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고구려의 강철과 강철검 제작 기술

고대 고구려가 보유한 강철과 강철검 제작 기술

by 바다의 역사



고구려의 제철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의 종류와 성질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운로드.jpg Ai 그림이기 때문에 실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연철(Wrought Iron)로, 이는 탄소 함유량이 0.02% 이하인 순수한 철에 가까운 상태를 뜻하는데 부드럽고 잘 구부러지나 무기용으로는 너무 무르다.


두번 째는 주철(Cast Iron, 선철)로, 탄소 함유량이 2.0%~4.5%인 철을 의미한다. 1150°C~1200°C의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녹지만, 탄소가 많아 충격에 쉽게 깨진다. (솥, 농기구 등에 사용)


마지막 세번 째는 강철(Steel)로, 탄소 함유량이 0.02%~2.0% 사이인 철이다. 연철의 연성과 주철의 경도를 모두 갖춘 이상적인 무기 소재다. 고구려 제철 기술의 핵심은 이 강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량 생산하느냐에 있었다. 참고로 중국은 이미 기원전 중국 한나라 시대 때부터 이 강철 제작 기술을 발명하였으며 기원전 중국 한(漢)나라의 강철 제작 기술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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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의 철기 문화는 기원전 4~3세기 연(燕)나라의 주도 하에 고조선 말기에 유입된 것으로 본다. 고조선에 철기가 유입된 초기에는 연철을 두드려 만드는 단조 철기가 주를 이루었으나, 고구려가 건국되는 시점(기원전 1세기 전후)에는 이미 중국 한(漢)나라의 세계 최고의 선진 제철 기술인 "주조 기술(Cast Iron Technology)"이 도입되어 있었다.


고구려의 발상지인 졸본과 국내성 일대(압록강 중상류)는 산악 지대로, 양질의 철광석(자철광, 적철광)과 연료인 목재가 풍부했다. 따라서 주변국(당시 패권국이었던 한나라, 선비족 군단들, 부여)과의 끊임없는 전쟁은 생존을 위해 강력한 무기 생산을 강요했고, 특히 한나라의 강철로 제작한 철갑옷과 전쟁 무기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연철 무기가 아닌, 고강도 "강철" 무기가 필수적이었다.


이는 이남규, "고구려의 철기문화와 제철기술"이나, "한국상고사학보 2000 등에서 고구려가 풍부한 철광 자원을 바탕으로 독자적 기술을 발전시켰음을 논증하였다.


고구려는 단순히 철을 녹이는 것을 넘어, 화학적 조성을 조절하는 고도화된 기술을 보유했다. 초기 철기 시대에는 철광석을 반고체 상태로 만드는 "직접 제련법"을 썼으나, 고구려는 "간접 제련법"을 적극 활용했다.


고구려의 강철 공정 작업은 이러하다. 높이가 높은 용광로(고로)에 철광석과 숯을 넣고 고온(1200°C 이상)으로 가열하여 액체 상태의 쇳물(주철)을 뽑아낸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지만, 나온 결과물은 탄소가 많은 "주철"이므로 무기로 쓰기엔 너무 잘 깨진다. 따라서 여기에 "제강(Steelmaking)"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주철을 강철로 바꾸는 핵심 기술인 초강법(炒鋼法, Fining Process)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원리는 이러한데, 용해된 주철(탄소 과다)에 산화제(철광석 가루, 흙)를 넣거나 공기를 불어넣어 탄소를 태워 없애는(탈탄) 방식이다.


아차산 보루 등에서 발견된 철기 유물들을 분석한 결과, 고고학적으로 고구려는 주철을 반용융 상태에서 휘저어 탄소를 제거하여 강철을 제작하는 기술을 이미 보유했음이 고고학계에서 확인했다.


이제 이 강철로 강철검을 제작할 차례다. 이는 백련강(百鍊鋼)으로 하는 관강법(灌鋼法) 기술이 들어 가는데 관강법 기술이란 연철(탄소 부족)과 주철(탄소 과다)을 함께 녹이거나 접합하여 탄소가 서로 이동하게 함으로써 균일한 강철을 만드는 기술이다. 고대 중국의 기술 서적 "천공개물"에 나오나, 고구려 유물에서도 이러한 혼합 제강 즉, 강철검 제작의 흔적이 발견된다.


이렇게 제련된 강철 괴(Ingot)들을 수없이 두드리고 접는 단조 및 접쇠 과정들을 통해 불순물(Slag)을 배출하고 조직을 치밀하게 제련한다. 고구려의 철기는 미세 조직 관찰 시 비금속 개재물이 적고 균질한 조직을 보인다.


강철검의 성능을 결정짓는 마지막 단계인 열처리 기술이다.


수없는 담금질(Quenching)을 통해 달궈진 철을 물이나 기름에 급랭시켜 조직을 마르텐사이트(Martensite, 매우 단단한 조직)로 변환시킨다. 여기서 담금질만 하면 너무 단단해 깨지기 쉬우므로, 다시 약한 불에 가열하여 인성(질김)을 부여한다.


이는 아차산 제4보루에서 출토된 철화살촉과 도끼 등의 금속학적 미세 조직 분석 결과, 전형적인 담금질 조직인 마르텐사이트 조직이 확인되었다.


고구려 유적(서울 구의동 보루, 아차산 보루)에서 출토된 철기 중 다수가 고탄소강 혹은 주철 탈탄강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고구려가 의도적으로 탄소량을 조절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환두대도는 기원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때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손잡이 끝에 고리가 달린 긴 보급화 된 군용검이다. 환두대도 자체가 군 전역에 대량 생산 보급화를 주 목적으로 한 군용검이다 보니 중국의 환두대도나 한반도 국가들의 환두대도, 그리고 일본에 전파된 초기 환두대도의 모습은 비슷하다. 이는 고구려 고분 벽화(예: 안악 3호분, 덕흥리 고분)의 장군들이 환두대도를 패용하고 있는 모습이 명확히 확인된다.


환두대도의 구조적 특징은 칼날 부분은 고탄소 강철을 사용하여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칼등 부분은 저탄소 강철을 사용하여 충격을 흡수하도록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복합 재료 사용은 당시 동북아시아의 보편적 고급 기술).


초기 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까지는 한나라가 한반도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설치한 군현들과의 군사적 투쟁 과정에서 철기 기술을 습득하고 내재화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고구려는 점차 단조 강철 무기 비중이 늘어난다.


4세기~5세기, 즉 광개토대왕~장수왕 시대는 고구려의 영토 확장기로 이 시기 고구려는 "개마무사"로 대표되는 중장기병을 운용했다. 이 시기 고구려는 군인과 말 모두에게 철갑옷을 입힐 수 있을 만큼 철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또한, 강철검과 더불어 갑옷(찰갑)을 만드는 박판(얇은 철판) 제작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다. 얇으면서도 화살을 막아낼 강도를 지닌 강철판을 만드는 것은 단순한 검 제작보다 더 높은 수준의 균일한 제강 기술을 요한다.


고구려 강철 제철 기술을 증명하는 실제 유적들은 이러하다다.


진천 석장리 유적(백제, 고구려 관련성)의 경우, 충북 진천 석장리 유적은 고대 제철소로, 백제 지역이나 고구려 강철 제철 기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제련로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슬래그(Slag, 찌꺼기) 분석을 통해 고대 한반도의 제련 온도가 1200~1300°C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아차산 보루군(홍련봉, 제4보루)은 가장 확실한 고구려 군사 유적으로, 간이 대장간 시설, 철재(Iron ingot), 각종 무기류들이 출토됐다. 이곳에서 발견된 덩이쇠와 철기들은 제련~제강~단조의 일관된 공정을 거쳐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현미경 조직 검사 결과, 탈탄 처리를 거친 강철 조직이 명확히 식별되었다.


고구려 강철 기술의 의의는 이러하다. 비록 초기에는 당시 세계 1위 기술력이었던 고대 중국의 강철, 강철검 제작 기술을 수용했으나, 한반도와 만주의 철광석 특성에 맞게 공정을 개량하여 독자적인 고탄소강 생산 체계를 갖추었다. 그렇기에 고대 중국 대륙이 분열하여 치고 박고 내전에 한참이던 틈에, 고구려가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수한 강철검과 철갑옷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국가 주도의 제철 산업 체계"가 있었다.


고구려의 이러한 강철 제철 기술은 이후 신라와 가야, 그리고 일본의 고대 제철 기술 발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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