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 위로 나무다리가 놓여있다. 퉁퉁퉁 발걸음 따라 쌓인 눈과 밟히는 판재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리를 낸다.
어느덧 나목들 사이에 굴거리나무들이 사라지고 노가리(주목)들이 반긴다. 때죽나무와 산딸나무는 이따금 깍두기처럼 껴 있다. 조금만 더 가면 휴게마당이 있다. 우선 거기까지 가자.
기억을 더듬어 보니 네 번째다. 이 코스는.
가뿐히 걸었던 익숙한 길은 겨울임이 무색하게 엿가락처럼 늘어나 있었다. '이렇게 멀었나' 생각하며 한 발짝씩 옮겼다.
출발한 입구에서 4km 지점 속밭에 이르렀다. 12개의 등받이 없는 벤치와 지붕 얹은 쉼터와 화장실이 넓은 공터 가으로 놓였다. 길이로 치면 정상까지는 절반쯤 온 것이지만 앞으로 갈 길은 지나온 길보다 점점 가파른 구간들이다.
졸참나무들은 함께 동행하기를 마다하지 않고, 드문드문 조릿대 위로 정상 능선이 겹쳐 보였다. 길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와 다른 방향이라도 길을 벗어나 직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때론 돌아가는 길이 맞는 경우가 있다.
길을 벗어나면 허벅지까지 빠진다. 눈이 꽤 많이 쌓였다는 것은 등산로 바로 옆에 발을 디뎠다가 빠진 발자국의 깊이를 보면 가늠할 수 있다.
속밭을 벗어나니 곧이어 나무계단이 이어지고 경사도가 세졌다. 체력과 다리 근육들이 아우성이다. 세월이 꽤 지났다. 완전군장에 박격포를 보너스로 메고 동계종합훈련의 하이라이트 200km 행군도 거뜬히 해내었다. 옛날 일이 돼버린 기억을 붙잡았다. 달랑 백팩 하나 메고 걷는데도 정상까지 갈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겠다. 일단 진달래밭까지는 가자.
초등생 형제와 젊은 아빠가 나를 가뿐히 제치고 지나간다.
속밭 벤치 맞은편에서 눈에 띄던 세 명이다. 외모는 한국인인데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남자의 오른쪽 신발끈이 풀린 채 서두르는 발길을 멈춰보려고 말을 불쑥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