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기 위해

탄핵 시위에 참여한 이야기

by 초이

1년 중 가장 바쁜 달을 뽑으라면 나에겐 12월이 그렇다. 이번에는 12월에 새로운 회사를 들어가기도 했고, 기존에 하던 서브 업무들도 많고, 새롭게 시작한 일까지 겹쳐서 주말에도 끝나지 않는 일과 싸우고 있다. 지난 화요일 밤 비상계엄의 공포로 휩싸이기 전까지 주말의 나의 계획은 빨리 일을 끝내고 책을 읽기 위해 카페를 가는 일정이었다. 일하면서 졸릴까 봐 틀어 놓은 강철부대가 꺼지고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지면서, 나는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넋 놓고 밤을 지새웠다. 그 시간에도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과 담을 넘어서 회의장으로 들어간 국회의원들 덕분에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지만, 그날 그 밤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못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학생 때부터 한국 정치로 상처받고 치유되지 못한 채 세월호와 탄핵을 겪고, 잠시 평화롭게 살았던 그때가 전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온했던 5년 뒤에 또다시 불행을 자처한 선거 결과에 마음에서 정치를 밀어냈었다. 그런데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여러 가지 기사들과 정치에 촉각을 세워야 하는 업무를 잠시 동안 했어야 했기에 내 마음에 다시 투지가 불탔던 것도 같다. 유시민 작가의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보았던 세계는 레거시 미디어가 가려놓은 일부였을 뿐이며,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평가를 보게 됐다. 나는 내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정치에 대한 관심을 꺼두었던 잠시의 시간에 대해 반성했다. 내가 불편하다고 관심을 끄게 되면 나는 저런 자를 대통령으로 둔 나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길 수 없어도 먼 훗날 나를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미약한 투쟁이라도 했어야 했다. 내 이런 다짐을 현실로 만들어주기 위해서일까? 비상계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12월 7일, 출근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서 꼭 해야 할 업무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빨리 끝내고 가자. 많은 시민들이 그의 퇴진, 그의 탄핵을 바라며 모여있는 그곳으로 가자. 그 마음으로 나는 바쁘게 움직였다. 게으르고 싶었던 주말에 부지런히 움직이면서도 내 마음은 이미 여의도를 향해 있었다. 업무를 끝내고 도착한 여의도역에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어떤 출구로 나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역무원의 안내에 따라 1번 출구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행렬에 섞여 여의도 공원까지 꽉 차있는 시민들을 보면서 마음이 웅장해졌다. 나한테는 전혀 없을 거라 자신했던 국뽕이 휘몰아쳤다. 대단한 국민성이지 않나. 낮은 기온으로 추운 이곳을 전혀 추위를 느낄 수 없도록 꽉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봐도 감동적이었다. 나는 그 행렬을 뚫고 국회 앞까지 계속 나갔다. 깃발을 제작해 들고 온 사람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응원봉을 챙겨 온 2030 여성들, 계엄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은 586 세대들, 각자의 마음속 촛불을 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게 좋았다. 시위 주최 측은 2030 여성들의 취향에 맞는 노래에 맞춰 윤석열 탄핵을 외치면서 행사를 빛내주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단 하나를 바라는 데 그 하나를 못해주는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 때문에 분노가 일었지만, 내 옆에 내 앞에 있는 이 다정한 사람들 때문에 전혀 슬프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시위가 열릴지는 모른다. 현실적으로 그 모든 시위에 참여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든 모든 시간을 쪼개서라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시위에 참여하려고 한다. 나의 참여가 많은 이들에게 내가 느꼈던 따뜻함과 다정함을 느끼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더불어 법 위에 서려고 했던 그 자의 탄핵이 빠른 시일 이루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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