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파리한 것, 따뜻한 것
파리하다, 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게 된 것은 쨍한 전등 불빛이 초라한 원룸의 살림살이를 적나라하게 비출 때였다. 자세히 보아야 빛날 곳도 없는데 빛은 어찌나 세게 내리쬐던지. 핏기 없는 신입 사원의 마음만큼이나 방안에 온기라고는 없었다. 빛 아래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스무 살이 지나고 해외여행을 다니게 되면서 외국의 호텔은 조명이 어둑함을 알게 되었다. 뭐가 이렇게 노랗담. 눈이 침침한데 왜 천장 한가운데에 전등이 없는지 의아해하며 한국의 삶의 방식이 전 세계 통용이 아님을 겨우 알았다. 그렇다면 전구는 꼭 파리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어느 날부터는 어둡고 노란 그 빛을 따뜻하게 느끼게 됐다. 어학연수를 했던 영국의 집은 노란 조명만이 있었는데, 노란 불은 숨기고 싶은 건 적당히 가려주고 보고 싶은 건 온화하게 바라보게 했다. 꼭 밤이 낮처럼 밝을 필요는 없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나를 위해 노란빛의 스탠드를 샀다. 모든 집의 하얗고 쨍한 천장 등이 한국 한정임을 알고 조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고층 아파트 근처를 지날 때면 층층이 거실 조명을 구경했다. 새파랬다. 자기 전엔 노란 전구 밑에서 책을 읽었다. 불을 바꾸면 하얀빛 아래에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정말이지 어느 순간부터 천편일률적이었던 우리네의 거실 전등이 점차 다양해졌다. 노란 불을 거실 등으로 하는 집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얼마 전 우리 집도 집안 전체의 등을 LED로 바꾸었는데, 덕분에 등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리모컨을 방마다 구비하게 됐다. 받자마자 조도를 낮추었다. 흰 불이고 노란 불이고 이래저래 한국인의 마음이 조금 더 너그러워졌다고 마음대로 말해봐도 되려나. 어쨌거나 흰빛 아래서 상대를 째려보는 이보다 노란빛 아래서 상대를 온화하게 바라보는 이가 되고 싶다. 파리하게 질린 사람만은 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