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하게 된 계기1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불과 3주 전까지만 해도 명절날 온 가족이 모여 웃고 떠들 때 함께 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잔병이 있긴 하셨지만 병원에 입원하지도, 주기적으로 병원을 갈 일도 없던 분이셨는데 평화롭던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
대체공휴일이라 부모님과 함께 주말을 보내고 늦은 아침잠을 자던 나를 깨우던 엄마의 불안한 목소리,
“수지야 빨리 일어나 할머니 쓰러지셨대……”
참 이상한 날이었지,
전날 가족이 함께 비를 쫄딱 맞고 나이에 맞지 않게 빗속을 뛰어다니며 하하호호 웃었는데…
젖은 옷을 갈아입고 같이 치킨을 먹으며 여느 때보다 조금 더 특별한 하루를 보냈는데…
비를 맞아 추위에 떤 몸을 녹이려 반신욕을 하고 깊은 잠에 들었는데…
또 참 이상한 하루였지,
할머니가 쓰러졌단 소식에 짐을 싸는 엄마는 수건을 열댓 장 챙기셨고 여벌의 옷을 챙기셨지.
할머니와 함께 있던 큰삼촌은 자세한 상황을 말해주지도 않았는데 우리 모두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각자의 짐을 꾸렸지.
한 시간 정도였을까? 운전해 가는 차 안에서 내가 할 수 없는 건 그저 바라는 것뿐이었다.
할머니가 나 기다리고 계시겠지, 할머니가 내 얼굴 보고 가겠지.
병원에 도착하자 눈물이 잔뜩 맺힌 큰삼촌이 연신 줄담배를 피워대며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구나 이제 할머니 못 보겠구나.
어렸을 적 할머니가 날 키워주시며 밥 한 숟갈 더 먹이겠다고 집 앞 학교 놀이터까지 밥그릇을 들고 따라다니셨던 기억이 아직 생생히 남아있다. 성인이 돼서 운전을 배운 후로는 마음이 울적할 때나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땐 동생을 데리고 할머니를 보러 가기도 했다.
동생은 특히 힘든 시기를 겪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할머니와 종종 긴 시간을 함께 보냈었다.
그런 동생이 할머니의 부재를 겪으며 나한테 한 말이 내 가슴에, 머리에 푹 들어와 박혔고 내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말이 되었다.
“언니 할머니가 얼마나 열심히 살고 좋은 사람이었는지 알아?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밭에 나가서 일하고 밭에 다녀오시면 시장 가서 할머니 물건도 팔고 힘든 사람들 물건도 사주고 그냥 주기도 하고 그래.”
아 맞아 인생은 이렇게 살면 되는 거구나.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도 않지만 난 꽤 오랜 시간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죽고 싶어 했다.
다르게 말하면 삶의 이유를 찾아 헤맸고 도저히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난 아주 평온한 하루 속에서도 오늘 죽어도 나쁘지 않겠네 생각했고, 쇼핑몰에 ‘밧줄’을 종종 검색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의미와 목적이 있어야만 하는 걸까?
할머니는 묵묵히 본인의 삶을 살아오셨고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또 사랑을 주는 삶을 살다 가셨다. 할머니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나도 할머니처럼 살아야지.
장례를 치르는 내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더 이상 죽고 싶지 않았고 그저 내게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또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난 이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