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주제는 역사상 실제 벌어지지 않은 "가상의 대결"이므로 결과에 대한 실증적 증명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엄격한 조건(승리 분야 지정 및 무승부 결론)을 충족하기 위해, 조선군vs스페인군의 실제 역사적 기록, 논문, 서적에 등장하는 군사적 특징을 해당 승리 조건에 대입하여 이론적, 전술적 당위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서술합니다. 과장이나 가상의 인물 창작은 배제하며, 최대한 공식적인 검증된 정보와 학술적 배경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근세 시기는 대항해시대 이후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 근세 시대를 관통하며 동양의 조선군vs서양의 스페인 왕국의 떼르시오(tercio) 방진 보병의 군사적 역량과 전술 체계를 학술적 근거에 기반하여 비교 분석을 해봤습니다. 두 세력은 역사상 직접적인 교전을 벌인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본 내용은 각국의 군사 교리와 무기 체계 그리고 실제 수행한 전쟁의 기록을 바탕으로 분석되었음을 밝힙니다.
아무래도 스페인 방진 보병과 싸울 상대로는 같은 "동시대 국가"와 비교해야 가장 "공정"할 것 같아서 "조선"을 골랐습니다.
ㄱ) 시대적 배경
근세 시기인 15세기(1400년대부터~)의 조선은 세종 시기의 화약 무기 정비와 16세기 후엽인 임진왜란을 거치며 독자적인 화력 중심의 방어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조선 군사사의 핵심은 성곽을 중심으로 한 수성전과 화포를 이용한 원거리 타격 능력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 시기 조선은 화포 식년제를 통해 화포의 규격을 정형화하고 천자총통부터~ 황자총통에 이르는 다양한 화포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이는 조선 군대가 단순한 보병 전력이 아닌 화약 전문 부대로서의 성격을 띠었음을 보여줍니다.(화력 덕후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동시기에 유럽에서 스페인 왕국은 떼르시오(tercio)라 불리는 독보적인 보병 병법을 확립했습니다. 15세기 후엽에 곤살로 데 꼬르도바의 군제 개혁으로부터 탄생한 떼르시오(tercio)는 총병의 밀집 형태를 취한 대단히 "방어적인 병법"이었습니다. 떼르시오(tercio)는 유럽 전역에서 가장 느리지만 튼튼한 방어적인 보병으로 평가받았으며 특히 방어력과 보병 간의 유기적인 협력으로 "거북이 같다(느리지만 단단하다)"는 명성을 떨쳤습니다.
ㄴ) 특징
조선군의 군제는 기본적으로 산성 방어와 원거리 화력을 병행하는 체제였습니다. 조선 전기의 5위제와 후기의 5군영 체제는 중앙 집권적인 통제 하에 대규모 화력을 집중시키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습니다. 조선은 비격진천뢰와 같은 시한폭탄과 화차와 같은 다연장 로켓 발사기를 실전에 배치하여 원거리에서 적의 밀집 대형을 붕괴시키는 작전을 구사했습니다.
스페인 떼르시오(tercio)는 약 3000명 단위의 보병이 느리게 움직이는 방진을 구성했습니다. 떼르시오(tercio)의 핵심은 외곽에 놓인 아르께부스 혹은 머스킷 총병들이 지속적인 사격으로 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ㄷ) 화력전과 원거리 전쟁에서는 조선군 승리할 가능성 높아
조선의 화력전 역량은 세계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조선은 대형 화포를 선박과 성벽에 배치하여 적이 접근하기 전 원거리에서 섬멸하는 것을 기본 교리로 삼았습니다. 천자총통의 경우 사거리가 수 킬로미터에 달했으며 이는 당시 스페인의 야포보다도 우월한 사거리와 파괴력을 가졌습니다. 특히 조선의 활인 각궁은 스페인의 화승총보다 연사 속도가 5배 이상 빠르고 정확도가 높았습니다.
조선이 화포의 사거리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수학적 계산을 도입했음을 설명합니다. 스페인 떼르시오(tercio)는 보병은 방어력은 좋았으나 대규모 중화기를 운용하는 면에서는 조선의 체계적인 화력망을 돌파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화력전과 원거리 교전에서는 조선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조선군 포병vs스페인 방진 보병이 서로 마주보며 전쟁하는 Ai 그림이에요.
ㄹ) 수성전과 공방전 그리고 청야 작전의 조선군 우위
조선은 전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 지형인 특성을 살려 산성 위주의 방어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수성전에서 조선군은 여장과 치성을 활용하여 사각지대를 없애고 투석기와 화차를 이용해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막았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과 진주대첩은 이러한 조선의 수성전 역량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또한 조선은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식량을 제거하는 청야 작전을 전국가적 방어 전략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중종실록&선조실록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전략으로 적이 현지에서 물자를 조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했습니다. 스페인 떼르시오(tercio)는 느린 보병 대형의 유지와 현지 보급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기에 조선의 산성 중심 방어와 철저한 청야 작전 앞에서는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고립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써 수성전과 총력전&공방전 전반에서 조선군이 승리하게 됩니다.
ㅁ) 방어전에서는 스페인 떼르시오(tercio)가 승리할 가능성 높아
야전에서의 순수한 방어형 보병 간 교전이 발생할 경우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스페인 떼르시오(tercio)는 방어전에서 좋았던 집단입니다. 조선의 보병은 살수와 사수로 나뉘어 있었으나 떼르시오(tercio)의 방어적인 조총 방진을 정면에서 돌파할 만한 근접전 능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떼르시오(tercio)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며 아주 매우 느리게 앞으로 가는 방어적 병법에 능했습니다.
떼르시오(tercio)의 방어력은 조선 보병이 화승총으로 타격을 가하더라도 떼르시오(tercio)의 무거운 갑옷과 밀집 대형을 완전히 붕괴시키기 전에 떼르시오(tercio)의 조총병들이 조선 보병의 전열을 파고들었을 것입니다. 특히 야지에서의 방어전에서는 스페인 떼르시오(tercio)가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좀 더 있습니다.
조선군 포병vs스페인 방진 보병이 서로 마주보며 전쟁하는 Ai 그림이에요.
ㅂ) 역사적 사례&근거를 통한 종합 분석
조선의 화차는 1번에 수백 발의 화전이나 조란탄을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징비록에 기록된 변이중의 화차 운용 사례에서 보듯 스페인 스페인 보병 방진을 무너뜨리는 데 최적화된 무기였습니다. 반면 스페인의 떼르시오(tercio)는 란쯔끄네힛뜨와의 싸움이나 이탈리아 싸움을 통해 방어전의 입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 볼 때 조선의 총통 제작 기술은 주물 기법이 발달하여 내구성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개인 화기인 조총의 도입 이후에도 조선은 여전히 석궁에 의존하는 비중이 컸습니다. 스페인은 머스킷의 대구경화를 통해 화력을 증강시켰으나 이를 집단으로 운용하는 방어 병법에 치중했습니다. 이 두 군대의 충돌은 원거리에서 조선의 포병이 떼르시오(tercio)를 타격하고 방어전에서는 떼르시오(tercio)가 조선의 보병을 압도하는 양상을 보였을 것입니다.
조선군 포병vs스페인 방진 보병이 서로 마주보며 전쟁하는 Ai 그림이에요.
ㅅ) 결말은 무승부?
결국 이 전쟁은 무승부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조선군은 강력한 화포 전력과 산성을 기반으로 한 철저한 공방전으로 스페인군을 압도할 것입니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떼르시오(tercio) 방어진이라 할지라도 조선군의 전열은 흐트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또한 청야 작전으로 인해 스페인군은 보급 부족에 시달리며 도망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조선군 역시 성 밖으로 나와 스페인 왕국으로 쳐들어가서 스페인 떼르시오(tercio)와 직접 맞붙는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떼르시오(tercio)의 견고한 방어 방진은 조선 보병의 근접 공격을 모두 튕겨낼 것이며 방어전에서 떼르시오(tercio)는 마치 "거북이"같은 방어력을 과시할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장점을 공략할 수 없는 지형과 병법적 위치에 놓이게 됨으로써 전쟁은 소모적인 대치 상태를 유지하다가 무승부로 끝을 맺게 됩니다.
이와 같이 조선군vs스페인 떼르시오(tercio) 보병은 각각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장점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들이 격돌했을 경우 화력vs수성vs병법적 측면에서는 조선이 이기고, 방어적인 면에서는 스페인이 승리함으로써 전체적인 전쟁의 형세는 완전한 무승부가 되었을 것임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확언합니다.
ㅇ) 실제 역사의 경우
실제 역사에서 조선은 화력 만능주의적 성향을 더욱 강화하여 영조와 정조 시기에 이르러 화성 성역의 사례처럼 성곽 건축과 대포 운용의 정점을 찍게 됩니다. 스페인의 떼르시오(tercio)는 1643년 로끄루아 싸움에서 대패하면서 그걸 기점으로 점차 망조의 길을 걷게 되며 떼르시오 방진의 한계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선형 병법으로 전환되는 변천을 치욕을 겪습니다.
조선의 수성 및 화력 승리와 스페인의 보병 및 방어 승리는 각 문화권이 처한 환경의 산물입니다. 조선은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했고 스페인은 느리지만 적의 공격을 방어하고자 방어적인 보병 병법을 만들었습니다.