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네!
나는 유치원생 시절 목욕탕에서 모르는 아주머니와 몸의 점 개수를 같이 세 본 기억이 있다. 그때도 지금도 어리둥절한 일이었는데, 어쨌거나 하나하나 짚어가며 열심히 셌다. 다 세어 본 아주머니는 내게 점순이라 불러야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나는 또 순순히 수긍했다. 엉덩이의 왕점 때문에 내심 점순이가 맞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날 잃어버리면 엉덩이의 왕점을 특징으로 말하리라고 나를 놀렸다.
나는 아빠와 같은 위치에 손등 점이 있다. 아빠는 나를 데리고 앉아서 점을 비교하기를 좋아했다. 유전자가 신통하다고 즐거워하셨는데, 하얗고 깨끗한 손을 갖고 싶었던 나도 이 점만은 좋았다. 어디서 매력점이란 단어를 주워듣고 내 매력점은 이 손등 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얼굴 어디에 있는 점이 주로 매력점이라고 불린단 걸 알지만.
그런가 하면 싫어한 점도 있다. 왼쪽 팔꿈치 안쪽에 있는 세미 왕점인데 약간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피부를 한 꺼풀 벗기면 점이 평평해지기라도 할까 싶어 볼록한 점을 자주 쥐어뜯었는데, 상처가 아물고 나면 완벽히 점으로 복구되곤 했다. 이 쓸데없는 재생력은 뭔지. 10대 시절 이후로는 의미 없음을 깨닫고 뜯어내려는 시도를 멈췄다.
그렇게 정확히 좋아하는 점과 싫어하는 점을 구분할 수 있었던 내게 어느 날부터 더 이상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얼굴 점만 신경 썼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팔과 다리에도 한창이었다. 분명 왼쪽 손엔 아빠 매력점뿐이었는데 어느새 팔뚝까지 서너 개가 있고, 오른쪽도 있고, 다리에도 있었다. 내가 몰랐던 것들인가 의심했지만 이미 있던 점이라고 하기엔 다 너무 생소했고, 또 이렇게 점이 많았다면 그 아주머니가 나랑 점을 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터였다.
정말로 점이 많다고 자각하고 나니 점순이라며 깔깔 웃던 그 아주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어 졌다. 우스운 생각임을 알지만 어쩌면 이제는 나도 점을 다 세면 아주머니와 같이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줌마, 제 점 같이 세어보실래요? 얘, 넌 누군데 나한테 점을 보여주니? 아 저는... 그때의 어린 나는 외로움이 뭔지도 모르면서 아줌마가 외로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아줌마는 이제 손주가 생겼을지도 모르지. 같이 목욕탕에 갈 친구가 있으셨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점순이는 너무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