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락가락했다. 구름이 놀다 가는 곳이 내가 사는 동네 선흘리다. 세찬 비와 함께 천둥 번개도 지붕 위에서 친다. 오래 살아보니 이 동네는 비도 많이 내리고 눈도 많이 온다. (작은 제주도에 날씨가 뭐가 다르겠나 하겠지만 살아보면 알게 된다. 제주도가 생각보다 넓고 동네마다 날씨가 다르다는 걸.) 감상에 젖기 딱 좋은 곳이지만 생활에는 불편한 점도 있다. 게다가 주위가 숲으로 둘러 싸여 있고 정원에도 나무가 많으니 나무가 내뿜는 습기도 만만치 않다. 이런 이유로 햇살이 그리울 때도 있고 달 뜨는 밤이 보고 싶은 때도 있다.
오늘 같은 날
그리움이 사무쳐 아린 통증이 되는 날
가슴깊이 숨 쉬고 싶은 날
겹겹 쌓인 아픔을 잠시라도 잊고 싶은 날
달빛이 보고 싶은 날
늑대의 시간이 부르는 날
서귀포에 가자
보름달이 뜨는 서귀포에
산 넘어가면 보름달을 볼 수도 있을 거야.
단촐한 짐을 꾸리고 차에 실었다. 교래리에 접어드니 날이 개기 시작했다. 아니 구름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남조로를 달리니 어슴푸레 길 옆으로 드넓은 목장 초원이 밝아온다. 달이 뜨고 있었다. 남조로를 지나며 잠시 스치는 목장 풍경은 어수선한 마음속을 안정시켜 준다. 산록도로를 지나 드디어 서귀포에 진입한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러 서복을 보냈다는 지명이다. 서복이 눌러살기 위해 돌아왔다는 포구, 서귀포에 살면 불로초를 먹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이미 기울기 시작한 아쉬움에 사념 하나 떠올려 보았다. 조금 높게 떠오른 달은 작아지고 있었다.
머리 위에 가까이 다가오는데 왜 달은 작아질까? 은은한 달빛에 마음도 덩달아 푸근해진다. 저 달빛처럼 부드러운 눈빛, 마음 빛을 닮고 싶다. 주위가 포근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