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 시기 이후.. 근세 시기에 탄생한 스페인 왕국의 떼르시오(Tercio)가 방진 보병으로 분류되어야 하며 전열 보병으로 간주될 수 없는 이유는 아래와 같아요.
ㄱ) 스페인 왕국의 테르시오 방진 보병이 전열 보병이 아닌 이유
우선 방진 보병과 전열 보병을 명확히 구분해야 해요. 방진 보병은 총병이 밀집하여 사각형의 덩어리 형태를 이루는 부대를 의미해요. 반면 전열 보병은 그보다 훨씬 뒤인 19세기에나 나오며 나폴레옹 시대에 주로 나타난 형태로 보병들이 가로로 길게 2줄~ 3줄의 선을 형성하여 일제 사격을 가하는 형태를 뜻하지요. 즉.. 테르시오 방진 보병의 시대 때는 시대상 전열 보병이 탄생한 시기 자체가 아니에요.
근세 스페인 왕국의 테르시오 방진 보병이 전열 보병이라고 주장하는 건 마치 근세 조선군이 핵무기와 핵잠수함들을 소유했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시대를 거스르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이에요.
떼르시오는 일본 에도 막부시대의 최하급 말단 보병이었던 아시가루 보병처럼 파이크라는 창을 든 사람의 주변을 머스킷총을 든 총병이 에워쌌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전열이 아닌 "방진"에 해당하는데, 이런 형태의 방진 부대는 고대시대의 신라군에게도 방진 부대가 있었으니 새로운 건 아닙니다.
테르시오(Tercio) 방진 보병이 전열 보병이 아닌 가장 결정적 이유는.. "전열 보병"은 "총의 발전"으로 "창병이 완전히 사라진 이후"에나 가능했던 병법이기 때문입니다. 조프리 파커가 1988년에 쓴에 의하면 "떼르시오는 16세기 유럽 싸움터에서 사격병을 보호하고자 창병의 방진을 필수적으로 부렸다"고 기록되어 있거든요.
ㄴ) 떼르시오 방진 보병의 탄생 과정
떼르시오 방진 보병의 탄생은 약 15세기 후엽쯤~ 16세기 초엽쯤에 이탈리아 전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스페인군은 프랑스의 중장병과 스위스 용병대의 밀집 창병 방진에 맞서기 위해 새로운 보병 병법이 필요했습니다. 스페인의 장수 곤살로 데 꼬르도바는 기존의 편제를 개혁하여 보충병을 혼합하고 화기 사용 비율을 높이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것이 떼르시오의 모태가 되는 꼬로넬리아 체제에요.
이후 약 1534년쯤에 까를 5세가 제노바 어명을 통해 이탈리아에 있던 스페인 병졸들을 3개의 부대 단위로 나누면서 정식적으로 떼르시오라는 명칭이 등장하게 되요.
ㄷ) 특징
떼르시오 방법의 핵심은 거대한 창병 방진인 꾸아드로입니다. 보통 1500명~ 3000명 사이의 병졸들이 1개의 떼르시오를 만들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마치 일본 에도 막부 시대의 최하급 보병인 아시가루 보병처럼 5미터가 넘는 창을 든 창병이었어요. 이 창병들이 중앙에서 빽빽한 숲처럼 창을 세우면 상대방은 접근할 수 없었다고 해요. 그리고 대형의 4모서리에는 "스페인 망가스(19금 에로 망가가 아니..)"라고 불리는 스페인의 사격병 부대가 있었지요.
이들은 아르께부쓰나 머스킷총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막다가 상대방이 오면 중앙의 방진 내부로 숨어 보호를 받았지요. 이런 상호 보완적 구조는 "먼 훗날에 탄생할 근대 시기에 전열 보병의 얇은 선형 대형과는 완전히 다른" 입체적이고 두꺼운 방진 형태였어요. 떼르시오를 파이크 앤 샷 병법으로 묘사하며 전열 보병과는 시대적 궤를 달리한다고 명시하고 있지요.
ㄹ) 계기
떼르시오가 거북이 부대로 불리게 된 이유는 약 1525년쯤에 빠비앗 싸움과 약 1547년쯤에 뮐베르끄 싸움 등을 통해서지요. 특히 빠비앗 싸움에서 스페인의 총병들은 프랑스의 중장대를 화약으로 제압하며 보병 중심의 근대 전술 시대를 열었지요.
약 16세기 중엽~ 17세기 초엽까지 떼르시오는 유럽에서 "거북이"라는 명성을 얻었지요. 이들은 대항해시대를 통해 유입된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부유해진 농민병이었지요. 스페인 왕국은 이 자금력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저지대와 이탈리아&신대륙에 이르는 영토를 통제했지요.(하지만 이 영토들을 다 합쳐도 오늘날 러시아 영토보다는 훨씬 작았다는게 함정..)
ㅁ) 망조
떼르시오도 17세기에 들어서며 변화하는 전장 환경에 직면하게 되지요. 네덜란드 왕국의 마우리쯔 뽄 나사우와 스웨덴 왕국의 구스따쁘 2세 아돌쁘는 떼르시오의 무거운 방진이 화력 투사 면에서 비효율적이라는 약점을 간파했지요.
그들은 방진의 두께를 줄이고 가로 길이를 늘려 더 많은 총구가 전면을 향하게 하는 선형 병법을 도입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약 1643년쯤에 로끄루아 싸움은 스페인 왕국이 망했으며 떼르시오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지요. 프랑스군과의 싸움에서 스페인 떼르시오는 끝까지 방진을 유지하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결국 화력에서 밀렸으며 느린 스페인군은 완전히 패배했어요.
이 싸움은 짧게나마 흥했던 방진 보병의 시대가 망하고 전열 보병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시점을 시사하지요. 물론 로끄루아 사건 이후에도 떼르시오가 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유연성을 잃으며 점차 도태되면서 망했지요.
ㅂ) 근황
오늘날 스페인 육군에는 여전히 떼르시오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부대가 존재해요. 대표적으로 스페인 외인부대의 대대급 단위나 해병대 부대 명칭에 이 용어가 남아있지요. 하지만 이는 역사적 전통을 계승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일 뿐 16세기의 병법, 편제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요. 학계와 연구 분야에서 떼르시오는 초기 근대 혁명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사례로 연구되고 있지요.
오늘날 박물관이나 역사 재현 행사에서는 떼르시오의 느린 방어 방진과 파이크 앤 샷 방어를 고증하며 전열 보병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독특한 방법"을 하고 있지요.
ㅅ) 그 이후 전열 보병으로의 완전한 전환
떼르시오가 정식적으로 해체된 것은 약 1704년쯤에 스페인 왕위 계승 싸움 기간 가운데 뻴리뻬 5세의 개혁 때였지요. 망해가던 스페인 왕국은 프랑스 왕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떼르시오라는 명칭 대신 연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지요. 이 시절에는 부싯돌식 총인 플린트락 머스킷이 보편화되었지요.
이는 보호를 위한 창병의 존재 이유를 없앴고 떼르시오 방진이 더이상 필요없어졌다는걸 의미하지요. 결과적으로 보병들은 더 이상 두꺼운 방진을 짤 필요가 없게 되었고 화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옆으로 길게 늘어선 "근대형 전열 보병"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었어요. 따라서 "고대 신라군의 방진 보병 같은 스페인 왕국의 떼르시오 방진 보병"은 전열 보병의 조상 격인 존재일 수는 있으나 그 자체가 전열 보병인 것은 결코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