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공양, 식인은 지구상 공통의 풍습, 문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by 바다의 역사



간혹 인신공양, 식인에 있어 "지구상 공통의 문화다", "아즈텍 문명뿐 아니라 로마, 서구, 조선 같은 구대륙 북반구의 국가들도 암암리에 행했다.", "애니미즘(Animism) 신앙은 인신공양, 식인을 죄다 했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들"이 있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오늘은 이 같은 주장들이 어째서 근거 없는 헛소리인지, 그 증거와 결론을 말하려고 합니다.


우선 인신공양, 식인의 증거란 찾기가 힘듭니다.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처럼 아예 국가 차원에서 권장하지 않는 문화권들은


역사에 기록하지 않았기에


그런 증거를 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고고학"의 힘을 빌려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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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라틴 아메리카(아즈텍, 잉카, 마야): 인류 역사상 가장 최대규모 식인, 인신 공양


가장 먼저, 인류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식인&인신 공양 지역인 라틴 아메리카 지역은, 전 세계 역사상 국가가 주도하고 종교가 장려하여 대규모로 인신공양과 식인을 자행한 유일한 지역, 문명입니다.


우선 과학적으로 본다면 프리온 유전자가 대표적인데, 이 프리온 유전자는 식인을 하거나 식인을 해버린 조상이 있을 경우 그 유전자 자체가 MM형 비율이 점점 낮게 나타나는 유전자 조사를 뜻합니다.


그런데 식인의 대표 주자인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의 MM형 비율은 역시나 현장 조사 및 DNA 추출 및 연구 결과 6%로 이는 인류의 모든 인종들 중 가장 낮은 수치로,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가장 식인을 많이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들의 조상들이 식인으로 인한 질병 도태압을 심하게 받은 유전자형이 됐음을 보여줍니다. 즉, 식인이 매우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음을 과학이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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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대표적으로 아즈텍 문명의 꽃 전쟁이 있는데 전쟁의 목적 자체가 상대방을 죽이거나 영토 확장이 아니라, 단백질 부족으로 "인육"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태양신에게 바칠 "살아있는 제물"을 포획하기 위함이었다는 점은 다른 문명권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입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 자체가 국가와 종교가 결합하여 가장 대규모의, 시스템적인 인신공양과 식인을 했던 문명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 마야 문명 등 라틴 아메리카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광범위한 인신공양과 식인 풍습이 있었음이 고고학, 문헌(스페인 왕국의 탐험자 기록)에서 확인됩니다.




b) 유럽(서유럽, 남유럽): "생존형" 및 "의료적 미신"에 의해 식인 사례 다수 존재


유럽도 대기근, 포위전 등 극한 상황에서 식인 사례가 문헌에 기록됩니다(예: 1816년 프랑스 메두사호 등). 그러나 이는 극소수 사례이며 사회풍습화되지 않았습니다.


유럽은 제도적인 종교 의례로서의 식인은 아니었으나,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 수단이나 잘못된 의학적 믿음으로 인한 식인(Survival Cannibalism)이 근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서구에서는 대항해시대의 선원들, 기근 시기의 농민들, 싸움 중 포위된 성 안의 시민들 사이에서 식인은 비일비재했습니다. 프랑스 메두사호 사건, 미국 에식스호 사건, 영국 제임스타운의 굶주림, 독일&스페인 군대나 탐험자들의 사례들은 서구인들이 극한 상황에서 사람의 존엄보다 생존을 위해 식인을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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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서구는 의료적 식인(Medical Cannibalism) 행위가 존재하는데, 무려 근대 시기인 18세기까지 서구의 귀족과 왕족들 사이에서는 "무미아(Mumia 이집트 미라 가루)"나 교수형으로 죽은 죄수의 피&지방 등을 약으로 먹는 행위가 유행했습니다. 이는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섭취"였다는 점에서 문화적 측면의 식인 요소가서구 내부에 분명히 존재했음을 시사합니다.


생존이나 의료적 식인 외에도 정치적 표출의 식인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네덜란드의 "요한 드 비트 형제 사건"처럼 민중 심리에 의한 스트레스를 참지 못해 시체를 훼손하고 그것도 모자라 섭취해서 인육으로 사례는 서구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줍니다.







c)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중동과 서아시아(이슬람권)는 세계에서 가장 "식인 및 인신공양"이 없던 청정 지역


가장 먼저 확실히 해야 할 점은, 중국(기원전~고대 한나라 이후), 한민족(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중앙아시아(몽골, 튀르크), 중동(아랍, 페르시아) 지역은 전 세계에서 식인과 인신공양 문화를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철저하게 법과 윤리로 금지하고 소멸시킨 문명권이라는 사실입니다.


현대 유전학 연구에서 동북아시아인들은 과학적으로 본다면 프리온 유전자로 본다면, 앞서 설명했듯 이 프리온 유전자는 식인을 하거나 식인을 해버린 조상이 있을 경우 그 유전자 자체가 MM형 비율이 점점 낮게 나타나는 유전자 조사를 뜻합니다.


동북아, 중앙아시아, 중동과 서아시아 지역은 세계 고고학 및 유전학계의 연구 결과로도, 가장 깨끗한 문명권이다. 기원전부터 인신공양을 악습으로 규정해 법적으로 철폐시켰으며, 유교와 이슬람 등의 고등 종교와 윤리관을 통해 식인 풍습을 원천 차단했습니다. 이는 프리온 유전자 MM형 93%가 증명합니다.


그런데 이 PRNP(프리온 단백질) 129번 코돈의 MM형(메티오닌 동형접합) 비율이 중앙아시아인과 동북아시아인들은 약 93%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니 이는 식인을 하지 않았다는 과학적인 결과이자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는 원시 인구집단에 식인성 전염병(예: 포경병 kuru)이 거의 유행하지 않아 MM형이 유지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유전자 분포는 역사적으로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식인이 없었음을 뒷받침합니다.


물론 중국의 최초 왕조들이라는 기원전 중국의 상~주 왕조에는 제왕의 순장(殉葬)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기원전 한(漢)무제(武帝) 때 동중서(董仲舒)가 상주한 "노예 등을 함부로 순장하지 말라"는 건의를 적극 수용해 순장 관행을 완전히 폐지했습니다. 실제로 전한(前漢) 선제(宣帝) 시대 때도 봉건왕의 순장 요구를 거부하였다. 이렇듯 기원전 진~한나라 이후 여러 차례 순장 금지가 시행되었고, 고대시대인 당나라(618–907), 중세시대인 송나라(960–1279) 시대 때에는 완전히 민간에까지도 순장 같은 인신(殉身)공양 자체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즉, 동북아시아권은 이미 기원전~고대시대로부터 인신공양은 항상 비난받아 왔으며, 한나라 시대 이후부터는 제국 정부 차원에서 금지되어 정상적 관습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동북아시아인의 프리온 유전자 코돈 129번의 MM형 비율이 93% 이상으로 매우 높다는 것은, 조상 대대로 "식인을 통해 전파되는 질병(쿠루병 등)"에 노출된 적이 없었다는 가장 강력한 과학적 증거입니다. 즉, 식인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식인을 많이 한 문명일수록 생존을 위해 변이 유전자인 MV형이 많아집니다.


고대 중국 한나라 건국 이후 유교 사상이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인신공양과 순장을 "야만적 악습"으로 규정하고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흙으로 만든 군단(도용, 병마용)이 이를 대체했음은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통일신라~조선 역시 유교 국가로서 이러한 행위를 금수만도 못한 짓으로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한민족의 경우는 어떨까?


대한민국의 경우, 고대시대에는 신라가 대표적으로 순장(殉葬) 풍습을 보이긴 했습니다. 실제 고고학 발굴에서 고대 신라 왕성(月城) 성벽 축조 과정과 왕릉 부근에서 순장 희생자의 유골이 확인되었으나, 이는 불교 국교화(502년) 공인 이전의 일이었습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고대 신라 지증왕 때(502년)에 순장 제도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는 명문도 남아 있습니다.


이후 고대 통일신라, 중세 고려, 근세 조선 시대에는 공적(公的) 인신공양 사례가 민간에도 전혀 찾아지지 않습니다. 근대 조선 후기의 기록이나 편찬물에도 인신공양이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심청전"같은 고전소설과 민담 속에만 인신공양 관련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예를 들어 400여 년 전 청송 지역 설화도 동자승이 제물이 된 이야기로만 전승될 뿐, 실제 관습을 증명할 만한 문헌은 전무합니다. 즉 통일신라 시대부터 완전히 사라지면서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어떠한 인신공양 관행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중앙아시아와 중동, 서아시아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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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몽골 및 튀르크계 및 중동과 서아시아의 이슬람권 사회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제도화된 인신공양, 식인 관습 기록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즉, 중앙아시아의 몽골 및 튀르크계 및 중동과 서아시아의 이슬람권 사회는 그냥 처음부터 인신공양, 식인 자체를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극심한 전쟁, 기근 상황에서는 예외적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중동, 이슬람 세계에서도 종교적으로 식인이 금기지만, 극심한 기근 때에는 기록된 생존 행위가 있다. 예컨대 11세기 파티마 왕조(이집트) 대기근 때 역사가 알 마크리지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일이 흔해지고… 시체를 훔쳐 요리했다”라고 전하며 식인이 일상화되었다고 서술한다. 이 역시 기근으로 인한 생존 절박상황의 기록이지, 평상시 종교풍습은 아니었다.


이란계 사파비 제국 시대에도 사마르칸트 공략 전투 후 우상 숭배를 막기 위해 적군 시신을 먹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나, 이는 특정 지배권력의 선전에 가깝고 일반화되지 않았다.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중동 및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식인은 종교적으로 가장 엄격하게 금지되는 하람(Haram) 행위다.


중앙아시아의 몽골 등 유목 민족들은 지구상에서 말, 개, 양, 독수리, 매, 낙타, 야크, 순록 등등등의 가축들을 가장 중시하고 잘 다뤘으며, 유제품과 빵과 육식이 주식이었으나, 이는 가축(양)에 한정된 것이며 인간을 먹는다는 것은 그들의 "푸른 늑대(텡그리)" 신앙과 군인, 전사로서의 명예에 위배되는 행위였다. 살벌한 정복 전쟁은 항상 했었으나, 적군들을 "대학살"하는 행위였지 "식인"을 한 적은 없었다.


동북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중동의 경우 위에서 본 것처럼 문헌, 고고학적으로 인신공양이나 광범위한 식인 풍습이 확인된 예는 아예 없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인신공양 및 식인 풍습이 아예 없었다"는 것이 역사적, 과학적(유전학적)으로 완벽하게 결론이 내려져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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