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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밈 Mar 19. 2021

머리카락;

020.나풀나풀 길기는 잘해요

  나는 몇 년 전부터 1년마다 한 번씩 단발로 머리를 잘랐다. 적당히 펌한 단발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였다. 염색도 하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뿌리 염색을 해 줄 바지런함이 내게는 더 이상 없다.


  축복받은 머리카락을 가졌다. 모든 미용사가 내게 늘 숱이 많다고 말한다. 자라기는 또 얼마나 잘 자라는지 서너 달이면 5cm쯤은 우습게 길어진다. 약한 반곱슬이라 파마도 잘 풀리지 않는다. 겨울 즈음 적당한 펌 단발을 했다가,  길어진 머리를 묶어 여름을 났다가, 추워지면 다시 머리를 풀고 다닌다. 그러면 매번 새로 펌을 했냐는 질문을 듣는다. 


  대학교 교양 시간에 들은 심리 수업에서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머리를 하려면 '원하시는 대로 아무렇게나 해주세요'라는 말을 하라고 배웠다. 펌한 단발이라는 간단한 조건만 걸고 디자이너 몇 명에게 시도해 보았는데 결과가 흥미롭다. 누군가는 굵은 롤을 쓰고 누군가는 숱을 왕창 치고 층을 낸다. 앞머리를 내어보자고 설득하는 이도 있다. 믿고 맡겨보자고 갔으니 그냥 전부 그러마 한다. 저마다 가장 괜찮아 보이는 모양으로 나를 완성시켜준다. 나는 그 모양 대부분이 썩 마음에 들었다.


  관리는 싫지만 예쁜 머리 모양은 유지하고 싶다. 머리를 단장한 그 날의 모습으로 몇 달쯤 고정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드라이기로 물기만 겨우 말린 채 뛰쳐나왔다. 이런 글에 형식적으로나마 앞으로는 잘 관리하겠다고 쓸 수도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니 적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예의만 차린 정도의 머리 모양일 것이다. 어쩌겠나. 모든 게 완벽할 순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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