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금요일. 징검다리 연휴를 위해 하루 휴가를 냈다. 남편은 출근했고, 큰아들은 군 복무 중, 작은아들은 친구들과 여행 중이어서, 열흘의 긴 연휴 중,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된 단 하루. 명절 내내 흐렸던 하늘이 이날 아침, 반짝 해를 드러냈다. 나는 도서관을 목적지로 삼고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기로 했다.
신호등 앞에 멈춰 서자, 길가 울타리 사이로 노란 개나리꽃이 눈에 들어왔다. 가을에 만나는 개나리라니. 겨울에도 추위가 잠시 풀리면 몇 송이 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제든 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이 유연함과 기어이 팡! 꽃잎을 터트리는 민첩성이라니. 개나리는 계절의 틈을 비집고 피어나는 용기의 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목엔 여름꽃인 백일홍나무에 분홍 꽃이 아직도 반쯤 피어 있었다. 한여름 무성하게 피었을 꽃인데, 따뜻한 날씨 덕에 아직도 핑크빛을 간직한 채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반팔 차림으로 나왔고, 도로엔 반바지에 반팔을 입은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게다가 엊그제 남편과의 산책 중, 매미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놀라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머리로는 ‘지구온난화 때문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가슴으로는 ‘여름을 좋아하는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매미의 노래’처럼 들렸다. 10월에 만난 여름꽃과 매미소리는 그렇게 더 잔상이 남는다.
도서관 앞 모과나무엔 모과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가을은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포근한 날씨 속에 여름의 꽃과 곤충들은 아직 미련을 남긴 채 머물고 있었다.
산책을 하지 않았다면 놓쳤을 풍경과 소리들. 계절의 경계에서 만난 이 풍경들 덕에 잠시 사유를 할 수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결국 이 풍경들도 사라지겠지.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름에 꽃을 틔우고 잎을 무성히 내어주었으니, 가을엔 열매를 맺고 색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계절로의 성장이라고!
아! 성장! 맞다. 계절은 성장이구나!
모든 계절은 다음 계절을 위한 준비다. 꽃은 열매가 되고, 소리는 기억이 된다.
올해 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여름엔, 공저 작가로 첫 출간을 했다.
그리고 지금, 가을의 산책길에서 봄의 개나리와 여름의 매미소리, 여름꽃을 마주하며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되었다. 두 계절을 보내며 얼마큼 성장해 왔는지, 나의 성장일지에 남겨진 나의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녹진해졌을지...
계절은 저마다의 일을 묵묵히 해내며, 성장의 바통을 다음 계절에게 건넨다.
그 흐름 속에서 나 역시 한 사이클을 보내고, 내년엔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내년 여름엔 개인책을 출간하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여름에 두 번째 출간을 하리라...
가을 산책길에서 만난 여름의 잔상은 지나간 계절이 아닌, 다가올 계절의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 새로운 브런치 연재와 개인 출간을 나의 다음 계절을 위한 다짐으로 삼는다.
이 가을 산책 길에서, 올해의 여름의 흔적을 보며
나는 다음 여름을 준비한다.
더 단단해진 나로, 더 깊어진 이야기로.
오늘도 찾아와 글로 공감하여 주시는 글벗에게 감사드립니다.
<비비안 연재>
일 5:00 AM : 나의 성장일지
월 5:00 AM : 직장인 vs 직업인
수 5:00 AM : 시아버지 작사, 며느리 작곡
사진 출처: 개인 소장
#계절#변화#성장#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