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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피아가 핀 가을 정원

이방인의 땅에 뿌리를 내리려면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by 시인의 정원

쿠페아. 원래이름이다. 중남미 원산지인 이 꽃은 분홍색과 보라색을 섞은 듯이 예쁜 색감을 가지고 있다. 아홉 번 핀다고 해서 우리말 이름은 구피아로 부른다. 본 이름과도 비슷하니까 부르기 편하게 붙였나 보다. 아홉 번을 꽃피우려면 양분을 많이 필요로 하겠다. 꽃이 거저 피는 것은 못 보았다. 최상의 건강을 유지할 때 예쁘고 건강한 꽃을 피우고 벌레도 안 낀다. 구피아꽃이 피었다. 유난히 길었던 여름이 막을 내린 뒤에다. 따뜻한 고향에서 이주해 왔으니 추위는 견디기 어렵다. 아홉 번을 피려면 봄부터 부지런해야 할 텐데 늦잠을 많이도 잤다. 싸늘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시월의 중순에 얼굴을 내민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겨울 동해를 입었다. 줄기까지 말라버렸다. 죽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지만 밑동에 푸른 기운이 남아 있어서 봄에 가지를 바짝 자르고 분갈이를 했던 터였다. 힘겨운 겨울에 살아남느라 온 힘을 써버린 구피아는 봄이 왔어도 회복에 시일이 더뎠고 여름까지도 순과 줄기를 키우는데 힘을 쓰고 있었나 보다. 다가올 겨울을 앞두고 꽃잎 한 장 내민 것이 최선이었나 보다,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 송이 작은 꽃이 눈에 시리다.


올 겨울은 보온을 신경 써서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겠다. 내년에는 봄부터 마음껏 꽃 피울 수 있게, 아홉 번을 피어도 지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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