를 눌렀고 홀린 듯이 결제까지 갔다. 놀랍게도 동생과 동생 친구는 티켓팅 전쟁에서 패배를 하고 오직 나만이 당첨이 됐다. 이런 난감한 상황이 있나..
별수 없이 나는 러닝화를 찾아 구매를 하고 외면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오랜만에 공원을 뛰러 나갔다. 정말 신기하게도 2년 넘게 달리기를 한 적이 없는데 기록이 좀 더 좋아졌다. 5km 중 첫 1km는 5분대로 뛰어버리게 된 것이다. 나머지도 6분 언저리로 뛰었기에 애플워치가 고장 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다음에도 그렇게 뛰는 걸 보면 단순히 고장은 아닌 것이다. 놀랍게도 난 그 사이에 의문에 실력 향상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나란 인간, 10km를 예매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했기 때문에 5km만 뛰어서는 안 됐다. 10km를 하자고 마음먹고 나와도 왜인지 자꾸만 5km에서 멈추게 됐다. 그러다 일요일 오전 독서모임에서 습관에 관한 책을 리뷰해 주시는 걸 듣고 오늘 만약 러닝을 한다면 1km만 더 뛴다는 마음으로 한 번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먹고도 러닝을 미루고 미루다가 저녁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겨우 기어나갔다.
첫 1km를 달리는 데 몸이 매우 가벼운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좀 전까지 아플 거 같고 힘들 거 같고 다칠 거 같다는 생각에 나오기 싫었는데 왜 몸이 가벼웠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렇게 애플워치가 알려준 기록을 보니 무려 5분 45초대로 뛰었다. 이어서 그다음 1km도 그다음도 5km를 다 뛰고도 지치지 않고 계속 5분대를 유지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까 마음먹었던 1km만 더를 적용해서 뛰었다. 6km를 찍고 나니 ‘오늘 10km를 다 뛰면 대회날까지 다시는 10km를 연습하지 않는 보상을 줄게 뛰어 보자 나 자신!’ 속으로 이런 거래를 하고 있었다. 그래, 오늘 벌써 6km를 뛰었으니 나머지를 채우는 게 더 쉽지. 다른 날 다시 10km를 뛰려면 얼마나 힘들겠어. 이런 마음으로 계속 뛰었다. 놀랍게도 7km까지 5분대로 뛰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런데 7km를 지나자마자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만 뛰고 싶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 7km도 대단한데.. 그만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1초에 한 번씩 들었다. 근데 대회 날까지 다시 10km를 안 뛰어도 된다는 저 거래 조건이 너무 완벽했기에 뛸 수 있다고 세뇌를 하기 시작했다. 이 구간을 3번만 더 지나면 끝이니 힘을 내보기로 했다. 그래도 계속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뇌를 지배했지만 그럴 때마다 이미 뛰어 놓은 8km가 아깝지 하면서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마침에 9km를 뛰었을 때는 몸이 점점 처졌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고지가 눈앞이지 않나.
7km 구간에서부터는 공원에 있는 벤치들만 보였다. 저곳에 지금 당장 앉아버리고 싶다는 충동과 싸워야만 했다. 러닝을 하고 나면 바로 쉬지 않고 걸어야 한다는 상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10km를 다 뛰고 나면 당장 주저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힘들 것 같았다. 당장 저 벤치로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10km를 완주했다. 바로 애플워치를 확인하니 나의 기록에 뭔가 벅차올랐다. 내가 이렇게 뛰다니.. 어릴 때 체력장으로 1km만 뛰어도 하루 종일 힘들어했던 내가.. 30대 중반에 이렇게 뛸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행복했다. 러닝을 하고 나니 하루 종일 저조했던 기분도 상쾌해지고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벤치는 잊어버리고 집까지 쉬지 않고 걸어갔다.
러닝은 결국 승부다. 나 자신의 게으름 그리고 편안함, 휴식의 달콤함과 싸워야만 이뤄낼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을 했을 때는 지친 몸보다 해냈다는 자신감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물론 다시는 마라톤 대회를 신청하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겠지만 그 만행 덕에 이런 짜릿함을 맛본 이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뛰면서 머릿속으로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러닝 할 때 느꼈던 이 생생한 감정을 글로 남겨두지 않으면 매우 아쉬울 것 같았다. 내가 기록이 좋아진 이유에 대해서도 써 내려갔다. 아마도 코로나 덕분에 아직까지 쓰고 운동하는 마스크 덕분인 거 같다. 복싱을 하면 심박수가 190을 넘기도 했는데 그때도 그놈의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의문에 폐활량 상승은 코로나가 안겨준 선물처럼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