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을 하다 보면 존댓말을 하다가 가끔 반말로 할 때가 있는데(존댓말로 해야 이해가 되는 경우가 있고, 반말로 해야 이해가 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럴 경우 이 부분은 존댓말로 해야 이해가 되고, 이 부분은 반말로 해야 구독자의 이해가 잘 되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주시길 바란다.
1.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적인 결혼 문화♥
♥장소♥: 브라질, 페루, 멕시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볼리비아, 파나마, 아이티, 카리브 해 열대 섬
♥결혼의 형태♥: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된 성(SEX)문화에 입각한 여성 중심적 결혼과 여자, 사랑, 봉사에 대해 답례로 구매혼.
실제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남녀는 알몸으로 생활했으나 19금의 높은 수위 때문에 억지로 Ai가 옷(?)을 입혀놨습니다..
♥모성(Matrifocal) 중심적 경향♥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엄마(Madre)"는 가족의 정서적, 실제적 중심이자 결속력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식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자들이 가족을 책임지는 모성 중심 사회(Matrifocal) 형태가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 사회의 공통적인 시스템입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모계 사회(Matrilineal Society)♥
"모계 혈통"과 여성 중심의 공동체의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는 어머니의 혈통을 중심으로 가문이 이어지는 모계 사회(Matrilineal Society)입니다.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브라질과 페루의 아마존 열대우림이나 카리브 해의 열대 섬들처럼 먹거리가 다양하게 많은 환경 속에서 여자들은 해양 채집과 초기 농경을 주도하며 안정적인 식량 공급자의 역할을 했어요. 이는 여자가 공동체의 생존에 핵심적인 기여를 한다는 인식을 낳았고 자연스럽게 라틴 아메리카 사회에서 여자의 사회적 지위를 격상시켰어요.
모처사회(Matrilocal)에서 여자의 권력도 높았어요. 결혼 후 남편은 아내의 가족 공동체로 들어가 함께 생활하는 "모처제(Matrilocal residence)"가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 사회에서 보편적이에요. 이 구조 속에서 여자는 자기의 엄마, 자매, 딸들과 함께 생활하며 여성 중심의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논밭이나 움막, 수상 가옥과 같은 중요 재산은 여자를 통해 상속되며, 공동체의 중요한 결정 역시 연장자 여자들의 회의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모성중심사회(Matrifocal)와 자녀 양육은 엄마가 했으며 자연스럽게 가정의 중심은 엄마가 주도했어요. 자녀들은 엄마의 성씨(Family name)를 따른다. 아기의 아빠는 생물학적 아빠로서의 의미가 있지만 아기의 사회적 소속과 정체성은 엄마의 집안에 의해 결정됩니다. 남편은 자기의 자녀뿐만 아니라 자매의 자녀들(조카)을 돌보고 가르치는 외삼촌으로서의 것까지 합니다. 이는 공동체 전체가 함께 아기를 양육하는 구석기적인 "공동 육아"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의 섹스(SEX)♥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적 성(SEX)문화 이들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잉카, 아즈텍,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사회의 공통점인데 라틴 아메리카에서 섹스(SEX)는 생명의 탄생과 직결되는 매우 좋은 성스러운 종교적 행위로 간주됩니다. 즉 라틴 아메리카의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사회에서는 섹스(SEX) 그 자체가 신들에게 드리는 종교 의식인 것입니다. 게다가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 사회는 남녀가 죄다 알몸으로 생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이기 때문에 섹스(SEX)는 삶의 일부로 남녀노소 누구나 하는 문화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의 혼외 섹스(SEX) 문화♥
게다가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의 젊은이들은 결혼 전에 다양하게 많은 섹스 파트너들과 자유로운 섹스를 통해 자기에게 맞는 짝을 찾으며 혼외섹스가 권장되는 사회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성적 경험을 죄악이 아닌, 성숙한 성인이 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여기는 개방적인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됩니다. 공동체는 이러한 젊은이들의 성행위를 인정하고 때로는 축제를 통해 이들의 만남을 축복하기도 합니다.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의 섹스를 통한 자녀 성(SEX)교육 문화♥
심지어 브라질과 페루의 열대 아마존 원주민 사회와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에서는 자녀들이 어린 시절에 부모들이 자녀들과 같이 섹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성(SEX)교육이었고 자녀들은 부모들이 섹스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섹스를 익혀야했던 것이 브라질과 페루의 아마존 원주민 사회,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의 성인식이었다고 하네요. 문명인의 시선에서 봤을때 이는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아동 성착취물, 성폭행, 성매매, 성적 착취 등을 하는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지만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사회에서 "아동"이나 "어린아이", "청소년"이란 개념이나 "복지" 자체가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잉카와 아즈텍 신화 자체가 섹스의 여신들이 많았기에 이런게 가능했다고 하네요.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의 자유로운 섹스(SEX) 문화♥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결혼은 영속적인 계약보다는 두 남녀의 섹스, 사랑을 바탕으로 했던 결합입니다. 따라서 서로의 섹스를 식어버릴 경우 얼마든지 이혼하고 재혼하거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미 결혼했음에도 다른 여자나 남자하고 추가 결혼하는게 자유로웠으며 "불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이미 결혼해서 남편이 있는 1명의 여자가 수많은 남자들과 결혼하지 않고 자유로운 섹스가 가능했던 사회가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그리고 브라질과 페루의 열대 원주민 아마존 사회였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이혼은 실패나 오점이 아니며 아내와 남편 모두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2. 오세아니아의 전통적인 결혼 문화♥
♥장소♥: 호주, 뉴질랜드, 타히티, 이스터 섬, 폴리네시아 열대 섬
♥결혼의 형태♥: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된 성(SEX)문화에 입각한 여성 중심적 결혼과 여자, 사랑, 봉사에 대해 답례로 구매혼.
실제 폴리네시아의 원주민 남녀는 알몸으로 생활했으나 19금의 높은 수위 때문에 억지로 Ai가 옷(?)을 입혀놨습니다..
호주, 뉴질랜드는 서구(유럽)의 결혼 문화가 주를 이루지만, 폴리네시아와 같은 열대 섬 원주민 문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성(SEX)문화에 입각한 모계 사회"였기에 매우 성(SEX)문화가 개방적인 결혼식 시스템이 있습니다.
♥폴리네시아 원주민 사회의 모계 사회(Matrilineality)♥:
폴리네시아와 남반구의 열대 섬들은 여성이 열대 섬이나 자원의 소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가정 내 의사 결정에서 가장 높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성 중심적(Matrifocal) 특징을 보입니다.
모계(Matrilineality) 중심의 사회 구조와 여성의 역할인 오세아니아의 원주민 사회는 엄마의 유전을 따라 가계와 재산, 사회적 지위를 물려받는 모계 사회(Matrilineal Society)를 근간으로 합니다. 이 폴리네시아 원주민 사회에서 여자, 특히 엄마와 할머니는 가정과 공동체의 중심축 역할을 합니다. 폴리네시아 원주민 사회에서 섬과 같은 주요 자산은 여자를 통해 딸에게만 상속되며, 남자는 결혼을 통해 아내의 가문에 속하게 됩니다.
폴리네시아의 열대 섬의 또 다른 특성으로는 모처 거주(Matrilocal)의 형태도 나타나 여성 중심의 가정 관계가 강하게 형성되기도 합니다.
♥지구상에서 라틴 아메리카와 더불어 가장 성적 개방성♥:
서구 문명의 유입 이전에 남반구의 폴리네시아의 열대 섬 문화권은 섹스(sex)에 대한 태도가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적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섹스(sex)를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폴리네시아 원주민 사회의 모계사회를 뛰어넘는 모처사회(Matrilocal)와 모성중심사회(Matrifocal)♥:
결혼 후 가정의 중심이 엄마에게 있기 때문에 이러한 폴리네시아 원주민 사회를 모성중심사회(Matrifocal)라고도 부릅니다. 아빠는 자녀의 생물학적 아빠으로서의 역할만 할뿐입니다.
♥폴리네시아 원주민 사회의 개방적인 섹스(SEX) 문화♥:
열대주의에 입각한 개방적인 성(SEX)문화로 인해 폴리네시아 열대 원주민 사회에서 섹스(SEX)는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처럼 매우 권장되어졌습니다. 게다가 이는 남녀가 알몸으로 생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폴리네시아의 원주민 환경 속에서 서로의 몸에 대한 성적(SEX)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폴리네시아 원주민 사회의 젊은 남녀는 결혼 전에 여러 수많은 섹스 파트너들과 자유롭게 섹스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쳐야했습니다. 즉,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 사회나 폴리네시아의 원주민 사회에서는 섹스는 무조건 해야하는 의무였습니다. 이는 성적(SEX) 탐색을 필수적인 성장 과정으로 권장하는 폴리네시아의 원주민 문화에서 비롯됩니다. 혼전 섹스와 혼전 임신 역시 폴리네시아의 원주민 사회에서 가장 바라는 이상적인 결혼의 방식이었습니다.
게다가 부부간의 성행위(섹스 리스)가 잘 돼지 않을 경우, 자유롭게 헤어지고 다른 여자나 남자를 아내나 남편으로 맞이할 수 있었으며 "불륜"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이미 결혼해서 남편이 있는 1명의 여자가 수많은 남자들과 결혼하지 않은 채로 섹스하는 것이 가능했던 사회였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폴리네시아의 원주민 사회의 섹스와 결혼은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 사회와 99% 일치합니다.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섹스 문화를 가진 것과 남반구라서 가장 습하고 무더운 열대 처녀림이라는 위치와 그 탓에 남녀가 항시 알몸으로 생활하는 구석기인 문화라는 공통점 때문입니다.
오세아니아의 원주민 모계 사회에서 남녀의 결혼은 어떤 남자가 여자의 집안에 새로운 구성원으로 들어와 자손 번식, 공동체의 생산과 번성에 기여하게 되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가 가장 컸습니다.
♥폴리네시아 원주민 사회의 성적으로 개방적인 결혼식♥:
이렇기에 오세아니아의 원주민 사회에서 결혼식은 복잡한 의례보다는 춤과 노래, 맛있는 음식이 함께하는 잔치 형식으로도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오세아니아의 원주민 사회나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는 결혼식에서 남녀들이 대놓고 난교를 하며 모르는 남녀끼리 섹스를 하는 종교의식을 행하는 경우들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인게 하와이 원주민 열대 사회의 "레이(Lei)" 성(SEX) 교환처럼 서로의 사랑과 섹스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종교 의식이 중요했습니다.
이런 폴리네시아 원주민 사회의 결혼식의 절차나 방식 역시 여자 측의 전통에 따라 진행됐습니다.
3. 북미의 전통적인 결혼 문화♣
♣지방♣: 미국, 캐나다
♣결혼의 형태♣: "청교도(Puritan)"를 포함한 유럽 이민자들의 종교적 전통과 개척 정신이 결합하여 종교적 보수주의와 개인주의의 공존했습니다.
영국인들이 아메리카에 들어온 초기에는 청교도적이고 기독교적인 도덕 관념이 결혼과 성(Sex)에 대한 태도를 지배했기에 결혼의 신성함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근대 시기인 20세기 이후 개인주의와 세속주의의 발달로 인해 결혼의 의미는 종교적 의무에서 "개인의 선택"과 "사랑의 결실"로 변화했습니다. 그러면서 동거, 늦은 결혼, 높은 이혼율 등이 일반화되었으며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등 가족 형태의 다양성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가부장제는 법적, 사회적으로 해체되고 남녀간의 평등한 결혼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전통적인 결혼 문화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특정 원주민 문화보다는 유럽.. 특히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가져온 기독교(주로 개신교)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사랑을 중시하면서도 핵가족 중심의 가부장적 요소가 결합된 복합적인 형태였습니다.
♣결혼 문화♣
개신교적 가치관과 개인의 선택 북미의 주류 문화는 청교도를 비롯한 개신교 이민자들에 의해 형성되었는데 개신교는 가톨릭과 달리 결혼을 성사(Sacrament)로 보지는 않지만 신 앞에서 맺는 신성한 언약으로 간주합니다. 특히 개인의 신앙과 자유의지를 좋아하는 개신교의 영향으로 북미에서는 조선이나 유럽의 정략결혼 문화와 달리 "개인의 사랑"에 기반한 자유로운 배우자 선택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하고 여자가 이를 수락하면 약혼이 성립되며 이후 결혼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였으며 이런 미국풍의 결혼 문화와 결혼식은 21세기 현대 시대의 보편적인 결혼 문화, 결혼식으로 정착되기 시작합니다.
♣가정의 분담♣
미개척지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의 삶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협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남자는 농사를 짓고 여자는 음식을 만들며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습니다. 이러한 농사 환경은 실용적인 결혼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는데 결혼은 낭만적인 결합인 동시에 험난한 농사 환경을 함께 헤쳐나갈 동반자를 얻는 과정이었지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가부장적인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습니다.
방금 얘기했듯이 남자는 주로 농사의 일을 했고, 여자는 임신과 출산과 아기 양육, 요리같은 가사 노동, 그리고 농사 일의 일부를 도우며 가정을 지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런 역할 분담은 20세기 중반까지도 "남자는 생계 부양자, 여자는 가정주부"라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족 모델로 이어졌습니다.
♣가족 형태♣
북미(미국, 캐나다)의 전통적인 가족 형태는 부부(엄마, 아빠)와 미혼 자녀(딸들, 딸과 아들, 아들들)로 구성된 핵가족이었습니다. 결혼한 자녀는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자기들만의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성(Sex)에 대한 관점은 기독교적 도덕주의의 영향을 받아 결혼은 "자녀를 생산하는 번식 행위"의 덕목으로만 여겨졌으며 섹스(Sex)는 부부 관계 속에서만 허용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특히 1950년대는 교외 중산층의 안정된 핵가족이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되면서 도덕적인 성(Sex) 윤리가 사회 전반에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영국의 결혼식 문화♣
북미의 전통 결혼식은 특히 유럽에서도 영국을 많이 따라했습니다. 결혼식은 주로 신랑, 신부가 다니는 교회에서 목사의 주례로 진행되는데, 신부의 아빠가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여 신랑에게 인계하는 것은 딸에 대한 보호의 책임을 사위에게 넘겨준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결혼식과 거의 비슷합니다.
♣들러리 문화♣
들러리 문화 역시 미국의 결혼 문화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데.. 신부와 신랑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각각 "신부 들러리(Bridesmaid)"와 "신랑 들러리(Groomsmen)"가 되어 결혼 준비 과정부터 결혼식 당일까지 이들을 돕는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피로연♣
이렇게 아름다운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피로연(Reception)이 이어졌습니다. 하객들은 식사와 함께 춤과 파티를 즐기며 신혼부부를 축복했는데 주로 신랑과 신부의 첫 키스나 댄스, 신부와 아빠의 댄스, 신랑과 엄마의 댄스 등이 주요 순서로 포함됐습니다.
♣결혼식 비용♣
전통적으로 미국의 결혼식 비용의 대부분은 신부 측에서 부담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양가가 분담하거나 부부가 함께 마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서유럽과 남유럽의 전통적인 결혼 문화♣
♣지역♣: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웨덴, 독일, 벨기에 등
♣결혼의 형태♣: 서유럽과 남유럽은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영향과 로마법의 유산, 그리고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을 거치며 결혼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기독교적 전통과 세속화♣:
결혼은 종교적 신성함을 가지며, 과거에는 조선시대처럼 이혼이 극도로 어렵거나 불가능했습니다. 서유럽이나 남유럽에서 성(Sex)은 결혼 제도 내에서만 허용되며 전통적으로는 도덕을 중요시하는 성규범이 있었습니다.
♣전통 결혼문화♣:
서유럽과 남유럽의 전통 결혼 문화는 고대 로마법의 유산, 가톨릭 교회의 영향, 그리고 봉건제도의 사회 구조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결혼은 신성한 "성사(Sacrament)"로 간주되었으며 재산 상속과 집안의 합궁이라는 현실적인 목적이 작용했습니다.
근세 이후 서유럽과 남유럽 사회는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교회는 결혼을 남녀가 하느님 앞에서 맺는 신성하고 해소될 수 없는 "혼인성사"로 규정했으며 이는 결혼이 단순한 개인 간의 계약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결혼과는 달리, 신의 축복을 받는 거룩한 결합임을 의미했습니다. 혼인성사는 사제가 주례하며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동의를 확인하고 반지를 교환하는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명나라나 조선시대처럼 이혼을 원칙적으로 금지했기 때문에, 결혼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지속되는 평생의 약속이었습니다.
♣남유럽(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 사회의 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와 개방성♣:
가톨릭 교회는 부부 관계 내에서의 성(Sex)을 자녀 출산이라는 신성한 목적을 위한 행위로 인정했지만 그 외의 모든 성적 쾌락은 죄악으로 간주하며 도덕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과는 별개로 사회 일각에서는 다른 형태의 기형적인 성(Sex)문화들이 존재했습니다.
♣궁중풍의 사랑(Courtly Love)♣:
유럽의 기사 문학에서 나타나는 "궁중풍의 사랑"은 이미 결혼한 귀부인과 기사 사이의 정신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을 이상화했습니다. 이는 결혼이 사랑보다는 현실적인 계약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으며 사랑과 결혼이 분리될 수 있다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남유럽 민중의 성적 개방성♣:
일반 남유럽 민중의 삶에서는 교회의 교리가 항상 지켜지지는 않았습니다. 농경 사회의 특성상 노동력 확보가 중요했고, 계절에 따른 축제나 공동체 행사에서는 남녀가 비교적 자유롭게 어울리며 성(Sex)에 대해 덜 제약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남유럽(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이나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일부 지역에서는 결혼 전 동거나 약혼 기간 중의 성행위(Sex)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묵인되는 관습이 존재했습니다.
♣유럽인들의 억압된 성적 판타지의 해소는 라틴 아메리카로♣:
이렇듯 유럽은 고려시대와 굉장히 비슷했습니다. 유럽도 그렇고 고려도 표면상으로는 억압적인 성 규범 하에 있었으나, 민중은 그런 억압적인 성 규범 하에서 해소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고려의 경우는 그걸 남(타인)몰래 들키지 않게 하는 것이었고, 유럽의 경우는 그걸 라틴 아메리카에서 대놓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유럽 남성들에게 "남아메리카"는 자기들의 억눌린 성욕을 투사할 수 있는 "유일한 환상의 공간"이었습니다.
대항해시대 이후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남아메리카로 가게된 유럽인들은 자기들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의 라틴 아메리카의 잉카 문명, 아즈텍 문명, 특히 브라질과 페루의 아마존 원주민 사회의 개방적인 성문화와 알몸으로 생활하는 여자들을 보고 지금까지 억압된 성욕이 폭발하게 됐습니다. 이는 유럽에서 출판된 수많은 남아메리카 탐험기, 삽화(떼오도르 드 브리의 판화)에서 에로틱하게 묘사된 "음탕한 남아메리카 원주민 여자"라는 판화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그리고 수많은 유럽인들이 황금, 그리고 "여자"를 탐닉하고자 라틴 아메리카의 곳곳에 탐험하거나 이주하여 수많은 잉카인, 아즈텍인,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알몸 원주민 여자들을 납치, 감금, 강간, 그리고 강제로 임신과 출산을 시키거나 성매매, 유흥업소에 팔거나, 번식 성노예로 만드는 등으로 수많은 브라질과 페루 아마존의 알몸 원주민 여자들을 비롯해 잉카인, 아즈텍인, 라틴 아메리카의 알몸 원주민 여자들을 성적 착취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탄생해버린 인종이 바로 "Mestizo(메쓰티쏘)"입니다. 이 메쓰티쏘는 본래라면 있지도 않았고 있어서도 안 돼는 혼혈 인종으로, 그것도 자연럽게 현지인들과 섞이며 혼혈인들이 태어난 것이 아닌.. 오로지 대항해시대부터 계속된 스페인인들과 포르투갈인들의 성욕 해소용으로 납치, 강간, 임신, 출산 등의 성적 착취를 반복해서 받은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몸에 남겨진 식민적인 성적 착취 유산입니다.
심지어 브라질과 페루의 저 고립되고 깊숙이 숨어있는 아마존 원주민들 조차도 스페인인이나 포르투갈인의 이름을 쓰거나.. 푸른 눈의 혼혈인들이 태어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인들은 워낙 수많은 스페인인들과 포르투갈인들에게 성적 착취를 받으며 DNA에 백인, 흑인, 남아메리카 원주민 여자들의 DNA가 들어있기 때문에 남아메리카 원주민 여자들이 결혼해도 흑인이나 백인 자녀가 태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이유는 굳이 흑인이나 백인과 결혼하지 않아도 이미 DNA에 그런 유전자들이 숨어있기 때문에 간혹 그런 자녀들이 탄생하는 것이지요..
스페인인, 포르투갈인들의 성적 착취로 거의 혼혈 인종들만 탄생하는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
♣서유럽과 남유럽의 전통 혼례 풍습들♣:
영국의 경우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시작된 흰색 웨딩드레스의 전통이 유명합니다. 신부는 "오래된 것, 새로운 것, 빌린 것, 파란 것" 4가지를 지니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각각 전통의 물려받음, 새로운 미래, 지인의 행운, 그리고 정절을 상징합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전통적으로 결혼식은 종교 의식과 별개로 시청이나 구청에서 시장(Mayor)의 주례에 의해 법적인 혼인 신고를 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결혼을 법적 계약으로 중시하는 문화를 보여줍니다.
이탈리아과 스페인 같은 무더운 기후의 남유럽의 경우는 가톨릭 풍습이 남아있어서 결혼식은 주로 성당에서 화려하고 성대하게 치러지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 신부에게 쌀이나 사탕을 뿌리며 다산과 행복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유럽 농민의 결혼 풍습♣
농민들은 상류층들과 달리 보다 실용적인 이유로 결혼했습니다. 서부 개척 시대의 미국인들처럼 농사일과 가정을 함께 꾸려갈 동반자를 찾는 것이 중요했으며 결혼 상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조선시대의 일반인들처럼 부모와 공동체의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현대의 개방적 문화(서유럽 중심)♣:
그러다가 서유럽(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을 중심으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가치가 확산되면서 동거, 혼외 성행위와 출산, 이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매우 개방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거기다 68운동과 히피 문화의 확산을 통해 성에 대한 태도 역시 개인의 자유로 발달하게 됐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성문화를 가진 지역 가운데 바로 남유럽과 서유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5.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전통적인 결혼 문화♣
♣지역♣: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캄보디아 등등
♣결혼의 형태♣: 동남아시아는 습하고 무더운 기후 탓에 농사가 매우 잘되며, 이슬람, 가톨릭, 불교, 힌두교(과거 일부 동남아 왕국 한정)의 영향들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종교들이 모여있는 종교의 성지이며, 그리고 전통적인 모계 중심 사회의 유산이 혼합되어 독특한 결혼 문화를 형성합니다.
♣부계 중심의 동남아 지역과 모계 중심의 동남아 지역들♣
동남아는 워낙 각 지역마다 특색이 달라서 같은 동남아라곤 하지만 싸잡아서 얘기가기가 애매합니다. 특히 동남아는 부계 중심의 지역과 모계 중심의 지역이 확연하게 갈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부계 중심의 지역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남아 국가들(대륙부)이며 모계 중심의 동남아 지역들은 해양부 동남아시아 지역들(필리핀)이 있습니다.
특히 대륙부 동남아시아 지역인 인도차이나 반도의 경우는 오랫동안 고대 중국의 침략과 식민지(한무제 이후 고대 중국군의 베트남 1000년 식민 지배)로 인해 동남아에서 가장 부계제 가부장제가 강한 베트남이나 세계 패권국 대원제국(원나라)이 미얀마(버강 왕국)를 식민 통치하면서 부계제 가부장제 이식, 그리고 인도의 힌두교 문화를 받은 캄보디아나 라오스의 부계 사회적인 모습 등이 대표적인 동남아의 부계 중심 문화의 역사입니다.
물론 동남아에서 100% 부계 사회가 된 지역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정도뿐이고, 캄보디아는 100% 부계 사회라고 단정하기 힘든 아직 양계(Bilateral)스러운 분위기가 남아있는 건 사실입니다.
♣모계 중심 사회의 유산♣
반면에 필리핀의 경우는 동남아 지역들 가운데 가장 "모계적인 문화"가 심한 100% 모계 중심 사회인데 그 이유는, 필리핀은 부계적인 가부장제가 가장 엄격한 고대 중국의 식민지가 된 적도 없고 인도의 영향을 받은 적도 없기 때문에 독자적인 모계 사회가 계속 유지됐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나마 16세기부터 필리핀을 장악한 스페인 왕국조차도 필리핀을 그저 항구로만 이용하거나 했지 필리핀에 대해 남아메리카처럼 본격적으로 지배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점은 필리핀이나 남아메리카가 가톨릭이 스며들긴 했지만 자기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개방적인 성문화와 모계적인 여성 중심 문화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왔다는 점입니다. 이는 아무리 16세기까지 벌거 벗은 알몸으로 생활하던 구석기인들인 잉카 문명이나 아즈텍 문명,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들 같은 미개하게 여겨졌던 사회라도 결국 자기들의 것은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있다고 봐야합니다.
여하튼 많은 동남아시아 사회(특히 필리핀)에서는 아직도 여자들이 가정의 재산 관리와 가계 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고 현재도 그러합니다. 이는 모계 사회나 모성 중심 사회(Matrifocal)의 특성이 남아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결혼 후 여자의 집안 근처에 거주하는 모처 거주(Matrilocal) 경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필리핀에서는 지참금 대신 "빠말랏이(Pamalay)"라는 습성이 있는데 이는 신랑 측이 신부 측 가정에게 재정적 지원이나 선물을 제공하는 관습입니다. 깜보디아에서도 결혼 시 신랑이 신부에게 "똔 땀라이(Don Damlai)"라는 지참금을 지불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많은 전통 사회, 특히 농사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에서는 여자의 노동력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여자들은 농사일뿐만 아니라 수상 시장 활동과 가내 수공업 등을 통해 가정 경제의 실질적인 주도권을 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자립성은 여자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해양부 동남아의 모계 원주민 "미낭까바우"♣
해양부 동남아 지역인 인도네시아의 모계(Matrilineal) 원주민 사회인 "미낭까바우"처럼 재산과 가계가 엄마가 딸에게 물려주는 모계 사회도 필리핀에도 많이 존재합니다. 이는 여자가 결혼 후에도 자기의 엄마와 긴밀한 유대를 유지하며 남편의 가정에 일방적으로 편입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동남아의 처가살이(Matrilocal) 습성♣
동남아의 깜보디아 등 일부 지방에서는 남자가 결혼 후 일정 기간 또는 평생 아내의 집이나 그 근처에서 사는 처가살이 습성이 있었습니다. 이는 여자의 노동력을 중시하고, 여자가 자기의 친가 네트워크 속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장치였습니다.
♣신랑의 봉사 및 지참금♣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에서는 신랑이 신부 측에 일정 금액의 지참금을 주거나, 결혼 전 신부의 집안일을 도우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신부를 데려옴으로써 발생하는 신부 집안의 노동력 손실을 보상하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결혼식 절차♣
결혼식은 여러 날에 걸쳐 진행되며,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음식을 만들고 나누고 춤과 노래를 즐기는 축제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미얀마에서는 결혼식 날 새벽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습니다.
여자의 높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바탕으로 한 캄보디아에서는 신랑, 신부의 머리카락을 깎는 시늉을 하며 과거의 나쁜 기억을 잘라내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의 의식을 했으며 모계적 특성과 성에 대한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를 특성으로 했습니다.
이는 가문의 혈통 계승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여성을 억압했던 금욕주의가 강한 동북아시아나 중앙아시아, 중동과 남아시아, 유럽의 엄격한 가부장제 문화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동남아의 성문화와 결혼♣
이들 동남아 지역의 전통적인 성문화는, 세계에서 가장 금욕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엄격한 동북아시아의 유교 문화권이나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와 중동, 남아시아의 티베트 불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문화권과 그리고 유럽의 기독교 문화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개인의 감정과 연애를 결혼의 중요한 요소로 인정하는 동남아의 경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동남아도 가톨릭, 불교, 이슬람교의 영향이 강한데 어째서 그럴까..? 이는 동남아는 종교가 있긴 하지만 종교가 민간의 원주민 문화를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필리핀인데 겉으로는 가톨릭을 믿지만 싱글맘들이 많을 정도로 10대때부터 성행위를 하는 인구들이 많으며 트랜스젠더, 레즈비언이 사회적으로 매우 인기있고 인정받는 등 가톨릭 교리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성문화나 결혼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동남아의 혼전 성행위 문화♣
특히 필리핀에서는 젊은 남녀가 결혼 전에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성적 접촉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잉카 문명이나 아즈텍 문명과 비슷했습니다. 잉카 문명에서도 젊은 남녀들이 결혼 전에 먼저 혼외 섹스를 통해 서로의 몸을 알아가는 "Servinacuy(쎄르비나꾸이)"라는 성(SEX)문화가 있었습니다.
여하튼 이는 성(SEX)을 죄악시하기보다는 생명의 탄생과 연결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남아에서 가장 개방적인 성문화를 가진 필리핀이라 할지라도 라틴 아메리카나 폴리네시아(오세아니아)보다는 보수적이긴 했지만요.
6. 북유럽 국가들의 전통적인 혼례 풍습☆
☆지역☆: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혼례의 형태☆: 북유럽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루터교(프로테스탄트)의 영향을 받았으나, 현대에는 세속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 가치가 지배하며, 가족 및 혼인 문화가 크게 변화했습니다.
☆척박한 바이킹족 시대☆:
북유럽(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의 전통 혼인 풍습은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형성된 실용주의적 가치관과 바이킹 시대의 유산, 그리고 이후 기독교(특히 루터교)의 영향을 받아 독특하게 발전했습니다.
실용적이고 계약적인 기독교풍의 혼인 문화가 전파되기 이전, 바이킹 시대(약 8~11세기)의 혼례는 낭만적인 사랑보다는 두 가문의 동맹을 맺고 재산을 통합하며 사회적 안정을 꾀하는 고대 신라시대 같은 실용적인 계약에 가까웠습니다. 혼인은 신랑과 신부 가족 간의 협상을 통해 결정되었으며, 신랑 측은 신부 측에 "신부 값(bride-price)"을, 신부 측은 신랑 측에 "지참금(dowry)"을 전달했습니다. 이는 혼인이 두 집안의 경제적 결합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관습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바이킹 사회의 여성이 당시 다른 유럽 지역의 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법적 지위를 누렸다는 것입니다. 여성은 재산을 소유하고 상속받을 수 있었으며, 남편이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폭력을 행사할 경우 이혼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장기간 싸움터로 떠나면 아내가 농사와 가사를 책임지는 등, 여성은 가정 경제의 중요한 주체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척박한 환경에서 남녀 모두의 노동력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형성된 문화로 볼 수 있습니다.
루터교의 영향과 가족 중심주의 11세기 이후 기독교가 전파되고, 16세기 종교개혁을 거치며 북유럽 대부분은 루터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루터교는 기독교나 동방정교회처럼 혼인을 "성사"로 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신성한 제도로 간주했는데 혼인은 교회의 축복 아래 이루어졌으며, 이혼은 원칙적으로 금지되거나 매우 엄격하게 제한되었습니다. 루터교는 "가정"을 신앙 교육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로 강조했으며 이는 가부장적인 가정 구조를 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남편은 가정의 영적, 세속적 가장으로서 권위를 가졌고 아내는 남편을 돕고 자녀를 양육하며 가정을 돌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평등주의와 세속주의☆:
전통 혼례의 모습과 상징 북유럽의 전통 혼례는 지역 공동체의 축제 성격이 강했습니다. 결혼식은 보통 금요일에 시작하여 주말 내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금요일은 북유럽 신화에서 사랑과 미의 여신인 "프레이야(Freyja)"의 날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신부의 왕관☆:
신부는 종종 금속이나 나뭇잎으로 만든 화려한 왕관을 썼는데 이는 신부의 순결과 처녀성을 상징했으며, 결혼식이 끝나면 미래의 딸에게 물려주기 위해 보관했습니다.
☆반지 교환☆:
신랑과 신부는 서로에게 반지를 교환했는데, 이는 영원한 사랑과 충실을 맹세하는 의미였습니다.
☆축제와 음식☆:
결혼식 피로연은 풍성한 음식과 맥주, 그리고 음악과 춤으로 가득했습니다. 하객들은 신랑과 신부에게 행운과 다산을 기원하는 덕담을 건넸습니다.
이처럼 북유럽의 전통 혼인 문화는 바이킹 시대의 실용적인 계약 관계와 여성의 비교적 높은 지위라는 유산 위에 기독교의 가부장적 가족관이 더해져 복잡하게 형성되었습니다. 결혼은 가문 간의 결합이자 공동체의 축제였으며 척박한 환경을 함께 생존하기 위한 중요한 사회적 제도였습니다.
☆성 평등의 강조☆:
북유럽은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성 평등을 달성한 지역으로, 결혼과 가족 관계에 있어서도 남녀 간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강조합니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구조는 현대 사회에서 거의 해체되었습니다.
☆자유로운 동거 문화☆:
결혼을 하지 않고 파트너십(동거) 형태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며, 법적으로도 결혼과 동등한 수준의 권리가 보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방적 성 태도☆:
성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며, 성에 대한 태도는 매우 개방적이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전통적인 기독교의 금욕주의적 성규범은 사회 전반에서 강한 영향력을 잃었습니다.
7. 동유럽과 중부유럽 국가들의 전통적인 동방정교회적 혼례 풍습❄️
❄️국가들❄️: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아르메니아, 조지아 등등
❄️전통 혼례 풍습❄️:동유럽과 중부유럽은 슬라브족의 전통 문화와 몽골족이나 투르크족이나 기타 민족의 전통과 세계 최강 몽골제국의 식민 지배적 유산과 동방정교회의 종교적 문화가 결합하여 복잡한 혼례 풍습을 형성했습니다.
몽골제국의 식민지에서 해방된지 얼마 안된 시대때의 초기 러시아 제국의 결혼식
❄️동방정교회식 혼례의 성사(聖事)❄️:
동방정교회에서 혼례는 신성한 성사(聖事)로 여겨지며, 교회의 축복과 서약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는 혼례를 단순한 계약이 아닌 영적인 결합으로 간주하며, 이혼에 대해 비교적 엄격한 금지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동방정교회에서 혼인은 타종교와 마찬가지로 일곱 가지 성사(聖事) 중 하나로, '혼인성사(婚姻聖事)'라 불립니다. 이는 단순히 두 사람의 계약을 넘어, 하느님 앞에서 맺어지는 신성하고 불가분한 결합임을 의미합니다. 혼인성사는 사제가 집전하며, 매우 상징적이고 화려한 의식으로 진행됩니다. 가장 특징적인 의식은 신랑과 신부의 머리에 '영광의 관'을 씌워주는 것이다. 이는 두 사람이 자신들의 작은 왕국, 즉 가족을 다스릴 왕과 왕비가 됨을 상징하며, 동시에 순교의 관처럼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한 잔의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는 의식은 가나의 혼인잔치를 기념하며 기쁨과 슬픔, 모든 것을 함께 나눌 것을 서약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동방정교회의 특징적인 점은 동북아시아나 중앙아시아의 티베트 불교나 대승불교처럼 수도자 외의 성직자는 결혼이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사제가 서품 전에 결혼하는 것을 허용하지만, 사제가 아내를 잃었거나 이혼한 후 재혼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동방정교회 신자들의 결혼식 후 신랑 신부는 혼인서약을 했던 곳까지 달리기 경주를 하게 되는데, 먼저 도착한 사람이 새 가족 내에서 주도권을 갖는다는 전통이 있습니다.
❄️전통적 가부장제❄️:
역사적으로 이들 슬라브족 사회는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했으며, 남성이 가족의 정신적, 경제적 책임을 지는 역할을 했습니다. 여성은 주로 가정 내의 역할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동유럽 지역의 전통 혼인 문화는 동방정교회의 영향과 각 민족의 고유한 민속 신앙 및 관습이 결합된 형태를 보입니다. 이 지역 역시 역사적으로 농경 사회를 기반으로 한 가부장적 구조가 강했으며, 혼인은 개인의 사랑보다는 가족과 공동체의 안정을 위한 중요한 제도로 인식되었습니다.
가부장적 질서와 성에 대한 관점 동방정교회는 혼인의 첫 번째 목적을 자녀 출산과 양육에 두며, 부부간의 사랑과 상호扶助를 그 다음으로 여깁니다. 이는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을 중시했던 명나라, 송나라, 조선시대 같은 유교적인 문화에 가까운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치관과 맞닿아 있습니다. 유교 문화권처럼 성(性)은 오직 부부 관계 안에서만 허용되는 신성한 행위로 간주되며 혼전 순결은 남녀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되었습니다. 동방정교회는 원칙적으로 이혼을 허용하지 않지만, 간음이나 배우자의 장기 실종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교회의 허락을 받아 이혼 및 재혼이 가능합니다. 이는 인간의 나약함을 고려한 '자비'의 차원이지만 여전히 혼인의 신성함과 불가분성을 강조하는 기본 입장은 변하지 않습니다.
❄️금욕주의❄️:
동방정교 전통은 혼인 외 부부간의 행위를 죄악으로 간주하는 금욕주의적 성규범을 사회에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소련 시대의 세속화를 겪으며 현대에는 전통적인 종교적 금욕주의가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러시아 제국의 결혼식
❄️지역별 민속 혼인 풍습의 차이❄️
❄️러시아❄️:
전통적인 러시아의 전통 혼례 문화는 조선시대처럼 중매로 시작하여 여러 단계의 복잡한 의식을 거쳤습니다. 전통 혼례식은 교회에서의 혼인성사와 더불어, 며칠 동안 이어지는 피로연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피로연에서는 '고리코!(쓰다!)'라고 외쳐 신랑과 신부의 입맞춤을 유도하는 풍습도 있는데, 이는 쓴 술을 입맞춤의 단맛으로 달래라는 의미와 함께 귀신을 쫓는 주술적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러시아는 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역사적 배경과, 동방정교회라는 종교적 배경의 결합으로 인해 복합적인 전통 혼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헝가리❄️:
헝가리는 흉노족의 후손이라는 국호 답게, 유럽에서 유일한 '동양' 민족이며, 성씨가 앞으로 가고 이름이 뒤에 붙는 작명법이나 어족도 동북아시아인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이런 동북아시아계 유목민인 '마자르족'의 유목민 전통과 기독교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풍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 혼례식 피로연에서는 신부가 자정이 되면 전통적인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하객들과 춤을 추는 '신부의 춤'이 있습니다. 하객들은 신부와 춤을 추기 위해 돈을 내는데, 이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부부를 위한 축의금 역할을 합니다.
헝가리는 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역사적 배경과, 기독교라는 종교적 배경의 결합으로 인해 복합적인 전통 혼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 조지아❄️:
사실상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는 캅카스(아시아) 지역 국가이기 때문에 동양 국가입니다. 동양 국가인 이들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역사를 자랑하며, 전통 혼례식 문화에 종교적 색채가 매우 강합니다.
조지아에서는 전통 혼례식의 사회자 격인 '타마다'가 긴 건배乾杯사를 통해 신랑 신부와 가족, 조국을 축복하는 신비한 문화가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는 신랑 측이 신부의 집에 도착했을 때, 신부 측 가족들이 문을 막고 상징적인 '입장료'를 요구하는 유쾌한 실랑이를 벌이는 풍습이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도 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역사적 배경과, 기독교라는 종교적 배경의 결합으로 인해 복합적인 전통 혼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동유럽과 중부유럽의 전통 혼인 문화는 몽골제국의 식민 지배와 동방정교회라는 공통된 역사적, 종교적 기반 위에 각 민족의 고유한 역사가 더해져 형성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가족을 신성시하고, 남성 중심의 질서 속에서 성적 순결을 강조하며, 공동체의 축복을 통해 부부의 결합을 공고히 하려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8. 남아시아 국가들의 전통적인 혼례 풍습☆
☆지역☆: 인도, 파키스탄, 부탄, 네팔, 아프가니스탄, 스리랑카
☆전통 혼례 풍습☆: 남아시아는 기독교를 제외한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가 강하게 혼재되어 있으며, 특히 힌두교와 불교의 발원지로도 유명합니다. 각 종교와 지역 문화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혼인 문화를 보입니다.
또한, 남아시아도 몽골제국의 침략을 받았으며 몽골제국의 후계 국가인 티무르 제국의 식민지(무굴제국)이기도 하고(이슬람) 영국의 진출(기독교)로 인해 다민족, 다종교적 문화가 강합니다.
☆종교적 복잡성과 가부장적 압력☆
☆힌두교와 카스트 제도(인도, 네팔)☆:
인도, 네팔식 힌두교의 전통은 카스트 제도와 결합하여 동일 카스트 내 혼인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혼인은 중요한한 의례(산스카라)로 간주되었으며 다우리(지참금) 관습은 여성에 대한 경제적 압박과 가부장적 권력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해왔습니다.
인도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불교와 가장 긴밀한 상호작용을 했던 힌두교 사회의 결혼은 '카스트' 제도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 카스트 제도는 마치 중세 중국 송나라의 계급제처럼 사제(브라만), 무사(크샤트리아), 상인(바이샤), 노동자(수드라)의 4개 계급과 그 밖의 불가촉천민(달리트)으로 나뉘는 세습적 신분제도입니다. 비록 법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카스트는 여전히 인도인의 삶.. 특히 혼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전통적으로 혼인은 같은 카스트 내에서, 심지어는 같은 하위 카스트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철칙이었습니다. 다른 카스트 간의 혼인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으로 간주되어 금기시되었으며, 만약 이를 어길 경우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거나 심지어 '명예살인'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가부장제는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규정합니다. 불교와의 상호작용으로 발전한 힌두교 경전인 '마누법전'은 여성이 평생 아버지, 남편, 아들에게 의존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조선시대처럼 오로지 혼인은 가문의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낼 아들을 낳는 것만이 주된 목적이며, 딸을 낳는 것은 가문에 부담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다우리(지참금)'라고 불리는 신부 측 지참금 문화와 관련이 깊습니다.
본래 다우리는 여성이 상속받을 재산을 미리 주는 성격이었으나, 점차 신부 측이 신랑 측에 막대한 현금과 물품을 바치는 악습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과도한 다우리 요구는 여성과 그 가족에게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며 지참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부가 학대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힌두교에서 혼인은 신과 조상 앞에서 맺는 매우 중요한 서약으로도 여겨집니다. 전통 혼례식은 '사프타파디'라 불리는 신랑과 신부가 불 주위를 일곱 걸음 걷는 의식이 핵심입니다. 이는 일곱 생에 걸쳐 부부의 인연을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무당에 따라 '궁합'을 보고 혼례 날짜를 점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슬람과 명예 문화(파키스탄)☆:
세계 최강이었던 몽골제국을 계승한 티무르 제국이 인도를 정복하여 식민화하면서 건국된 무굴제국에 의해 인도에 침투한 이슬람교에 의한 유산인 파키스탄은 이슬람 율법과 부족, 씨족 문화가 결합하여 가부장적 명예 문화가 매우 강하며, 여성의 정절과 순결을 엄격하게 통제합니다.
이러한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의 혼인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진행되는데 '니카'라는 전통 혼인 서약식을 통해 법적, 종교적으로 부부 관계가 성립됩니다. 전통 혼례식은 '멘디(헤나 파티)', '바라트(신랑 행진)', '왈리마(피로연)' 등 여러 날에 걸쳐 화려한 축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키스탄의 경우 무슬림 혼례식이 더 짧고 간결한 반면, 남아시아 무슬림 혼례식은 평균적으로 3일 정도 지속됩니다.
☆불교와 상대적 유연성(부탄, 네팔, 스리랑카)☆:
남아시아의 불교 문화권 국가인 부탄, 네팔, 스리랑카는 힌두교, 이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계급적 차별이 약간 덜할 뿐이고, 여성에게 보다 유연한 사회적 위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엄격한 가부장적 구조가 일반적입니다.
불교 문화권의 혼인은 힌두교나 이슬람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종교적 의례가 간소한 편입니다. 혼인은 개인과 가족의 일로 여겨지며, 지역 공동체의 축복 속에서 진행됩니다.불교권 국가인 네팔의 경우 힌두교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아 점성술이나 복잡한 의례가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처럼 남아시아의 혼인 문화는 종교와 사회 계층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강력한 가부장제 아래 여성이 억압받고 성(性)이 출산과 가문 유지의 수단으로 통제되는 전통이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금욕주의적 성 규범☆:
대부분의 남아시아 국가에서 혼인은 자식 생산과 가족 유대를 위한 사회적 제도로 여겨집니다. 혼전 정사는 대부분의 전통 문화에서 금기시되며, 특히 힌두교와 불교,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는 금욕주의적인 태도가 강합니다.
남아시아 국가의 혼인 문화는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와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같은 복잡한 사회 계층 구조가 얽혀 매우 다층적인 양상을 보입니다. 이 남아시아권 역시 동북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서아시아처럼 전반적으로 매우 강력한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하며, 혼인은 가문의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합니다.
9. 중동 아시아 국가들의 전통적인 이슬람교적 혼례 풍습☆
☆국가☆: 이라크, 요르단 등등
☆전통 혼례 풍습☆: 이 중동 지역은 아랍 민족과 이슬람 문화의 본류로서, 이슬람 종교법이 사회 생활 전반과 혼인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중동도 세계 최강의 몽골제국의 정복지로 유명하며,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로도 유명합니다. 그렇기에 중동 역시 복합적인 민족, 문화가 상존합니다.
☆샤리아와 결혼 제도☆:
이슬람에서 혼인은 '니카'라는 합법적인 계약의 성격을 가집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상호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며, 마흐르라는 신랑이 신부에게 지불하는 지참금, 선물이 필수적입니다.
☆강한 가부장제와 명예 문화☆:
중동은 몽골의 중앙아시아와 중국, 한국, 일본의 동북아시아와 튀르키예나 이란의 서아시아와 그리고 인도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으로 대표되는 남아시아와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남성우월주의적인 가부장제와 명예 문화가 강한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이는 시아파, 수니파를 막론하고 가부장제가 사회의 근간을 이루며, 가족의 명예가 매우 중요합니다. 게다가 그 옛날 명나라나 송나라, 조선시대의 유교 성리학처럼 여성의 성(性)은 이 가족 명예의 핵심으로 간주되어 엄격히 통제됩니다.
☆금욕주의와 성적 분리☆:
당연히 유교 성리학처럼 이슬람 율법에 따라 혼전, 혼외 성관계는 엄격히 금지됩니다.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의 남녀 간 접촉과 성적 노출을 제한하는 금욕주의적 문화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라크와 요르단을 포함한 중동 아시아의 아랍 국가들은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사회 및 개인 생활의 근간으로 삼으며, 이는 혼인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 지역의 혼인 문화는 강력한 가부장제, 부족주의, 그리고 종교적 규범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중동은 몽골제국의 군사적,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아 가부장제와 부족주의의 결합 중동 아랍 사회의 가부장제는 유목민 시절부터 내려온 부족주의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부족과 가문의 생존 및 번영을 위한 전략적 결정이었습니다. 배우자 선택은 가문의 명예, 재산,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하여 부모나 부족의 어른들이 주도하는 중매혼이 절대적입니다. 특히 고대 신라시대처럼 중동 아랍은 사촌 간의 결혼(근친혼)이 성행했는데, 이는 가문의 재산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부족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목적이 컸습니다.
샤리아(이슬람 율법)와 혼인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는 혼인, 이혼, 상속 등 가족법의 근간을 이룹니다. 샤리아에 따르면 결혼은 반드시 문서화된 계약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이 계약에는 신랑이 신부에게 지불할 '마흐르'가 명시됩니다. 무슬림 남성은 최대 4명의 아내를 둘 수 있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지만, 모든 아내를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엄격한 조건이 따릅니다. 반면, 무슬림 여성은 오직 무슬림 남성과만 결혼할 수 있으며, 남편의 허락 없이는 이혼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법적, 제도적 장치는 남성 중심의 부계 사회적 권력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합니다.
유교를 위시한 명나라나 송나라, 조선시대처럼 성을 죄악시하고 억압하는 문화 중동 아랍 문화에서 '순결'은 여성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가문의 명예를 상징합니다. 혼전 성관계는 상상할 수 없는 금기이며, 이를 어길 경우 '명예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여성의 성은 철저히 통제와 억압의 대상이며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함께 있는 것조차 엄격히 제한되며, 조선시대의 장옷처럼 여성의 노출을 금기시하는 보수적인 복장(히잡) 규율이 사회 전반을 지배합니다.
요르단은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비교적 개방적이고 세속적인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치관과 성에 대한 보수적 시각은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라크의 경우, 최근 일부 보수적인 종파의 해석에 따라 여성의 결혼 가능 연령을 9세까지 낮추는 법안이 통과되는 등, 여성 인권이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중동 아시아의 혼인 문화는 몽골제국의 식민 지배의 유산, 오스만 투르크, 종교, 부족주의, 가부장제가 결합하여 여성을 억압하고 성을 금기시하는 강력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0. 서아시아 국가들의 전통적인 혼례 풍습☆
☆국가☆: 이란,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전통 혼례 문화☆: 이 서아시아 국가들도 세계 최강의 몽골제국의 식민지, 몽골과 튀르크의 유목 전통의 잔재, 이슬람교의 율법, 그리고 고대 페르시아 문화 등이 혼재되어 복잡한 혼인 문화를 형성합니다.
☆이슬람교와 가부장적 구조☆:
이슬람 율법(샤리아)은 혼인과 이혼, 가족 관계에 깊숙이 관여합니다. 남성에게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책임을 부여하며, 이는 남성 우월주의적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주요 축이 됩니다.
이슬람에서 혼인은 사내로서의 의무이자 사회적 계약으로 간주됩니다. 혼인은 당사자 간의 합의뿐만 아니라, 여성 측 보호자(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동의가 필수적입니다. 혼인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마흐르'라는 지참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돼는데 이는 동남아나 중동의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존재합니다. 마흐르는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재산으로, 이혼 시 여성의 생계를 보장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합니다. 이 모든 조건은 혼인 계약서에 명시되며, 이는 법적 효력을 지닙니다.
이슬람 문화권은 혼전 순결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혼외 성관계는 큰 죄악으로 간주됩니다. 여성의 '명예'는 가문 전체의 명예와 직결되기 때문에, 여성의 행동과 복장은 엄격한 통제를 받는데 이란과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조선시대처럼 여성이 외출 시 히잡을 착용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으며,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자유롭게 어울리는 것이 제한됩니다.
동양의 이슬람 국가들 중 가장 세속화된 국가인 튀르키예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이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옛 풍습과 가치관이 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조선시대까지는 아니지만 고려시대급의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렇기에 이들 이슬람 국가들은 유교권 국가들처럼 성은 부부 관계 내에서만 허용되는 신성한 행위로 여겨지며, 이를 벗어나는 모든 행위는 금기시됐습니다.
☆성적 통제와 히잡, 차도르☆: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여성의 정숙함을 강조하며, 혼전 성관계 금지 등 금욕주의적 성규범이 강하게 적용됩니다. 조선시대의 장옷과 똑같은 기능을 하는 히잡이나 차도르와 같은 복장은 이러한 여성 외부에 대한 성적 통제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몽골 튀르크 문화의 영향☆:
서아시아의 또 하나의 특징이 바로 몽골과 튀르크의 영향이 강하다는 점인데 중세 시대의 세계 최강 몽골제국의 식민지였던 서아시아라는 배경과 투르크족의 정체성이 있는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으로 인해, 이들의 몽골 투르크족 유목 문화적 배경이 이슬람과 결합하여 가족 명예를 중시하는 강렬한 가부장제 형태로 나타납니다.
방금 말했다시피 위의 역사적 이유 때문에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은 몽골 튀르크 민족의 유산을 공유하고 있어, 이슬람 율법 외에도 고유한 몽골과 튀르크적인 전통 풍습이 혼인 문화에 녹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혼례식 전날 신부의 집에서 열리는 '헤나의 밤'은 여성들만의 연회로, 신부의 손에 헤나를 칠하며 혼인을 축하하고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전통입니다.
전통 혼례식 자체는 여러 날에 걸쳐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음식과 춤, 음악이 어우러진 축제의 성격이 강합니다. 이처럼 서아시아 지역의 혼인 문화는 몽골의 혼인 문화와 굉장히 흡사한데 이는 몽골제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며,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틀 안에서 각 민족의 고유한 전통이 결합하여 다채로운 모습도 보여줍니다. 게다가 그 근간에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와 성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11. 북동아시아 국가들의 전통적인 유교적 혼례 문화☆
☆국가☆: 중국, 한국, 일본, 시베리아(지리적으로 보면 시베리아도 동북아시아로 포함되는 경우도 많음)
☆전통 혼례 문화☆: 동북아시아(북동아시아)는 중동,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성을 금기시하며 동시에 남성우월주의가 강한 지역입니다. 동북아시아의 혼인 문화는 오랜 기간 동안 유교(儒敎)의 강력한 영향 아래 형성되었으며, 이는 이슬람교 못지 않게 세계적으로 엄격한 남성우월주의적인 가부장제를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참고로 이 북동아시아도 오늘날이 아니라 옛날 고대, 중세, 근세 시대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남성 우월주의적 가부장제☆:
유교 성리학의 삼강오륜과 종법 제도는 가문과 부계 계승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겼습니다. 남성(아버지과 남편)이 가족의 리더이자 권위를 가졌으며, 여성은 남편에게 절대복종하는 '칠거지악'과 같은 엄격한 규범에 갇혔습니다.
☆성을 죄악시하는 경향☆:
유교 성리학은 수신제가(修身齊家)를 강조하며, 이는 개인의 성적 절제와 철저하고 엄격한 윤리성을 중시했습니다. 성(性)은 오로지 자식 생산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위해서만 허용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쾌락을 위한 성은 완전히 금기시하거나 억압하는 금욕주의적 경향이 강했습니다.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 가문의 발전과 의무☆:
북동아시아의 국가들도 앞서 언급한 중동과 서아시아, 남아시아, 유럽 국가들처럼 혼인은 개인의 연애나 사랑이 아니라, 가문의 대를 잇고 조상을 봉양하는 의무이자 국가 발전을 위한 제도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당사자의 의사보다는 부모와 가문의 결정이 절대적이었기에 이러한 목적 아래, 혼인은 당사자의 의사보다는 부모와 가문의 어른들에 의해 결정되는 '중매혼'이 일반적이었으며 애초에 북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연애'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유교에서 혼인은 개인의 애정적 결합 이전에 마치 중세 유럽의 혼인동맹처럼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라는 성격이 매우 강했습니다. 남성은 밖에서 전쟁과 노동(勞動), 농장 근로 등의 의무를 수행하며, 여성은 안살림을 책임지는 '남녀유별(男女有別)'과 '내외(內外)'의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었습니다.
☆순결과 정절의 강요☆:
여성에게는 결혼 전 순결과 남편에 대한 정절이 극도로 중요하게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치는 열녀비 등의 미덕으로 사회적으로 칭송되었으나, 여성에게는 큰 억압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렇듯 북동아시아 3국(중국, 한국, 일본)의 전통 혼인 문화는 유교 이데올로기라는 강력한 공통분모 위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유교적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는 가족과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원리였으며, 혼인은 이러한 남성우월주의적인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중요한 제도였습니다.
이렇듯 유교 문화는 성(性)적 욕망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했습니다. 특히 여성에게는 혼전 순결과 혼인 후 남편에 대한 정절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었습니다. '삼종지도(三從之道)'는 여성이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이자 의무로, 여성의 삶이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유를 명시한 '칠거지악(七去之惡)'에는 '음탕함'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철저히 통제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은 오직 출산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만 허용되는 행위로 간주되었고, 그 외의 성적 표현은 금기시되고 억압되었습니다.
전통 혼례는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 등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과정은 두 가문이 서로의 격을 맞추고 사회적으로 혼인을 공인받는 과정이었슨비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가정을 떠나 남편의 집안 소속이 되는 '출가외인(出嫁外人)'으로 여겨졌습니다. 시집살이는 시부모를 봉양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관리하며,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과부의 재가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열녀(烈女)를 칭송하는 등 여성에 대한 남성우월주의적이며 금욕주의적인 억압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이는 여성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가문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했던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시베리아 사회의 전통적 혼인 문화☆
시베리아인들(동북아시아 인종인 축치인, 코랴크인 등 시베리아 유목민)은 동북아시아 인종이지만, 동북아시아의 정주 문명 제국들과는 약간 다른 사회 구조와 생존 방식을 가졌습니다. 이들의 문화는 환경적 요인과 부족 전통에 따라 매우 다양합니다.
☆생존 기반의 유연한 문화☆:
극한의 시베리아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여성의 역할이 북동아시아 문명 사회만큼 철저하게 가사에만 한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가부장적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었고 시베리아인들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가부장적인 요소도 많았습니다.
☆혼인 관습☆:
시베리아 부족 간의 연맹이나 경제적 필요에 의해 혼인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부장적 권위의 존재☆:
많은 시베리아 부족 사회에서도 남성이 가족의 대장으로서 군사적, 사회적, 경제적 권위를 가지는 가부장적 구조가 존재했으며, 여성의 지위가 남편의 지위에 종속되는 양상도 강합니다.
❄️전통 혼인 문화❄️: 중앙아시아 유목 국가들의 전통적인 혼인 문화는 세계 최강의 정복과 침략주의적인 군사 성향, 몽골-튀르크 민족의 전통, 상무정신, 피의 복수 문화, 약탈혼, 유목 문화의 유산, 그리고 티베트 불교와 이슬람교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강력한 남성우월주의제와 혈족 중심의 문화❄️:
중앙아시아 유목 사회의 삶의 방식은 남성의 전투력과 가축 관리 능력을 최우선시로 중요시했으며, 이는 남성우월주의에 기반한 가부장적 사회 구조를 가장 강화시켰다. 이렇듯 부계 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씨족, 부족 단위의 군사적 결속이 매우 중요했다.
❄️강한 명예 중심과 피의 복수 문화❄️:
씨족이나 부족 간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는 끝없는 전쟁과 '피의 복수'와 같은 문화로 이어지기도 했으며, 이는 법적 시스템보다는 정복과 칼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성향으로 나타났다. 이의 가장 극단적인 성향을 몽골이 가지고 있었는데 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이런 몽골의 피의 복수 문화가 중동과 서아시아, 남아시아에도 이식되면서 오늘날의 중동과 남아시아의 수많은 분쟁의 원인들 중 하나로 작동되기도 한다.(몽골제국의 정복지들 중 하나였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나 군벌들도 피의 복수 문화로 인해 양산되는 형태가 많음.)
❄️약탈혼(알라 카추)❄️:
몽골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에는 '약탈혼(알라 카추 등)' 문화가 강하게 존재했으나, 이는 현대 법적으로는 금지된 강력범죄이자 폭력범죄다.
더 자세히 알아보자면..
중앙아시아, 특히 몽골과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탄에는 몽골과 튀르크어로 '알라 카추(Ala Kachuu)'라 불리는 약탈혼 문화가 존재했다. 이는 '잡아서 빼앗는다'는 뜻으로, 남성이 마음에 드는 여성을 강제로 납치하여 결혼하는 문화다.
워낙 정복전쟁, 침략전쟁이 끊이질 않던 중앙아시아였기에 무엇이든지 전리품으로 삼았는데 게다가 남성우월주의가 워낙 강하다 보니 정복한 적국의 군견, 군마, 군용매, 그리고 값비싼 강철검, 강철갑옷, 투구 같은 전쟁무기들과 그리고 인간까지 전쟁 포로, 노예로 납치했던 것이다. 그렇게 전쟁 노예, 포로가 된 자들이 약탈혼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군인 행위는 남성의 군인으로서의 정복주의적인 용맹함을 과시하는 수단이자, 워낙 전쟁이 많다 보니 제대로 혼인식을 치를 시간조차 없었던 중앙아시아 유목 사회였기에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정식 혼례 절차를 다 없애고 빠르고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유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이러한 중앙아시아의 유목 사회의 약탈혼은 적군의 가축을 약탈하고 전리품들을 강탈하는 행위에서 파생됐으며, 중앙아시아 몽골과 튀르크 남성 군인의 강력함을 과시하고 정복자의 성향이 워낙 강했던 고대 중앙아시아의 몽골과 튀르크 유목 문화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무엇이든지 몽골과 튀르크는 워낙 고대시대부터 세계에서 가장 군사 정복과 원정, 침략, '약탈'과 '강탈'을 많이하다 보니, 무엇이든지 군사 정복과 원정, 침략, 약탈로 해결하는 군사적 상무정신과 군사주의가 형성되면서 혼인마저도 '약탈'로 해결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이는 종종 유목민족 간의 '피의 복수'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현재 '알라 카추'는 대부분의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불법으로 규정된 강력범죄 행위이지만, 아직도 치안이 위험한 일부 중앙아시아의 유목 지역에서는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텡그리교의 잔재와 이슬람교, 불교의 융합❄️:
몽골과 튀르크가 믿었던 전쟁종교인 텡그리(Tengri)교는 전쟁의 신들을 주로 믿었던 중앙아시아의 전통 종교인데 이후 이슬람교나 불교가 유입된 후에도 민간 신앙의 형태로 남아 영향을 미쳤다.
텡그리즘은 흉노, 선비, 몽골족과 투르크족, 불가리아, 헝가리 등의 중앙아시아 알타이 지역에서 신봉된 최상위 전쟁의 신을 중심으로 한 고등 종교 체계다.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14세기까지 1500년간 카간이 다스리는 몽골계 대제국들과 튀르크계 대제국들에서 국교로 신봉했으며 최고의 주신은 전쟁의 신이었다.
이렇게 고대시대 때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텡그리교였으나, 세계 최강의 패권제국이었던 몽골제국의 세계 정복으로 인해 서방 울루스들의 이슬람교를 흡수하면서 몽골제국들이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몽골제국의 후계 제국들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하기 시작한다. 중앙아시아에서는 모굴리스탄 칸국이 텡그리교를 국교로 위시했으나, 결국 이슬람교를 국교로 지정한다. 물론 현재까지도 전 세계의 몽골계 국가들, 튀르크계 국가들에게 텡그리교적 문화는 강하게 남아있다.
이렇듯 몽골족과 튀르크족이 신봉한 텡그리교 역시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고 가문 간의 분쟁을 막기 위해 결혼 전 여성의 순결은 중요하게 여기는 등 성(性)을 죄악시하고 탄압하고 억압하고 금욕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요소가 있었던 종교였다.
❄️엄격한 정조와 순결 문화❄️:
불교와 이슬람교의 영향과 남성우월적 가부장제의 결합으로 여성에게는 결혼 전 순결과 결혼 후 정조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이는 금욕주의적인 성규범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중앙아시아 유목 국가들의 전통 혼인 문화는 광활한 초원에서 이동하며 생활하는 유목민의 사회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들 사회는 강력한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했으며, 혼인은 개인의 결합을 넘어 씨족과 부족 간의 동맹을 형성하는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수단이었다.
남성우월중심의 사회 구조를 가진 중앙아시아 유목 사회는 끝없는 전쟁, 가축 약탈과 소유와 보호 등을 남성이 주도하면서 강력한 남성우월적인 가부장적 질서가 확립되었다. 중앙아시아 몽골족과 튀르크족 남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무는 1순위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 2순위가 가축을 많이 가지고 보호하는 것 그리고 3순위인 마지막, 가문의 대를 잇는 것 또한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곧 부족의 군력 확장과 직결되었다. 혼인은 두 일족 간의 군사적 동맹을 맺는 계약의 성격이 강했으며, 신부 측에 상당한 지참금을 지불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
이런 몽골족과 튀르크족의 문화는 중동과 서아시아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문화적 공통점이다. 남성우월주의가 강했던 몽골족과 튀르크족 사회에서 여성은 가문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지만, 사회적 의사결정에서는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