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브라질 사람들"의 저자인 "호베르뚜 다마따Robewtto DaMatta 1936년 리우데자네이루 니떼로이 출생의 브라질 인류학자이자 미국 하버드대의 사회인류학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한 미국 노테데임 대학교의 사회 인류 학과장을 역임" 교수는
브라질의 국민성과 정체성을 "집(casa)"과 "거리(rua)"의 이중성, 그리고 "제이치뉴(jeitinho, 유연하게 규칙을 헤쳐나가는 '작은 방법')"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위대한 인류학자다.
그는 과거 15~16세기의 세계 패권국인 명나라의 중국 한족들이 만약 패권적, 무역적, 기술적, 외교적, 영향력, 경제적인 이유였으면 먼저 브라질을 발견했을 테지만..,
뽀르뚜갈(포르투갈) 왕국이 먼저 브라질을 발견한 이유는 뽀르뚜깔 왕국이 순전히 본능적이고, 우연적이고 표면적인 것으로 인간이 먹고, 자고, 싸고, 후손을 보는 일 등과 같은 생존과 관련된 동기였기에
브라질 중남부 사람들은 이런 뽀르뚜갈 사람들처럼 성적으로 개방됐으면서도 굉장히 자고, 싸는 일을 좋아하며, 열정적이고 정열적인 본능적인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당시 세계 패권국인 명나라나 세계에서 군사력이 가장 강했던 군사 최강국인 몽골계 티무르 제국이나 무굴제국, 오스만 투르크 등이 먼저 브라질을 발견했던게 아니라.. 당시 가장 약소국이자 후진국에 불과했던 "포르투갈 왕국"이 먼저 브라질을 발견하게 되는 "로또 복권"에 당첨됐을까?
오늘은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자.
1) 세계 패권국, 당시 지구 최강의 함대를 갖췄으나 모험을 중단한 "명나라"
15세기 초, 세계 패권국은 단연 명나라였다. 동시기의 스페인 왕국이나 포르투갈 왕국의 작은 카라벨선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보선(寶船)"들을 이끈 정화(鄭和) 제독의 대함대는 해군력, 기술력, 해운력 모든 면에서 세계를 압도했다.
세계 대모험의 개요: 정화의 대함대(1405~1433)
세계 대모험의 발단: 당시 세계 패권국인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제(永樂帝)는 군부 쿠데타로 조카인 건문제(建文帝)를 몰아내고 황위에 올랐다. 그는 자신의 정통성을 과시하고, 명나라 중심의 중화(中華) 질서를 전 지구적으로 재확립하며, 혹시 모를 건문제의 잔당 군대들의 반격을 차단하기 위해 대함대 파견을 명한다.
세계 대모험의 규모: 정화의 함대는 총 7차례에 걸쳐 해상 원정을 떠났다. 첫 원정(1405년)에만 317척의 전함대들과 2만 7천 명이 넘는 병력들이 동원되었다. 특히 주력함인 "보선(寶船)"은 현재의 핵잠수함처럼 거대한 길이로, 그 길이가 120미터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80년 뒤 스페인 왕국의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약 26미터)의 4~5배에 달하는 크기였다.
당시 신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나 프란시스꼬 삐사로나 에르난 꼬르떼스의 배들을 보고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산"이 떠다닌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 거대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데, 그 거대한 콜럼버스나 에르난 꼬르떼스와 프란시스꼬 삐사로의 배들마저 훨씬 압도한 전함을 갖춘 전함이 바로 명나라 정화의 대함대였다.
세계 대모험의 항로: 동남아시아, 인도, 페르시아만을 거쳐 아라비아반도, 그리고 아프리카 동해안의 케냐(말린디)까지 도달했다.
명나라가 모험을 중단한 이유, "왜 먼저 브라질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이렇듯 명나라의 정화의 함대는 인류 최초로 나침반을 발명한 제국답게, 대항해시대보다 1세기나 앞서서 세계의 바다를 누볐던 것이나 기술적으로도 그렇고 아프리카 케냐까지 진출한 것 등등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할 능력이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발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발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기의 차이: 조공vs교역
명나라(조공): 정화의 대함대의 세계 남해 대원정의 목적은 전 세계에 다시금 명나라의 군사력과 영향력을 투사하고,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고, 주변국들로부터 "조공"을 받아 당시 전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기술력, 경제력을 가진 패권국은 "명나라"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 세계 질서를 재확립하는 "정치적, 외교적 정책"이었다.
포르투갈 왕국(교역): 그러나 포르투갈 왕국의 목적은 "돈", 즉 향신료였다. 그들에게 항해는 국가의 생존이 걸린 "경제적, 상업적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명나라는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패권"의 중심이었으며 당대 세계 1위의 군사력, 기술력, 경제력을 가진 패권국이었다. 즉, "모든 것"을 다 갖춘 명나라가 굳이 미지를 감수하고 "미개인"의 열대 지방(신대륙의 남아메리카)에 가서 무언가를 가져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미 명나라의 정화 제독은 아프리카 케냐에 사자를 기록하거나, 기린(실제로는 기린)과 같은 진귀한 동물들을 황제에게 바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목적은 달성했다. 기린은 중국 대륙에는 없는 진귀한 동물이었기에 가져온 것이지만 그 외에는 명나라가 다 가지고 있었기에 굳이 가져올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내부의 정치적 전쟁: 환관(Eunuch)vs사대부(Scholar-Officials)
정화의 남해 대원정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대사업이었다. 정화는 영락제의 최측근인 이슬람 교도이자 "환관" 세력의 대장이었다.
하지만 명나라의 실질적인 행정 엘리트인 "사대부(유학자)"들은 이러한 해양 원정을 환관 세력의 권력강화로 여겼기에, 해양 원정이 계속된다면 환관 세력의 권력만 강화되고 사대부 세력의 권력은 약화될 것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명나라는 이미 세계 패권국이었기에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는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해양 원정에서는 명나라가 딱히 가져올 것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였다.
기린의 경우는 중국 대륙에 없는 진귀한 동물이라 가져온 것일뿐이지,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는 해양 원정에 비해서 중국 대륙이 그 국가들에 진출해서 얻을 만한 진귀한 것은 딱히 없던 것이다.
게다가 해양 원정에 드는 막대한 재정들은 결국 백성들의 세금에서 나왔다. 사대부 세력들은 이 세금을 명나라의 국경을 계속 침략하여 위협하는 북방의 "진짜 위협"인 당시 세계적으로 군사력이 막강한 몽골계 북원제국이나 오이라트 제국의 침략을 막기 위한 만리장성 보수에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락제가 사망(1424년)하고, 정화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환관 세력이 약화되고, 거기다가 이 대함대를 이끌었던 "정화"마저 마지막 7차 원정을 끝내며 죽자, 이 정화의 대원정을 주도했던 황제 영락제와 정화가 죽고 환관 세력이 약화되니, 사대부들은 즉시 이 "돈 먹는 하마"나 다름 없는 명나라의 남해 대원정 사업을 즉각 중단시켰다. 이렇게 1433년 7차 원정을 끝으로 당대 세계 패권국이었던 명나라는 스스로 바다의 문을 닫아걸었습니다(해금 정책). 그들은 심지어 정화의 항해 기록과 거대한 보선의 설계도까지 불태워 버렸다.
이것이 바로 명나라가 가지고 있던 세계 패권이 점차적으로 서구열강에게 넘어가는 결정적 계기였다고 미국이나 영국을 포함한 수많은 서양의 역사, 정치 학자들은 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명나라의 세계 패권이 단 번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중국은 고대시대부터 워낙 오랫동안 세계 1위의 자리를 지켜온 제국이었기 때문에 스페인 왕국, 포르투갈 왕국의 최전성기 때에도 명나라는 그들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대표적으로 명나라vs포르투갈 왕국의 둔문해전때도 명나라는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시대가 지날수록 서양은 빠르게 근대화를 향해 나아갔음에도 중국은 명나라가 몰락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이 세계 1위라는 자만에 가득차 결국 정체되면서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완전히 서구에게 추월당한다.
지정학적 우선순위: 남쪽(South) vs 북쪽(North)
명나라(북쪽과 중앙아시아): 명나라가 비록 정화의 대원정을 통해 7차례나 아프리카 케냐까지 진출하면서 세계사에 엄청난 위업을 남겼으나, 명나라의 주된 관심지는 언제나 "무더운 남쪽"인 "바다"가 아니라 "추운 북방과 중앙아시아"의 "세계적인 군사 초강대국들인 유목제국들(몽골계 북원제국, 오이라트 제국, 카자흐칸국)"들이었다. 그렇기에 명나라는 끊임없이 북방과 중앙아시아에서 치열하게 패권 전쟁을 계속했는데, 특히 1449년에는 아예 제6대 황제인 "정통제"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 싸웠다가 중앙아시아까지 패권을 장악한 몽골계 오이라트 대제국의 기마군단들의 전쟁 포로로 잡히는 "토목보의 변"이라는 중국 황제가 금나라 기마군단의 전쟁 포로가 됐던 "정강의 변" 이래로 또 다시 북방 유목제국 군단의 전쟁포로가 되는 사상초유의 대사건이 터졌다. 이랬기에 대제국(명나라)의 모든 병력, 자원을 비롯한 총역량은 "남해 바다"가 아닌 북방의 "만리장성"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포르투갈 왕국(남쪽=바다): 포르투갈 왕국은 당시 지중해를 장악하던 동양의 초강대국인 "오스만 돌궐족"에 의해 육지가 막혀 있었다. 그들에게 유일한 갱존 활로는 남쪽인 "바다"뿐이었다.
즉, 최종 결론적 말하자면 명나라는 기술과 힘이 차고 넘치게 많았었지만, 바다로 나아갈 철학과 동기가 전혀 없었다. 그들의 세계관은 "북방과 중앙아시아"로 향했다.
2) 동양의 초강대국 오스만 제국의 사례:
오스만 제국은 세계사에 강렬한 이름을 남긴 대제국이었다. 비록 초기에는 세계 최강의 군사 패권국인 몽골제국의 식민지로 출발한 오스만 제국이었으나, 몽골제국이 해체되면서 오스만 제국은 자연스럽게 몽골제국의 식민지에서 해방됐다. 그러다가 다시금 몽골계 티무르 제국이 오스만 제국을 침략하여 칭기스칸의 후손인 티무르가 술탄인 바예지드 1세를 전쟁 포로로 끌고 가는 등 오스만 제국이 아예 망할 위기에 쳐했으나, 그런 모든 고난과 역경에서 벗어나면서 오스만 제국은 끝없이 발전했다. 급기야 오스만 제국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며 당시 유럽 최강국이었던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후 그들은 지중해와 흑해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오스만 제국은 즉시 기존의 동방 무역로이자 육상 실크로드의 끝을 완벽하게 장악, 통제했고 이런 육상 실크로드 무역은 명나라에서 출발하여 오스만 제국에서 끝났다. 명나라~오스만 제국은 서로 빠르게 무역을 하면서 발전했고 당시 세계 최첨단의 중국 문물들을 독점한 오스만 제국은 그런 값비싼 중국의 비단 같은 문물들을 유럽에 훨씬 더 비싼 가격에 팔면서 "갑질"을 했고, 이런 갑질로 중개 무역을 하면서 유럽으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하지만 당시 포르투갈 왕국과 스페인 왕국은 유럽에서도 최빈국이자 약소국이었기에 이런 값비싼 물품들을 구매할 돈이 없었기에 결국 그들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어쨌거나 그 이유가 바로 오스만 제국이 유럽을 고립시켰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압도적인 오스만 제국의 관심사는 명나라로부터 오는 육상 실크로드 무역과 군사적으로는 페르시아(사파비 왕조), 러시아 제국을 향한 "육상" 정복 전쟁에 있었다. 그들은 이미 가진 무역 독점권을 즐기고 있었기에, 굳이 위험한 대서양으로 나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명나라와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도 거의 모든 것을 갖춘 부국강병한 제국이었기에, "바다"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명나라처럼 오스만 제국도 "대륙 세력"이었지 "해양 세력"은 아니었다.
3) 오스만 제국보다 군사력이 훨씬 더 막강했던 몽골계 티무르 제국&무굴 제국:
세계 최강 몽골제국의 후예인 티무르 제국(14~15세기)과 그 뒤를 이은 무굴 제국(16~19세기)은 전형적인 "대륙형 기병제국"이었다. 게다가 티무르 제국은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군사력이 막강했던 오스만 제국보다도 훨씬 군사력이 막강한, 그야말로 최전성기 때는 세계 1위의 군사력을 가진 몽골계 제국이었다. 몽골계 제국답게 세계 1위의 군사력을 가진 티무르 제국은 마치 근대시대의 영국이나 오늘날 미국 같은 군사 최강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몽골계 제국들의 강점이자 단점은 항상 동일했는데, 몽골계 제국들은 일단 대제국들을 건국하면 세계 1위의 군사력으로 세계 위에 군림했는데, 문제는 그 수명이 짧다는 것이다. 티무르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티무르 제국의 존속 기간도 "짧고 굵었다."
세계 정복자인 칭기스칸의 후손이었던 티무르가 세운 티무르 제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1위의 군사력으로 중동, 서아시아의 오스만 제국, 중앙아시아, 남아시아의 인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맘루크 제국까지 전부 다 정복하였고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의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원정군을 이끌고 추운 원정길에 올라섰으나 그 추운 원정길에서 사망하고 만다. 항상 중국 대륙을 정복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칭기스칸의 후손답게 티무르 역시 명나라를 정복하려고 했지만 원정길에서 사망했던 것이다. 이런 티무르의 사망 이후 오스만 제국, 맘루크 제국, 인도까지 전부 다 정복했던 티무르 제국은 자신들이 정복한 정복지들을 토해내거나 몰락을 거듭해야 했다. 그리고 티무르 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인도를 정복하여 무굴제국을 세웠고, 무굴제국은 인도 아대륙 전역을 정복하는 것에 혈안이었다.
이렇듯 오스만 제국, 몽골계 티무르 제국과 무굴제국과 같은 대륙 제국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군사력이 막강한 초강대국으로, 티무르 제국의 경우는 너무 존속 기간이 짧아서 신대륙을 발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무굴제국은 인도 전역을 정복하는 것에 주력했으며 오스만 제국은 이미 지중해의 패권국이었기에 굳이 바다에 관심을 가질 필요성이 없었다.
4) 절박함이 빚어낸 기적, 포르투갈 왕국(The "Why" Portugal)
이제 오늘의 주인공인 포르투갈 왕국의 차례다. 분명 대항해 시기인 15세기까지도 포르투갈 왕국은 유럽에서도 가장 약하고 가난했던 이베리아반도 구석의 고립된, 작고 가난한 나라였다. 어떻게 이런 약소국이 "로또"에 당첨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순전한 "운"과, 그 "운"이 왔을 때 수십 년간 국가의 모든 것을 건 "필연적 도박"을 행한 결과였다. 운도 미리 준비된 자만이 쓸 수 있는 것인데 포르투갈 왕국이나 스페인 왕국은 미리 준비를 했던 것이다.
포르투갈 왕국의 절박한 3대 동기(God, Gold, Glory):
포르투갈 왕국의 대항해시대를 이끈 동기는 명확했다. "향신료, 욕심, 그리고 신앙심."
향신료:
포르투갈 왕국은 동양의 강력한 초강대국인 오스만 제국에 막혀 육로로 뻗어나갈 수 없었다. 당시 유럽 최고의 사치품이자 "향신료"들이었던 후추, 정향 등의 향신료들은 오스만 제국이나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상인들이 완벽하게 독점하고 있었다. 포르투갈은 이 "중간상인"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최종 소비자였다.
만약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나 동남아시아로 가는 "직접 항로"를 개척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부(富)를 독점할 수 있었다. 이는 가난한 나라인 포르투갈 왕국이 일어설 유일한 방법이었다.
욕심:
포르투갈은 약하고 작은 왕국이었기에, 육지로는 영토 확장이 불가능했다. 이미 구대륙의 육지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보다 훨씬 막강한 명나라나 무굴제국, 오스만 제국 같은 기존의 패권국들이 독점하고 있었고 그들이 영토 팽창을 하면서 구대륙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페인 왕국을 비로한 포르투갈 왕국은 그 "대안"으로 바다를 통한 영해 확장과 새로운 발견이라는 사업만이 국왕의 권위와 국가의 권력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신앙심(God):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포르투갈을 800년이나 식민 지배했던 이슬람 왕조를 이베리아반도에서 몰아내는 "국토 회복 운동"을 통해 건국된 나라가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이었다. 그들의 국가 정체성에는 "이슬람에 대한 독립운동"과 "가톨릭 신앙 회복"이는 종교적 회복이 깊게 뿌리 박혀 있었다.
게다가 당시 유럽에는 아시아 어딘가에 강력한 기독교 제국을 다스리는 "프레스터 존"이라는 전설의 왕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는 수세기 전에 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하고 식민 지배할때 몽골군이 당시 십자군 전쟁때 유럽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이슬람 제국들을 모조리 정복하고 파괴하면서 유럽이 구원받은 일이 있었다. 물론 몽골군은 유럽을 구원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그냥 이슬람 제국들을 정복하려고 침략한 것이지만.. 게다가 그 후에 몽골군은 동유럽도 정복했다. 어쨌든 이 대사건은 당시 유럽 국가들에게 있어 "신의 기적"으로 보게 되었고, 몽골군을 신(하나님)이 보낸 군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유럽을 구원해주려고 동방에서 와서 이슬람 제국들을 정복한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몽골군의 유럽 구원 신화가 바로 "프레스터 존" 신화였던 것이다.
포르투갈 왕국이나 스페인 왕국은 아직까지 오스만 제국보다 약했기 때문에 동방에 있는 오스만 제국보다 훨씬 더 막강한 그 이슬람 세력의 배후에 있는 그와 연합하여 이슬람을 협공하려는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당시 세계사에 무지했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한 것이다. 16세기 대항해시대때는 한때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했던 세계 군사 패권국인 몽골제국은 분열과 내전으로 쇠락한 상태였고, 오스만 제국의 지배층에 칭기스칸의 후손들이 군림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오히려 몽골계 크림 칸국이 오스만 제국과 동맹국이었다는 것이다.
"항해왕" 엔히크 왕자의 경제 정책(Systematic Investment):
물론 약소국이었던 포르투갈 왕국의 성공은 단순한 탐험자 몇몇의 "운"만은 아니었다. 이는 "항해왕 엔히크(Henrique o Navegador)" 왕자에 의해 시작된, 약 80년에 걸친 경제 정책이었다.
엔히크 왕자는 약 1419년쯤 포르투갈 남부의 사그레스(Sagres)에 "항해 학교"를 만든다. 물론 오늘날 현대적인 "학교"라기엔 원시적이었고, 연구 집단의 성격이었다. 여하튼 엔히크 왕자는 많은 돈을 들여 전 유럽의 최고 지도 제작자, 천문학자, 수학자, 조선 기술자들을 초대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기존의 스페인 왕국이나 포르투갈 왕국의 배(지중해용 갤리선)는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견디지 못했다.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의 조선, 해군력, 항해 기술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히크 왕자가 많은 돈을 들여 투자한 결과 삼각돛(Lateen sail)을 장착하여 바람을 거슬러 항해(역풍 항해)할 수 있었고, 원양 항해가 가능한 최초의 배인 "카라벨(Caravel)선"을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이미 송나라 시대 이전부터 대규모 원양 항해가 가능했던 고대, 중세 중국의 대함대에 비하면 초라하고 훨씬 늦은 출발이었지만 어쨌든 포르투갈 왕국의 배는 늦었지만 이렇게 출발했다. 천체관측기(사분의, 아스트롤라베)를 이용해 위도를 측정하고, 최신 해도를 제작하며 항해술을 데이터베이스화했다.
하지만 포르투갈 왕국은 항해 기술이 안좋았기 때문에 한 번에 인도로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십 년간 수백, 수천 명의 선원이 죽어가며 아프리카 서해안을 "한 뼘씩" 탐험해야했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토끼였던 명나라는 훨씬 앞선 기술력을 가졌음에도 멈춰섰지만, 거북이였던 서구는 훨씬 기술력이 안좋았지만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느리게 발전했던 것이다.
약 1434년쯤에는 질 이아느스, "공포의 곶" 보자도르 곶을 통과했는데 당시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곳을 넘어가면 바다가 끓어오르고 괴물이 산다고 믿었다.
약 1488년쯤에는 바르똘로메우 디아스라는 사람이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발견했다. 인도로 가는 길이 열렸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약 1498년쯤에 바스꾸 다 가마가 드디어 희망봉을 돌아 캘리컷에 도착했다.
"로또 당첨", 브라질의 발견(약 1500년쯤):
바스꾸 다 가마가 캘리컷에 도착한 지 약 2년 뒤쯤인 약 1500년쯤, 포르투갈 왕국의 국왕인 마누엘 1세는 "뻬드루 알바르스 까브랄(Pedro Álvares Cabral)"에게 13척의 선박을 맡겨 인도로 출발했다. 그는 인도와 정식 교역 관계를 맺고, 그곳에 진귀한 물품들을 사서 포르투갈 왕국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까브랄의 배는 아프리카를 따라 내려오다가, 남대서양의 무역풍과 해류를 타기 위해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크게 서쪽으로 꺾는 항해술, 즉 "볼따 두 마르(Volta do mar, 바다의 회전)"를 펼쳤다. 이는 희망봉으로 가기 위한 당시의 표준 항법이었고 명나라의 항법보다는 훨씬 구식이었지만 스페인 왕국이나 포르투갈 왕국으로서는 최선의 항법이었다.
그런데 까브랄의 실수인지 아니면 포르투갈의 항해 기술이 워낙 안좋은 탓인지 예상보다 훨씬 더 서쪽으로 가게 됐고, 얼마나 서쪽으로 갔으면 약 1500년 4월 22일쯤에, 남아메리카 대륙의 한 해변에 닿게 된다. 즉, 포르투갈 왕국의 엉망이고 안좋은 항해 기술이 "오히려" "실수로" 남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만든 것이다. 그는 이곳을 "베라 끄루쓰(Vera Cruz, 참된 십자가)의 열대림"이라 불렀고, 이곳이 훗날 "브라질"이 된다.
덧붙이자면.. 브라질의 이름이 어째서 브라질이냐면.. 그냥 그곳에 "브라질나무(Pau-Brasil)"라는 붉은 염료용 나무가 많이 있어서 이름을 대충 그렇게 지은 것이다.(..)
사실 포르투갈은 이미 약 1494년쯤, 스페인 왕국과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이라는 과대 망상이자 헛된 몽상을 맺었다. 약 1492년쯤 스페인 왕국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인도(실제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자, 두 나라는 교황의 중재로 "앞으로 발견될 신대륙(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나누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렇게 까보베르데 섬 서쪽 370레구아(약 1,770km)를 기준으로 선을 그어, 서쪽은 스페인 왕국이, 동쪽은 포르투갈 왕국이 갖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조약선이 훗날 발견된 브라질의 동쪽 해안을 정확히 포함된다.
간혹 서구의 학자들은 포르투갈 왕국이 이미 약 1494년쯤 조약 체결하면서 남대서양 서쪽에 "무언가(현재 브라질?)"가 있다는 사실을 비밀리에 알고 있었으며, 까브랄의 "우연한" 발견은 사실상 이 열대림을 정식적으로 확인하고 위해서 그런 것이라는 "음모론"을 펼치지만 음모론일 뿐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애초에 까브랄이 브라질을 발견하게 된 것도, 포르투갈의 부족한 항해 기술과 "실수"와 "우연"이 겹친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약소국이었던 포르투갈 왕국은 이렇게 절박한 동기와 수십 년간의 경제 정책이 만들어낸 "준비된 행운"이었다. 그들은 당시 원래 세계 패권국이었던 명나라와 달리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걸고 바다로 나갔던 것이다. 이는 스페인 왕국도 마찬가지였다.
4) 그 이후의 브라질의 운명
브라질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포르투갈 왕국은 매우 실망했다. 그들이 가지고 싶었던 값비싸고 맛있는 후추나 황금은 없고, 고작 브라질나무(염료)와 구석기인 같은 알몸의 브라질 원주민 남녀(미개인)들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적도가 지나는 열대 지방답게 브라질은 현재도 1년 365일 내내 기온이 64도까지 올라갈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습하고 무더운 열대 처녀림이었기에 포르투갈의 탐험자들은 아마존에 들어가서 쪄죽거나 그곳의 해충들(모기, 타란튤라 거미)들에게 물려 죽거나 말라리아에 감염되서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툭하면 브라질 원주민들이 포르투갈 탐험자들을 덮쳐서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다가 약 16세기 중엽쯤에 불나방처럼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이 반짝 흥했다가 순식간에 망하자 그 틈을 노린 프랑스 왕국이 브라질을 먹고자 침입을 하려하니, 포르투갈 왕국은 브라질을 지키고자 브라질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서 브라질 해변에서 "사탕수수" 재배가 성공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때부터 사탕수수를 먹고 싶었던 식욕으로 포르투갈 왕국은 브라질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탕수수 플랜테이션(대농장)은 막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처음에는 브라질의 열대 처녀림 깊숙한 곳에 숨어 살던 알몸의 원주민 남녀들을 노예로 끌고 갔으나 곧잘 죽었고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여자들을 납치해서 성노예로 만들어서 억지로 강간하고 임신시키고 출산을 시키면서 그 자녀들을 사탕수수 노예로 만들면서 노동력을 보충하던 포르투갈 왕국이었지만 곧 이들마저 질병과 저항으로 죽어나가자, 결국 포르투갈 왕국은 많은 돈을 들여서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들을 구입하기 시작한다.
약 18세기 초엽쯤에는 브라질 내륙의 미나스 제라이스(Minas Gerais)에서 큰 금광이 발견되자, 브라질은 포르투갈 왕국의 중요한 경제 기반이 되었다.
5) 포르투갈 왕국의 유산
명나라의 정화 함대는 명나라의 식민지들에서 "조공"만을 정기적으로 받았으며, 명나라는 옛날부터 식민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명나라의 조공 식민지배의 방식은 고대 로마제국이 속주들을 지배하는 방식과 동일했다.
하지만 포르투갈 왕국은 처음부터 식민지로 만들고자 브라질을 간 것이 아니라 순전히 "황금"과 "설탕"이라는 경제적, 식욕의 목적으로 브라질에 정착했다. 그들은 브라질의 아마존 원주민 여자들을 강간하고 성적 착취하고, 흑인들을 구입해서 브라질에 데려오는 등 브라질에 불평등에 기반한 사회를 건설했다. 이것이 다마따가 분석한 브라질 사회의 핵심이다. 다마따는 브라질 사회가 두 개의 상반된 사회로 움직인다고 보았다.
포르투갈 왕국 정부가 만든 "비인간적이고 불평등하고, 성적으로 개방됐고 음탕하고 문란하며, "나는 누구인지(인종)"를 묻는 브라질 사회와
반면 따뜻하고 가정적이고 가족, 애인이 사는 집 같은 브라질 사회라는 것이다. 이렇게 브라질은 모든 것이 평화롭고 용서되는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인간적인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면.. 1년에 한 번 카니발(Carnaval) 기간에, 브라질 남녀들은 자기들이 가진 모든 성적 본능(춤, 섹슈얼리티, 열정)"을 폭발시킨다. 하지만 브라질 사람들이 성문화가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된 것과 "성적 본능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 요약
명나라(기술 O, 동기 X): 정화의 함대는 세계 최강의 무적함대였으나, "식민지 조공"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위해 항해했다. 내부의 정치적 전쟁과 북방과 중앙아시아와의 전쟁 때문에 스스로 바다를 포기했다. 명나라는 이미 세계 패권국으로 모든 것을 가졌기에 계속 해양 원정을 이어나갈 "동기"의 필요성이 없었다.
오스만 제국,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 등: 티무르 제국의 군사력은 세계 1위였고, 오스만 제국의 군사력은 유럽을 압도하는 등 그들의 군사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나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 오스만 투르크는 이미 구대륙을 장악했기에, 새로운 길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포르투갈 왕국(기술 X, 동기 OOO): 이베리아반도의 약소국이었던 포르투갈 왕국은 "생존(경제)"을 위해 물에 배를 띄워야 했다. 항해왕 엔히크 왕자의 지속적인 경제 정책은 수십 년에 걸쳐 배를 발달하고 지리 지식을 축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