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제주 바닷가에 노란 무궁화가 핀다. 김녕 바닷가, 성산 바닷가에 군락지를 이룬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 소담한 잎새는 노을빛으로 곱게 물들인다.
바닷가 식물은 중산간에서는 살기 어렵다. 기온차가 2~4도 정도 난다. 여름에는 별반 영향이 없지만 겨울에는 식물의 생존에 1도 차이는 사느냐 죽느냐의 차이일 수 있다. 수십 년 만에 강추위가 오면 십수 년 동안 잘 살던 나무도 그 겨울에 얼어 죽을 수 있다.
해발 218m에 위치한 정원은 해안가의 식생과 많이 다르다. 염분에 강하고 추위에 약한 해안식물인 황근이 중산간의 낮은 기온을 견뎌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중산간에 황근을 키우는 집이나 가로수도 아직은 본 일이 없다. 십여 년 전에 황근 묘목을 정원에 3그루 심었다가 2그루는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살아남은 한 그루도 죽다 살아났다. 줄기가 반쯤 얼어 죽은 것을 잘라내었다. 생기가 남은 밑동에서도 새순을 틔우지 못하다가 살아날 기대를 접을 즈음, 오월초에서야 새순을 틔웠었다.
재작년 가을이었다. 조천리 관덕정 바다를 보고 나오는 길에 가로수로 식재된 황근이 씨가 여문 것을 보았다. 씨를 받아 두었고 시월에 파종하였다.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던 겨울이었다. 봄바람에 눈 뜬 수백 개의 황근 씨앗들은 작은 새싹들이 콩나물처럼 서로 기대며 자랐다.
씨앗 파종을 하면 더 잘 적응하여 추위에 강한 나무로 자라지 않을까 생각했다. 파종한 씨앗에서 약 2/3가 발아했다. 발아한 모종들이 작은 화분에서 서로 경쟁하며 살아남은 개체 수가 1/3쯤이다. 남은 모종들을 지난가을에 포트에 옮겨 심고 노지에 두었다. 어릴수록 냉해를 입기 쉽다. 비닐하우스가 있지만 노지에 그대로 두었다. 몇 개가 살아남더라도 추위에 강한 모종을 얻고 싶었다. 어쩌면 다 죽을 수도 있으니 그간의 수고를 헛되이 할 수 있는 모험이었다. 다시 겨울이 지나고 살아남은 모종은 1/2이었다.
유난히 덥고 가물던 8월의 어느 날, 서귀포에 일이 있어서 매일 주던 물을 이틀간 건너뛰었다. 다른 식물들은 대체로 괞찮았다. 물을 좋아하는 수국과 황근이 말랐다. 작은 포트에 습기가 마르니 물 좋아하는 황근이 더 피해가 컸다. 1/3이 말라버렸다. 그래도 살아남은 개체수가 수십 주는 된다. 이후로 한 달 동안 물관리를 해주니 잎사귀가 말랐던 모종 중에 새순이 돋아나는 개체가 절반쯤 된다. 점점 살아남은 숫자는 줄었지만 추위에도, 더위에도, 강한 생존력을 가진 모종이 남았다. 지난해 보다 조금 더 자란 황근은 올 겨울을 잘 견뎌 줄 것이다.
오 년, 혹은 십 년쯤 후에는 황근 꽃이 활짝 핀 중산간의 정원을 상상한다. 노란 꽃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들의 춤사위가 흥겹다.
실은 황근이 발아하여 봄, 여름, 가을동안 자란 모종을 하우스에 넣어 관리하지 않은 것이 추위에 강한 모종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귀찮아서 놓아둔 것 일수도 있다. 반신반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